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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하늘을 보는 이유    
글쓴이 : 진연후    19-07-29 23:25    조회 : 18,213

가끔 하늘을 보는 이유

                                                                                                                   진연후


흐린 하늘이었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이 정도 바람이라면 움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얼마나 간절한 눈빛이면 될까. 상대가 사람이라면 막무가내로 떼를 써보고도 싶었다.

백두산 가는 길에 양 옆으로 펼쳐진 우거진 숲을 가리키며 가이드는 청산리전투를 아느냐고 물었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산 뒤에 산, 골짜기 너머 골짜기에 가슴은 알알해지고,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들이 영화처럼 영상으로 떠오르는 건 상상력 때문인지 핏줄의 확인인지 모르겠지만 먹먹해진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려다보이는 구름, 높이를 실감나지 않게 만든 넓음, 그리고 아주 작은 들꽃들. 그 작은 들꽃의 아름다움은 감동이고 아쉬움이다. 조금 천천히 가까이 다가가서 바람과 마주하며 느끼고 싶지만 지프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작은 한숨뿐이었다.

끝내 천지는 자신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마냥 하늘만 바라보게 했다. 단번에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천지를 본 황홀함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올라가며 내려오며 보았던 하늘과 구름과 이름 모를 작은 들꽃들이 그렇게 눈물겹도록 아름답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들에 눈을 돌릴 수 있었던 건 정신을 온통 천지에만 빼앗기지 않았기 때문일까.

가이드는 조선족 대학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란다. 힘들어 보였다. 사람에게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힘든 일임을 절실히 느끼리라. 그래도 가이드라는 직업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번 돈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기도 한다면서 뿌듯해하고, 가이드를 하면서 알게 된 북한 약재를 구입해서 할머니께 드렸는데 편찮으시던 다리가 많이 좋아졌다고 선전을 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땐 이성보다 믿음이 소증하게 여겨져서 어른들 몸에 좋다는 북한 약을 아버지를 위해 거금(?)을 주고 하나 샀다.

연변 동포들의 생활을 이야기하다가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말을 흘렸다. 그들의 북한 돕기는 넉넉해서가 아니라 아픔, 서러움을 알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한비야의 ‘오지 이야기’를 보면 없는 사람들이 더 나눔을 잘 실천한다는데 그 말이 부끄럽게 떠오른다. 북한 전시관에서 구입한 물건들이 효과가 있고 없고는 따지고 싶지 않다. 바가지를 썼더라도 상관없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한 그릇의 밥으로 전해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윤동주 시인이 다녔다는 대성중학교에 갔다. 중학생 때 처음 그의 시집을 샀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겠다던 시인, 범우주적 사랑의 의식, 기독교적인 사랑에 근거한 인도주의 사상의 발로라고 설명되기도 하지만, 난 그저 사랑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죽음으로 이별하게 될, 지금은 살아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고. 시를 읽으며 그를 만나보았으면 했었다. 시인을 만날 수는 없지만 그가 다녔다는 학교에 들어서서 「서시」가 적힌 시비르르 마주 대하고 나니 가슴이 마구 떨렸다. 짝사랑했던 사람을 만나는 것도 같고, 여고 시절 좋아했던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같아 그곳에서 한나절쯤 앉아 있고 싶었는데...... . 하긴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시비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했다. 바람 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밤 별이 뜰까 생각하면서.

도문. 두만강 국경지대. 강을 가로지르는 긴 다리는 반이 나뉘어져 있었다. 반쪽만 붉은색을 칠해놓았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란다. 강 건너에 산이 보이고 나무가 보인다. 새 소리,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고향이 북쪽이라던 연세 많으신 어른의 눈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쪽에 아무 연고가 없는 나도 눈이 뜨거워오는데 그분은 어찌 강 건너를 태연하게 쳐다볼 수 있을까 싶어서. 침묵이 길어지는 것이 더 견딜 수 없어

“어떡해요?” 했더니

“글세, 내 죽기 전에 갈 수 있을는지, 다시 이곳에 와서라도 볼 수 있을는지...... .”

하시는데, 결국 우린 서로 돌아서서 손수건을 꺼내고 말았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들. 그냥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저 하늘 한 번 올려다보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일송정에 오르고 싶었다. 보통은 손가락 끝으로만 따라가 본다는데 가이드의 배려로 우린 그 밑에까지 가 보았다. 물론 정상엔 정자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단다. 상징으로 소나무 한 그루 심어 놓으면 물증은 없어도 심증은 확실한 누군가가 죽여 놓는다고, 지금은 언젠가 다시 심어놓은 어린 나무가 있다는데 확인을 하지 못했다. 그 위에서 부르는 노래만 감상하고 뒤돌아 내려오는데 쓸쓸했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면서도 막상 벗어나면 그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늘 접하는 곳의 답답함을 느낄때쯤 그 넓은 곳에서 본 것은 결코 거대하고 위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 곳에서 뿌리내리고 오랜 시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자연에서 인간이 가진 것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내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다른 뭔가를 바꾸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길을 떠나서야 깨닫게 된다. 흐린 하늘 아래에서 더욱 간절해지는 마음과 나에게 주어진 시간, 나와 맺어진 인연의 소중함을 생각한 여행. 가끔 하늘을 보며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문학과 의식 200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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