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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위와 청설모    
글쓴이 : 윤기정    19-08-05 03:08    조회 : 4,127

머위와 청설모 

                                                                                                                                           윤 기 정

 

‘아들이 오랫동안 모시던 치매 걸린 노부모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은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2014년 1월 7일 한 신문에 난 기사다. 유명한 아이돌그룹의 멤버 중 하나인 이○의 아버지가 벌인 일이었다. 무서운 일이었다. 기사를 접한 치매 환자 가족들의 생각은 복잡하지 않았을까? 기사를 보며 우리 가정의 혼란스럽던 시간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치매는 건망증에서 시작되었다. 돈이 없어졌다며 서랍과 옷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하면 며칠씩 계속되었다. 집으로 오는 길을 잃고 서성이는 어머니를 집으로 모셨다는 경비원의 얘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어느 날 퇴근하여 열림 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려는데 문이 한 뼘 정도만 열리다 말았다. 보조 자물쇠가 채워진 모양이었다. 벨을 누르자 어머니가 안에서 현관으로 다가서는 소리가 들렸다. ‘왜 문이 안 열리냐?’‘안에서 자물쇠를 열어야지요.’‘열어? 뭐를?’‘이게 어떻게 된 거냐?’‘그 손잡이 같은 거를 앞으로 당겨요.’‘응, 이건가? 아닌가? 모르겠다.’자물쇠 여는 방법을 조금 열린 문틈으로 되풀이하여 설명하자니 점점 짜증이 나고 목소리가 커졌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왜 소리 질러!’하면서 역정을 냈다. 이럴 때는 평소의 화끈한 어머니 모습이었다. 소리 지르다 달래다 어찌어찌하여 문이 열리기까지 30분 넘어 걸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잠그고 열던 일상적인 일이었는데 그리도 깡그리 잊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속상함과 민망함으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곧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말없이 어머니의 등만 토닥였다.

  치매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렵사리 장기노인요양보험 3등급 판정을 받고 ‘데이캐어센터(주간보호소)’에 등록을 하였다. 센터의 도움을 받으면서 가족들의 근심을 조금 덜 수 있었다. 점심을 거르거나 가스 불을 켤 일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한시름 덜었다. 아내와 나 둘 중 하나는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서 센터 직원의 보호 아래 귀가하는 어머니를 맞아야 했다. 저녁 식사 약속은 할 수도 없었다. 화장실 다녀올 때마다 뒤처리를 잘 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계절에 맞는 옷을 입는 것도 어려워서 일일이 챙겨야 했다.

  그러나 목욕 시킬 때에 비하면 그런 일들은 소소한 일들이었다. 목욕을 시킬 때면 자식들 앞에서 맨 몸을 보이지 않으려 온힘을 다해 버티니 탈의부터 힘이 빠지기 일쑤였다. 그럴 땐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최소한의 체면 차림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너무 힘들었다. 언제나 소동이었다. 잠들고 깨고의 경계가 없어지고‘우리 엄마 어디 갔냐?’하며 찾는 일이 잦아졌다. 4년여에 걸쳐서 온전함과 치매의 경계선을 넘나들다가 서서히 치매의 영역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다가 먼저 떠난 아버지 곁에 누워서 깸 없는 잠에 들었다.

  치매는 유전은 아니라고 하지만 유전적인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한다. 고령이랄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외모나 성격?체질까지 어머니를 많이 닮아서 치매 위험이 높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2011년 11월 중순경 현직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오후에 이제껏 경험한 적이 없는 야릇한 상황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내 방에서 어느 선생님과 마주 앉아 업무 협의 중이었다. 그 때 내 목소리가 마치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말하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것이었다. 대화를 하면서도 몽롱하고 붕 뜬 느낌이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얼핏 잠이 든 것도 같았다.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머리를 흔들어 보았다. 이마를 짚어보니 손끝에 땀과 함께 미열이 느껴졌다. 어느새 4시 30분이 다 되었다. 직원회의 시간이 가까웠다. 회의 내내 께름칙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내 방에 들렀던 선생님에게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평소와 다른 점은 없었는지 물었다. 전혀 이상하지 않았단다. 방을 나간 게 몇 시쯤인가 물었다. 3시 4,50분경이었단다. 그 때부터 4시 30분까지의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2년 전 쯤부터 말하려는 사물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서 당황하는 일이 잦아졌다. 재작년 봄 집에 놀러온 손님이 머위 꽃을 가리키며 무슨 꽃이냐고 물었다. 이름을 말하려는데 갑자기‘머위’라는 낱말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결국 아내에게 물어야 했다.‘머위’가 왜 그렇게 생각이 나질 않았지?’라는 자탄에 너도나도 그럴 때가 있다며 가볍게 웃었다. 그 때부터였다.‘머위’를 말해야 할 때마다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청설모’도 그랬다. 이유도 없이 유독 두 낱말만 그랬다. 머리에서는 뱅뱅 도는데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건망증의 시작이 아닌가 걱정되었다.‘머위?청설모’를 기억하기 위해서‘머위는 잘도 번지누먼.’혼자말로 자꾸 입에 올렸다.‘청설모’는‘푸를 청’그래‘푸른’을 기억해두면‘청’이 떠오를 테고‘설모’는 따라서 생각나겠지 하면서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치매의 예방이라도 되는 양,

  치매는 가족들의 끝을 알 수 없는 고통과 엄청난 희생이 따른다. 오죽하면 죽음으로 고통을 끝내려는 안타까운 사연이 잊을만하면 또 뉴스에 등장하겠는가! 현재의 의술과 약으로는 단지 치매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치료뿐이라고 한다. 기억상실을 다룬 영화 <마음의 행로(Random Harvest, 머빈 르로이, 1942>처럼 행복한 결말을 절대로 기대할 수 없어서 더 안타깝다.

  건망증, 치매 두 낱말은 의식에서 떼어내자.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견과류도 챙겨먹고 생활 습관도 바꿔야겠다. 훗날 어머니가 몰라보더라도 내가 어머니를 몰라보는 일은 없어야겠다. 지금도 ‘머위와 청설모’를 생각해내느라 잠깐 눈을 감았다. 머위청설모머위청설모머위…….

《시와 문학》 2017.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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