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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감    
글쓴이 : 이원예    19-08-07 16:15    조회 : 2,751
 한때, 희끄무레 감꽃이 떨어져 있던 골목에 오늘은 연녹색 꽃받침이 달린 풋감이 나뒹굴고 있다. 이웃의 담장 한 귀퉁이에 서있는 감나무에서 떨 군 것이다. 담 높이와 나무의 우듬지를 가늠해 볼 때, 키는 두 길이나 껑충하고 가지와 잎은 미루나무처럼 웃자라 보인다.

 감잎의 포개진 그물 틈 사이사이로 작은 풋감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 모습이 마치 강보에 감싼 아기를 어르고 있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떨어진 풋감을 쓸어 모으는데 오래전 고향집의 감나무와 풋감에 대한 기억들이 조각조각 모여 먼 시간을 거슬러 온다.

 어릴 적, 동생과 나의 여름방학은 오봉종택의 호도서리로 시작되었다.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서너 시간을 타고 온 그 곳엔 언제나 호두나무 두 그루가 우릴 먼저 반겼다. 밤송이 같은 겉껍질을 발로 으깨어 돌로 치면 그 안에서는 고소한 호두알이 나왔다. 호두알을 오물거리며 못 안으로 들어설 때 조모는 벌써 저만치 마중을 나와 계셨고 그날로 우리는 무슨 짓을 해도 밉지 않은 악동이 된다.

 방학이 되어야 고향집을 찾는 우리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남동생과 나는 형제이며 친구였다. 그날, 감나무 가지 어디선가 매미가 자지러지게 울었고, 싸리비를 들고 마당 가득 날아 다니던 고추잠자리 잡기에도 싫증이 나던 무료한 한나절이었다. 옆집에 놀러 갔다 온 동생이 “누부야 풋감을 구워 먹으면 맛있다 카더라”라고 했다.
 
 조부는 늦가을 첫서리가 내리면 감을 거두어 겨우내 쌀뒤주에 묻어 두셨다가 하나 씩 내어 주셨는데 그 맛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풋감이 맛있다’라는 말은 뿌리 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눈을 맞춘 우리는 뒤란으로 향했다. 나무 그늘에 숨겨 두었던 풋감을 아궁이에 옮겨 놓고 다시 토담위로 올랐다. 저녁을 하러 나온 조모가 불을 지피려다 밤 톨 만한 풋감 무더기를 보고 놀라 엉덩방아를 찧으시기 전까지 우리는 얼마나 의기양양했던가.

 그날, 뒤란의 감나무는 늦가을도 아닌데 우리에게 된서리를 맞았다. 된서리를 맞기는 우리도 매한 가지였다. 대노하신 조부는 “아무리 철없는 것들이라지만 저런 풋것을 앗아 버리다니 애처롭지도 않느냐”며 고함을 치셨다. 그전에도 그 후에도 그런 고함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처음 듣는 꾸지람이 서러웠다. 무조건 내 손을 들어주던 조모의 역성이 서러웠고 우리의 몫이었던 조부모의 사랑을 풋감에게 뺏긴 것 같아 더더욱 서러웠다.“나는 할배 죽어도 절대로 안 울기다.” “허허이 그것들 참......”손녀의 악다구니에 조부는 거칠게 방문을 닫았고 조모는 곰방대에 연초를 꾹꾹 눌러 성냥을 그으셨다. 마당 가득 날아다니던 고추잠자리는 석양에 물든 하늘 빛 보다 더 붉었다.

 조부모에게 어린 우리가 풋감인 줄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풋감을 해치듯이 혹여 어린 손 주들을 누군가 해코지 할 것 같아 불안 하셨던 그 심정을 그때는 몰랐다. 이 일로 내 마음에 짐이 쌓일 줄은 정말 몰랐다. 조부모님의 가슴에 종유석처럼 맺혀 있던 한을 그때는 정말 몰랐다.

 몇 년 후에 있은 조부님의 葬事에 나는 참석하지 못했다. 부산에서 遊學하고 있었다. 경황 중에 아버지가 주소를 잘못 적어 기일을 넘기고 도착한 부고는 누런 종이봉투가 닳아 너덜했다. 열네 살 어린 손녀가 상주로써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만 나는 3월의 꽃샘추위에도 숨막히는 더위를 느꼈다. 마치 뜨거운 물을 마신듯 목젖이 뜨거워왔고 입 안 가득 고이는 풋감의 떫은 맛 때문에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철없이 내 뱉었던 그 말은 살아오는 내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남게 되었다. 말의 중압은 오래도록 남아 조부를 생각할 때 마다 가슴을 눌렀고 고향을 지나칠 때면 마음이 저렸다. 우리의 철없음을 탓하기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려 했던 일침을 내 자식을 낳고서야 깨달았으니 나는 얼마나 못나고 불효한 손주였던가.

 못 안, 감나무 집이라 불렸던 고향집의 감나무는 사실 단 두 그루였지만 여느 집 감나무와는 달랐다. 사립문 옆의 감나무는 동네에서 제일 크고 울창했다. 팔 척인 조부를 보고 동네 사람들은 감나무가 주인을 닮아 저렇게 크다고 했다. 야트막하게 두른 흙 담이 끝나는 뒤란의 감나무는 돌감이나 납작감이 아닌 대봉이어서 씨알이 컸다. 아버지가 태어나던 해 조부가 심었다고 한다. 그리고 뒤란의 감나무에는 4대 독자를 지키려는 조부모의 간절한 誓願이 담겨 있었다.

 거북의 꼬리라는 지명을 가진 마을의 제일 끝자리에 있는 고향 집은 옆과 뒤 쪽이 산에 둘러 쌓여있다. 마을 안, 못을 흘긴 바람은 집집을 기웃거리다 고향집에 다다라서야 여장을 푼다. 소문도 고샅을 돌고 돌아 너덜 누더기가 되어야 우리에게 다다른다. 병마 역시 그랬다. 초여름 어느 집에선가 시작한 홍역은 점점 세력을 키워 여름의 끝물에야 조부모의 푸네기 삼남매에게 들이쳤다. 열 두 살이던 맏자식이 열병에 쓰러졌다. 학구열이 높아 책을 잡으면 해가 져서야 책을 놓는 다고해서 별면이 해동갑이었다고 했다. 속이 깊고 넓기를 마을의 못에 비유하며 동네사람들이 부러워했다고 한다.

 “어매! 이거 심으면 나까 안 나까?” “심어 보면 알제” 형에 비해 다사스러웠던 둘째는 그 해 여름 조모와 함께 토담 밑 남새밭에 마늘을 심었다. 병마로 둘째를 가슴에 묻은 이듬해, 뾰족이 올라오는 마늘 싹을 보고 조모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었다고 했다. 두 보름 남짓의 시차를 두고 막내 여식까지, 집 뒷산에 가슴 저리고 애달픈 아장살이 하나 더 늘던 그날 이후 정신 줄을 놓으신 조모는 곰방대와 연초를 사오셨다. 억장이 무너지는 통증과 슬픔을 연기로 뱉어 내시곤 했다. 어쩌면 그 연기 속에 다시는 볼 수 없는 자식들의 그리운 얼굴을 그리고 계셨던 것이리라.

 조부는 몹쓸 일이 집 탓이라 여기셨다고 한다. 집 뒤에 사람이 살지 않아 바람이 고인다고 했다. 아버지가 태어나자 뒷벽을 허물어 문을 만들고 뒤란에 살아있는 감나무를 심어 의인화하여 사람을 대신하였다고 했다. 종종 뒷문을 열어 감나무를 불렀다. 고수레! 동네를 돌아온 흉흉한 기운이 더 이상 집안에 머물지 못하게 하신 당신의 비방이었을 것이다.

 열 살이 되기 전까지 나 또한 병치레가 잦았다. 잔병은 물론이고 홍역을 심하게 앓아 잠시 시력을 잃기도 했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나는 밤눈이 좀 어둡다. 나와는 다섯 살 터울로 이제 갓 태어난 여동생을 건사하느라 부모님이 나의 간오헤만 전념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갓난아이에게 전염이 될까봐 전전긍긍하였다. 고향으로 비접을 갔던 어느 겨울밤, 꽝꽝 얼어버린 동네 어귀에 저수지에는 바람이 회오리로 일었다. 동지섣달을 시난고난 하던 나는 그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 했다. 조모는 나를 업고 황망히 집을 빠져 나왔다.

 마을 입구에 있는 오봉 종택은 아주 신씨의 종가이자 조모의 외가이기도 하다. 명이 끊어져 가는 손녀를 업고 이곳을 찾은 것은 한세대 전 묵은 상처의 대물림을 그렇게라도 끊고 싶었던, 고향집 그 방에서 두 번 다시 그 불행을 겪지 않으리라는 조모의 비장한 선택이셨을 것이다.

 밤새 북풍은 모진 바람으로 삶의 나무에서 풋감 하나를 떨구려 하였다. 나목사이에 걸린 초생 달 사라지듯 숨길이 사그라지고, 마침내 낙선대 대청으로 내쳐진 순간, 얼음보다 차가운 겨울 냉기는 코를 지나 가슴으로, 뱃속까지 빠르게 퍼져 신열을 식히고 있었다. 찬바람이 해열 작용을 했던지 다행히 풋감은 끝까지 가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고, 야가 숨을 쉰데이,” 혹여 밤 짐승이 물어갈까 짬짬이 대청을 내다보던 조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명 있는 것들은 자라면서 세상을 바꾼다. ‘어린 것은 항시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모자람이 없느니’ 불현듯이 조부의 말씀이 생각나 감나무를 바라본다. 열매를 맺고 씨가 여물어 반시가 되기까지 제 속을 삭여 둥글어지고 순해져 가는 일이 어찌 익은 감 쳐다보듯 그리 수월하기만 할까. 삼동 어두운 땅속에서 수액을 품어 올려 꽃눈을 틔우는 일은 모진 추위와 외로움을 참아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더러는 꽃 진자리 열매 맺지 못하고 떨어진 것들을 생각하며 나무는 더 단단해져 갈 것이다. 감나무의 한 살이가 그렇듯 무릇 생명 있는 것들이 세상의 모진 바람을 견뎌내는 통증은 매한가지 일 것이다. 나의 생명은 조부모의 통증을 용해시켜 지켜낸 것임을 왜 이제야 생각해 내는 것일까.

 오랜 시간 지고 있던 마음의 ‘한’도 세월에 묵히면 그리움이 된다. 한이란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이며 사랑의 원형질일 것이다. 조부모님에 대한 진한 그리움, 고향을 그리는 애틋한 향수 같은 것, 일찍 고향을 떠나버린 탓에 그때는 몰랐던 그것들의 始原은 사랑이 아닐까. 지금도 내겐 고향과 조부모는 동일 선상에 있으며 두 분이 지켜주신 내 육신과 혼은 알 수없는 힘으로 나를 이끌고 있기에 삶이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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