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은 붉은 산호의 광채로 지상에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누워서 키를 키우던 그림자위로 어둠이 두터운 갯벌처럼 내려앉는다. 밤의 기류가 슬슬 채비를 할 무렵에서야 추적자를 의식한다. 나 몰래 나를 훔치려는 스토커, 그의 정체는 불면이다.
은신처의 컴컴한 실내다. 추적을 피해 전등을 소등하고 빛을 차단해 스스로 자취를 흐렸다. 지친 육신의 무게를 감당해주는 침대와 나의 체온에 익숙한 이부자리에게 동지애를 강요하며 집요한 추적을 따돌리려 웅크리고 있다. 째깍째깍, 벽시계가 밀고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결국 따돌리지 못해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수면과 불면이 의식을 마구 흔들어 댄다. 소요보다 심한 혼돈의 시작이다.
무언가 허물어진다. 아무래도 생각의 덩어리가 문제다. 이것은 번뇌일까, 무아일까, 헤어 나오지 못하는 늪일까, 절망감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창문을 연다. 어둠으로 묵혀둔 골목길을 눈발이 휘젓는다. 밤이 밤을 새는 것 같아 동류의식을 느낀다. 잠이 허우적거릴 늪이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음을 알겠다. 지잉- 삐이- 머릿속의 구형 통신기는 계속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섬이다. 고립을 피하기 위해 내리는 닻은 처절하다. 지독한 안개, 괴괴한 적막, 오므라드는 발을 구슬려가며 걸음을 뗀다. 츠츠츠츠, 머릿속 화면에 노이즈가 생기고 심하게 요동친다. 검은 바다가 통째로 밀려온다. 납작 숨죽이고 있던 해초들이 형체를 드러내며 바리케이드를 친다. 잠의 정박이 불가하다.
난파당한 잠이 불면의 독방에 수감되어있다. 낡은 냉장고 소리,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귀를 관통한다. 눈에 익숙한 것들의 형상이 허물어지다 일어나고, 흔적은 희끗하게 다가오다 물러선다. 등을 돌려 더 웅크린다. 그러나 간수의 발자국소리는 점점 커진다. 잠을 막은 해초를 걷어내어 보지만 그들의 촉수는 생각보다 강하다. 두렵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동네아이들이 타고 다니는 세발자전거가 갖고 싶어 아버지에게 사달라고 떼를 쓴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세발자전거는 어린동생을 태우고 다니기 위험하다고 뒤에 펜스가 달린 네발자전거를 사준다고 하셨다. 그즈음 나오기 시작한 네발 자전거를 가진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던 그날 밤, 동생을 뒷자리에 태운 네발자전거는 밤새도록 마음의 골목길을 달려 새벽에 다다랐다.
남들 보다 먼저 너덜해진 국어책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했고, 아주 가끔 누군가가 선물해준 동화책이나 머리핀이 잠을 방해하기도 했다. 학용품을 잘 잃어버리는 나에게 연필이나 지우개를 빌려주던 짝꿍이 어느 날 훌쩍 전학을 가버린 후에는 아주 오랫동안 밤이 길기만 했다.
키가 자라면서 방물장수의 보따리처럼 불면의 가짓수가 늘어났다. 점점 습관이 되었다. 숫제 난전을 펴는 것도 모자라 나의 일부가 되겠다는 음흉한 간계를 진즉 눈치 챘어야 했다. 처음엔 잠을 조금씩 훔치더니 대 놓고 수면을 유린하고 있었다. 생채기를 내고서야 통증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충혈 된 눈, 갈라지는 목소리, 소리를 여과하지 못하는 이명耳鳴, 이들로 인한 강박强迫은 타고난 내 천성까지 조롱하려 들었다.
밤마다 무덤처럼 어두운 정적의 갱도를 파고 있었다. 별이 어른 거렸다. 소리가 사라진 입체영화처럼 빠르게 동공 안으로 별이 들어오곤 했다. 신경을 곤두세울수록 두통과 고립감이 심해진다. 동이 트기까지 아직 멀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겠다. 마른 생선처럼 엮여있는 생각의 두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새벽보다 먼저 시간을 깬 사람들은 알리라. 통증보다 지긋지긋한 밤의 길이와 잠의 무게를.
내려앉지 못한 미세먼지로 햇살마저 푸석한 겨울 아침, 밤새 막장을 표류하던 눈을 비비며 신경정신과 병원으로 향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기다림, 옆 사람의 말소리가 동굴 속에서 듣는 듯 웅 웅 거린다. 짜증으로 만신창이가 된 마음을 다독이며 벽에 머리를 기댄다. 울컥, 입덧처럼 자꾸 헛구역질이 나온다. 병원을 잘못 찾은 것이 아니냐고 수근 대는 사람들의 말을 한마디 대꾸도 없이 듣고만 있다. 신체증상을 동반한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내내 미심쩍다. 나는 정말 병원을 잘못 찾은 것 같다.
어느 날, 뻐꾸기처럼 내 안에 들앉아 버린 불면과 동행한지 오십 여년, 참 긴 시간이었다. 더러 나무에 박힌 옹이처럼 아웅다웅 서로의 나이테를 늘리며 삶의 고개를 넘어왔다. 불면은 발치의 그림자처럼 평생을 같이 다닌 셈이다. 불면은 지난 세월동안 숱하게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괴롭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실체 없는 그림자를 쫒는 동안 내안의 나를 성찰할 수 있었고, 그것을 빌미삼아 문학이란 어휘를 접하게 되었다. 밤손님으로부터 크고 작은 가산을 지켜낸 일 또한 불면 때문 아닌가, 스토커의 초심은 애정이다. 어쩌면 괴롭다 하여 부러 스토커를 경외로 내몰며 나만의 성을 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화해의 악수를 청하고 싶은 용기가 생긴다.
미워하면서 정든다는 것은 비단 부부간의 일만은 아니다. 애증은 애정의 부스러기 아닌가, 이제 나는 불면에 대해 익숙하다. 한때, 여귀처럼 무섭고 길기만 하던 밤을 조율할 줄 아는 여유도 생겼다. 밤이 좀 짧았으면 하는 날은 생각의 가지에 고치 몇 개 쯤 걸어둔다.
어쩌면 불면은 살아가는 동안 함께 해야 할 짓궂은 반려일지도 모른다. 금혼金婚의 세월을 앞두고 사랑할 수 없다면 우정 또한 괜찮은 것이리. 낮을 쪼개어 밤을 꿰매다 보니 일상은 누더기 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더기라 해서 초라하고 남루한 것만은 아니다. 삶의 틈을 박음질 하며 내디딘 걸음에 어디 희열만 있었을까, 고통의 조각들도 모아 패치워크 기법을 터득한다면 제법 쓸모 있는 조각보 하나쯤은 나오지 않을까.
결국 삶은 소통과 화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불면은 변이가 아닌 내 안의 벽이었다. 스스로 통제하고 경계하며 세상의 온갖 고민을 불면에게로 몰아 부친 날들이었다. 머리를 아프게 조여오던 스토커의 추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바위보다 견고했던 생각의 덩어리들이 이윽고 조금씩 바스라진다.
오늘 여명은 먼저 내 머리 속에서 길은 튼다. 물살을 가르는 뱃길을 따라 나의 일상도 출항을 할 것이다. 하루의 뱃머리에 앉아 그물도 손질 할 것이며 세상의 파도소리에 귀도 기울여 볼 것이다.
드넓은 세상의 바다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삶의 시간은, 붉은 비단에 촘촘히 수놓인 은빛 무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