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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쟁이    
글쓴이 : 이원예    19-08-07 20:05    조회 : 3,343

  내가 자주 다니는 부전시장의 한 길목에는 함석집이 하나 있다. 한 평 남짓한 점포보다 더 커 보이는 통풍기가 길 가장자리에 놓여있고, 다시 또 그만한 풍향계 밖으로 나와 있다. 점포안의 물건보다 길거리에 내어 놓은 상품이 더 많다보니 시장 한 편의 길을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가끔씩 지나가는 이들이 불평을 해대지만 색종이를 자르듯 함석판을 자르고 있는 함석 쟁이는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는 않다. 불어오는 바람이 풍향계의 관을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하지만 그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도무지 시장의 번잡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그는 시장뿐 아니라 현대 사회의 다른 어떤 것과도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빠른 속도와 다량생산을 기본으로 하는 세상에서 그가 만들어내는 제품은 그 숫자에서부터 어울리지 못하거니와 인두와 망치로 함석의 이음새를 붙이는 것을 보면 우둔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어떤 때는 함석쟁이를 보면 답답할 때도 있다. 변화하는 현대의 사회에서 기계를 사용하거나 전업을 하여 약삭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세상의 변화와는 전혀 무관심한 미련함 같은 것을 읽곤 했다.

  함석쟁이의 공정을 백 퍼센트 손으로 만들어 완성을 하는 수공품이다. 그런데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 팔려나간 뒤에는 거의가 소모품으로 전락을 하고 만다. 장인 정신을 높이 사는 요즈음에 많은 수공품은 공예품으로 대우를 받고 있고 작업장 역시 공방이라는 이름으로 승격 되었지만 함석 제품은 공예품도 공산품도 아닌 채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다. 예인도 공인도 아닌 함석쟁이. 그는 오늘도 시장의 한 쪽에서 시간을 가위질 하고 있다. 한 때 그도 높은 이상이 있었을 것이다.

  속담에  배운 것이 도둑질이란 말이 있다. 한번 선택한 일을 버리고 전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요즘은 함석의 쓰임새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함석과 함께 늙어가고 있는 것은 배운 게 함석 질이라서 일까. 햇살을 등지고 있는 그의 빈 가슴으로 서늘한 바람 한 줄기 지나갔는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가슴을 파고드는 시린 바람을 인두질로 데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그토록 무신경 해보이던 그의 속내를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어릴 적에 내가 살던 동네의 시장에도 함석집이 하나 있었다. 그 가게 앞에는 늘 그만큼의 물동이와 두레박, 정미소에서 쓰는 커다란 깔때기 따위의 물건들이 자리의 변동 없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공예품이 되지 못한 소품들이 골동품이라도 도기 위해 세월을 곰 삭이고 있었을까, 그래서 인지 어쩌다 한번 씩 보는 함석쟁이의 작업은 전혀 새로운 물건을 만들지 않고 함석판을 그냥 만지작거리는 것만 같아 보였다. 움직이는 것은 창을 통해 빗금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춤추는 먼지뿐인 것 같았다. 좁은 실내, 그나마 창문의 높이가 낮아 먼지의 공연은 금방 바닥에 닿는다. 어쩌지 못한 정적만이 함석쟁이의 좁은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그건 마치 여름 한 나절 시골 마을처럼 나른했다. 그때 기억 속에 내장된 함석집의 풍경들이 수 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별로 변한 것 같지는 않다.

  그 시절 우리 집에도 함석으로 만든 물건이 몇 있었다. 대부분 두레박이나 물동이 같은 생활 소품이었다. 그 중에서도 지붕의 처마 끝에 달려있던 함석 물동이는 비 오는 날이면 제 몫을 단단히 했다. 기와지붕을 타고 흘러내린 빗물이 양쪽 끝으로 흘러내리면 그 아래 동이나 대야에 받아서 다시 큰 물 항아리에 옮기곤 했는데, 어머니는 빗물로 빨래를 하면 때가 잘 진다고 하시면서 비설거지를 꼭 우리에게 시키셨다. 비가 그치고 난 뒤의 햇살이 눈부실 때 어머니는 빨래를 시작하였다. 가끔은 나도 어머니의 빨래 일을 도왔는데 정말 우물물 보다는 빗물에 비누 거품이 더 잘 일었다. 지금도 비온 뒷날, 바람에 날리는 빨래들을 보면 가끔씩 옛날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바람에 돌아가고 있는 통풍기는 동화 속의 왕관처럼 생겼다. 어린 시절 보았던 왕관 위의 고깔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중앙 부분이 나사로 조여 있다. 깔끔해 보이긴 하지만 예전에 내가 누렸던 상상의 세계는 사라져 버렸다. 신기료장수는 천 번의 망치질 후에야 한 켤레의 구두를 완성한다고 한다. 몇 번의 망치질과 인두질을 줄인 것이 함석쟁이가 장인이 될 수 없었던 이유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함석은 다른 철판에 비해서 나긋나긋하다.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것을 선호하는 요즘, 함석은 시골의 아낙 같이 수더분하다. 지금까지 함석 제품의 명줄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것은 부드럽게 휘어지는 매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도 자신의 벽이 두꺼우면 쉽게 마음의 벽이 휘어지기가 어렵다. 함석처럼 부드러운 내면을 지닌 사람이라면 오랜 세월을 같이 공유 할 수 있는 품성의 넉넉함이 있지 않을까.

  언제나 휴식 같던 함석쟁이의 손놀림이 오늘 따라 분주하다. 함석을 자르는 가위질에 신면이 느껴지고 무뚝뚝하던 입가에 엷은 미소까지 번진다. 세상을 향해 기지개라도 키고 있는 것일까. 햇살이 노을의 품으로 서서히 잠기고 있는 오후, 덩달아 그의 그림자도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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