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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심한 배짱    
글쓴이 : 진연후    19-09-08 21:46    조회 : 5,380

소심한 배짱

진연후

‘인생 뭐 있어. 놀자!’

친구 아들의 책상 위에서 발견한 종이에 적혀있다는 글귀이다. 친구는 몇 달 전부터 아들의 생활 태도가 맘에 안 들어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서 조금씩 마음을 비우며 아들과 거리두기를 하는 중이란다.

“이제부터 밥과 빨래만 정확히 해 주고 나머지는 간섭도 하지 않고 따라서 더 이상의 도 움도 주지 않겠다고 했어.”

어떻게, 얼마 동안이나 지켜질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며칠 지났는데도 쉽지는 않다며 웃는다.

“오늘도 한바탕 했어. 늦겠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들은 척을 안 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사흘이 멀다 하고 동생은 전화기 너머에서 한숨을 쉰다. 중학생이 된 친구 아들도 초등학교 6학년인 조카 선우도 요즘 사춘기란다. 어떤 때는 멀쩡하게 의사소통이 다 되는 것 같다가도 속을 뒤집어 놓을 땐 ‘자식이 웬수’라는 말이 튀어나온단다.

그 또래 아이를 둔 이들이 한 목소리로 펼쳐 놓는 사춘기 증상은 다양하고 대책도 간단치 않으며 하루 이틀에 끝날 것 같지도 않다. 학원에 왜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갑자기 학원을 빼 먹기도 하고, 친구들과 모이기로 했다며 공부보다 친구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하고, 아침이면 지각할까봐 걱정인데 욕실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샤워기를 틀어놓은 채 태평하기만 해서 속을 뒤집어 놓는 일이 일상이란다. 크게 부모 속 썩인 적 없는 자칭 모범생이었다고 주장하는 엄마들은 애들 키우기 참 어렵다고, 아들 키우면서 목소리만 커졌다고 열을 낸다.

학원에서 만나는 중학생 아이들은 간혹 시간 지키기나 수업 태도 등 성실성의 문제로 잔소리라도 하려 하면 자신들은 지금 질풍노도의 시기이니 좀 봐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아예 대놓고 당당히 주문을 한다. 어이없다고 눈을 흘기다가 웃음이 난다. 감정이 가라앉았을 때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면 나름 생각이 영 엉망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존재감을 어떤 식으로 드러내야 하는지, 자신도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변화들을 어떻게 조절하고 표출해야 하는지 몰라서 방황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아 보인다.

사춘기에는 뭔가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데 요즘 아이들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해야 하고 자기 생각과 상관없이 정해진 학원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샛길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길 수 있겠는가. 안에서 끓어 넘치는 에너지를 어떻게 아무 일 없는 듯이 가라앉힐 수 있겠는가. 어른들도 진짜 하고 싶은 걸 못하고 현실에 매어 있는 상황을 거부하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법에 서투르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 미로 찾기만큼 힘든 것이 사춘기 증세라면 그들만 사춘기를 겪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제대로 사춘기를 겪지 못해서인지 아직까지도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 찾지 못하고 해마다 봄앓이를 심하게 하는 친구들이 있다. 나를 포함하여.

사춘기 행동의 원인은 명확하에 설명되지 않는다. 왜 그러는지 본인 자신도 잘 모른다. 다만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정리되지 않은 시도들이다. 자신을 표현할 방법을 찾아내느라 툭툭 걸리는 행동을 하는 것일테니, 그 과정에서 여기저기 부딪치더라도 제대로 찾아낼 때까지 고개 끄덕이며 기다려 주어야 할 것 같다. 

무엇을 할까 말까 망설일 때 중얼거린다. 인생 뭐 있어, 까짓거 한번 해보지 뭐. 그 다음 말이 ‘놀자’라는 건 십대 아이의 말이고, 사십대엔 어떻게 달라질까? 인생 뭐 있어, 인생에 뭐가 있는지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다보면 답을 알 수 있는 날이 올지도.

인생 뭐 있냐고 그냥 놀아보자는 열네 살의 생각에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슬그머니 나도 그 말에 기대어 보려는 심사가 고개를 든다.  멋진 글귀도 아름다운 낱말도 건지지 못하고, 재미도 정보도 없는 글을 써 내면서 그래도 이것이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배짱을 부려 볼까 싶은 것이다.  진득하게 오래 갈 것 같지 않은 배짱을 부려보려니 참 웃기고 있다고, 배짱은 아무나 부리는 줄 아느냐고 어이없어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저 마구 들리는 것도 같지만... . 

 

수필과 비평 201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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