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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석은 우두머리들    
글쓴이 : 백두현    19-10-25 11:25    조회 : 5,471

어리석은 우두머리들


                                                                                                                  백두현

  돼지라고 다 같은 돼지가 아니다. 인간에게 길러지는 사육용 돼지와 산에서 스스로 사는 멧돼지의 운명이 같지 않다는 의미다. 축사에 사는 돼지는 하루 세 끼를 배불리 먹어 멧돼지보다 행복하지만 일찍 생을 마감해야 하는 시한부 생명이다. 엄마돼지로부터 독립한 후 불과 150일만 지나면 수명을 다하는 비참한 운명이겠기 때문이다. 150일 이후는 먹는 사료 가격이 불어나는 몸집으로 인한 고기가격보다 적어진다는 의미다. 그 시점에서 인간으로부터 편하게 먹이를 취한 빚을 제 몸을 통째로 식용으로 바쳐 갚는 것이다. 가장 혈기 왕성한 시기에 도축장으로 향하는 것인데 아무리 동물이라고 하늘이 원망스럽지 않을까만 신체구조상 머리를 쳐들 수 없는 구조라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니 참으로 안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돼지들을 농장에서 도축장으로 운반하기 위해서는 약 60마리의 돼지가 같이 트럭에 태워져 움직이게 되는데 그 짧은 시간에 그중에서 우두머리가 생긴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더 신기한 것은 도축장에 도착한 돼지 60마리를 계류장에 하차시키면서 다른 농장에서 실려 온 돼지 60마리와 같이 120마리를 한 공간에 두게 되면 곧바로 다시 새로운 우두머리가 출현한다는 점이다. 소리를 질러 상대를 제압하는 것인지, 저희들끼리 힘으로 코를 맞대고 몸싸움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눈싸움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수시로 몇 마리가 함께 무리를 이루든 그때마다 반드시 우두머리가 한 마리 생긴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육돼지의 습성을 감안할 때 숲에서 사는 멧돼지 역시 무리마다 우두머리가 존재할 것이 분명하다.

  모든 집단에는 왜 이처럼 우두머리가 생기게 되는 것일까. 먹이를 가장 먼저 차지하기 위해 서열을 정하는 것일까. 힘의 논리에 의해 각자 편안한 공간을 차지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본능일까. 어쨌거나 어떤 이유든 그렇게 우두머리는 생기기 마련이며 중요한 것은 그 우두머리로 인해 어떤 방식으로든 해당 집단의 질서가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곧 죽을 돼지에게 무슨 질서가 필요할까 여기겠지만 곧 죽더라도 죽기 바로 전까지는 삶이라 먹어야 하고 누워야 하며 순서를 정해야 한다. 죽으려고 옮겨지는 차량 안에서도, 대기실에서 죽는 차례를 기다리는 데도 삶에는 질서가 필요하게 되어 있다. 누가 우두머리냐에 따라 질서를 유지하는데 공평한가, 공평하지 않은가의 문제만 다를 따름이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가정에는 가장이 있고 범위를 넓히면 마을에는 이장이 있다. 학교에 가면 교장이 있고 학원에는 원장이 있다. 더 넓히면 시에는 시장이 있고 도에는 도지사가 있으며 한 나라에는 대통령이 있다. 그들 역시 모두 우두머리다. 그러나 단순한 우두머리는 아니다. 지도자라는 표현에 어울린다. 가장은 가장다워야 하고 이장은 이장다워야 한다. 교장답지 않거나 원장답지 않으면 교육의 목적이 이루어질 리 없다. 시장도 도지사도 대통령도 우두머리가 아니고 존경받는 지도자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 자리에 동물처럼 힘으로 스스로 오르지 않아야 한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다수의 뜻에 의해 가장 뛰어나고 합리적인 자가 추대되어야 한다.

  무릇 우두머리란 어떤 무리 안에서 가장 힘이 센 자일 것이다. 그런 의미의 우두머리란 스스로 그 자리에 올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지도자란 조직이나 단체를 앞장서 거느리고 이끌 자질을 갖춘 자로서 무리의 바람직한 비전을 제시하는 자라야 한다. 따라서 지도자란 스스로 차지한 경우도 가끔 있겠으나 다수에 의해 선택되거나 정해진 자격요건을 갖추고 오르는 경우라야 더 바람직하다. 어떤 무리든 무리의 속성상 우두머리만 존재하면 질서가 유지되겠지만 기왕의 질서라면 공평하게 유지되면 더 좋으리라. 그래야 무리가 더 행복할 것이라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며 훌륭한 지도자의 출현을 기다리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사람 사는 세상의 틀 안에서 지도자의 임기가 곧 죽을 돼지의 우두머리처럼 남겨진 시간의 질서유지 개념뿐이라면 너무 슬프다는 생각이다.

 

 

 요즘 동물국회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전국 각지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모인 여의도에 동물국회라니 창피한 일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자들이 일은 안하고 동물처럼 몸싸움만 즐긴다는 표현 아닌가. 민주주의의 꽃은 협의와 설득에 있는 것이거늘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서로 입만 열고 귀는 닫는다는 의미라 안타깝다. 다툼 역시 굽이굽이 더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길처럼  결국은 이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과정이라 믿는다. 그래서 무조건 적인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며 합의정신을 저버린 정치가들은 어쩌면 지도자가 아니라 그냥 우두머리라는 생각이다. 같은 생명이지만 사람과 돼지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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