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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 쓰레기장    
글쓴이 : 이성화    19-11-01 23:37    조회 : 4,930

우주 쓰레기장

이성화

 

  환경오염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정말 인류가 멸망에 이르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설마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아닐 것이라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21세기 초 지구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것이 시초였을까. 어느 해 긴 장마와 폭염을 동반했던 대한민국의 여름을 시작으로 아시아 일대는 아열대 기후로 변하게 되었다. 이는 지구 멸망, 아니 인류 멸망의 시발점이 되었다.

  지구의 모든 생물 중 유일하게 문화와 문명을 가지고 개발과 발전을 거듭했던 인류는 결국 스스로 망가뜨린 환경으로 인해 멸망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의 기후 변화를 시초로 지구 곳곳에는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그러나 그 심각성을 반성하지 않고 자연에 도전한 어리석은 인간들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시작은 과도한 에어컨 사용이었다. 더위를 참지 못한 사람들은 에어컨을 실내에만 설치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실외에까지 에어컨 설치를 고민하던 사람들은 지역 단위로 가동할 수 있는 거대한 에어컨을 만들어 냈고, 실외기에 해당하는 물건인 대기외기(大氣外機)를 인공위성처럼 우주에 띄우게 되었다. 하늘엔 구름대신 더운 공기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호스가 떠다니고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기온조차 인간의 기술로 제어할 수 있다 믿은 것이었다.

  인류 과학문명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던 그 사건으로 지구는 인내심을 잃고 말았다. 너무 많은 대기외기를 쏘아올리는 과정에서 지구와 우주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해 주던 오존층이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다. 지구의 공기가 우주로 나가며 중력은 균형을 잃었고, 태양은 더 이상 인간에게 희망의 존재가 아니었다. 걸러지지 않은 자외선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피부암을 안겨주었고 뜨거운 열기는 에어컨 따위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스팔트는 용암처럼 녹아 흘렀고 약해진 지반으로 인해 도심의 빌딩들은 폭격이라도 맞은 듯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기전자 제품은 열기를 감당하지 못해 폭발 사고가 연일 이어졌다. 휴대폰은 위험 소지품 1순위가 되었고 인터넷은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자동차는 시동을 걸자마자 폭발하니 거리에는 방치된 폭발물이 널려 있어 어딜 가나 위험한 상황이었다. 인간들의 오만함에 대한 자연의 노화(怒火)를 피해갈 방법은 없는 듯 보였다. 우주와 왕복하는 기술만 믿고 지구 밖에서 살길을 찾으려 위험한 탈출을 감행한 일부 인간들은 우주미아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인류는 기반을 잃고 먼 옛날 어느 예언자의 말처럼 멸망해 가는 듯 했다.

  청정지역에 살고 있던, 그야말로 오지에 살던 사람들은 그 피해에서 조금 비껴갈 수 있었다. 21세기가 끝나갈 즈음이 되자 영악한 인간들은 그들이 손대지 않았던 아프리카 오지를 중심으로 부활의 움직임을 보였다. 지구를 살리기 위한, 아니 지구에서 살기 위한 첫 번째 시도는 자신들이 만든 물건들을 버리는 것이었다. 단지 인간들의 편리함만을 목적으로 만들었던 쓸모없는 쓰레기들. 그러나 엉망이 되어버린 지구는 이미 쓰레기장이 되어 있었고 다시 터전을 마련하자면 쓰레기를 치울 다른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우주였다. 엉망인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환경오염의 주범이었던 물건들을 모두 쓸어 담아 우주로 쏘아보내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지구를 파괴한 것으로도 모자라 사악한 인간들이 우주까지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파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생존을 위한 필사의 시도를 막을 수는 없었다. 과연 인류가 우주까지 망가뜨려가며 생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생명체인가를 두고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들은 쏟아지는 태양빛보다 뜨거운 공방을 계속했다. 우주 쓰레기장에 인간들만 버리면 모두 해결되는 것 아니냐는 과격한 얘기까지 나오면서.

 

  아! 너무 덥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실내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고 싶지 않다. 잠깐씩 이동할 때조차 더위에 괴롭다. 걷다보면 실외기가 뿜어내는 열기에 짜증이 치솟는다. 사실 내리쬐는 태양빛이 더 뜨거운지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가 더 뜨거운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거리엔 큰 나무가 없어 시원한 그늘 한 점 없다. 통유리빌딩에서 반사하는 빛의 열기는 그나마 빌딩이 만든 인공 그늘을 찜통으로 만들어버린다. 여름이 더운 것이 날씨가 더운 것인지 인간들이 더 덥게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거리에도 에어컨을 틀어줄 순 없을까. 실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다 우주까지 날아갔으니 가도 너무 멀리 갔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데, 편리하고자하는 욕망에 맞춘 기술 또한 끝없이 발전을 거듭한다. 잘난 인간은 후퇴를 모른다. 과한 발전이 환경오염을 가져오고 문제가 되었다면, 불편함을 감수하며 후퇴해야 할 일이다. 건물의 높이를 낮추고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자동차 대신 두 다리를 이용하고. 될 리가 없다. 환경오염이 큰 문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나부터도 더우면 에어컨부터 찾는다. 전기세 많이 나올 걱정에 에어컨을 꺼둘 때는 있어도 환경 때문에 걱정이 되어 꺼둘 때는 없다.

  그래도 덥긴 너무 덥다. 우주까지 다녀와서도 에어컨의 켜짐 버튼을 누르는 내 손을 보니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걱정이다. 인간의 편리함과 지구의 편안함이 공존할 방법은 없는 걸까? 망설이는 손가락을 재촉해 에어컨의 온도를 1도만 올려본다. 내 몸이 자연의 온도에 조금이라도 순응하길 바라며.


2018, 3, 동인지 <열일곱, 그들의 봄>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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