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교체 프로젝트
이성화
“에잇, 그 남편! 개나 줘버려.”
지난 회식 때 누군가 남편 흉을 보자 듣던 이가 한마디 했다.
“개도 안 물어가요.”
나는 시큰둥하게 덧붙였다. 개가 무슨 죄란 말인가.
기혼 여성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남편 흉을 보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시합하듯 더 심한 경우를 내놓기 일쑤다. 남자들도 모이면 아내 흉을 안주 삼으려나?
얼마 전 종영한 《아는 와이프》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주혁은 일상에 지쳐 악다구니만 늘어가는 와이프가 무섭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타임워프 하는 방법을 알게 되고 과거로 돌아가 ‘와이프’를 바꾸고 만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짐작하겠지만 결론은 자신의 원래 ‘와이프’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좀 지난 드라마지만 《고백부부》라는 드라마도 있었다. ‘고백’은 사랑을 고백(告白)하다는 의미보다는 ‘Go back’이라는 의미가 더 강했다. 여기서는 부부가 함께 과거로 가지만 남편만 첫사랑을 찾아 아내를 바꾸려한다. 물론 아내가 현재로 돌아가려는 이유는 남편이 아니라 아들 때문이긴 했지만.
두 드라마는 주부들을 겨냥해 제작한 것일 테다. 그런 드라마에서 왜 남편을 바꾸지 않고 아내를 바꾸려는 시도를 했을까. 마음에 안 드는 ‘지금 남편’ 대신 첫사랑 ‘그 오빠’나, 머리가 벗겨져 차버린 잘 나가던 ‘그 남자’로 바꾸면 현실이 황홀해질까? 나도 가끔 ‘남편 교체’를 꿈꾸지만, 현실은 절대 아니올시다! 여자들은 대부분 ‘그 놈이 그 놈.’이란 생각이다. 바꿔봤자 시간 지나면 다정하게 사랑을 속삭이던 오빠도 무덤덤한 원수(怨?), 미끈미끈 잘 나가던 남자도 무덤덤한 대머리 원수가 될 뿐. 방법은 지금의 남자가 ‘바뀌는’ 것뿐인데, 현실 남편이 바뀌는 것은 지구에 공룡과 인간이 공존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드라마라는 판타지로마나 바뀐 남편을 경험해보려는 시도였다.
《아는 와이프》는 그런 면에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편 주혁은 과거로 가서 첫사랑으로 ‘교체한 와이프’에게 ‘원래 와이프’가 했던 역할을 기대하며 아쉬워한다. 원래 와이프였던 우진은 솔로로 그야말로 잘 나가는 중이고, 주혁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호감을 보인다. 더군다나 아이 둘의 존재를 ‘깜빡’ 잊은 주혁은 단 한번 아주 잠깐 죄스러워 할 뿐이다. 물론 결론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두 와이프를 모두 놓아주려 하지만 그 선택조차 위선으로 보였다. 주혁에게 너무 가혹한 점수를 준다고 나무라도 어쩔 수 없다. 주혁 혼자 과거로 갔고, 기억도 혼자 가지고, 어떡하든 혼자 해결해 보려는 발버둥이 안쓰럽긴 했다. 결국 우진이 두 팔 걷어붙이고 “내가 다 되돌리겠어!”라고 결심하며 상황을 해결해가지 않는가 말이다.
반면 《고백부부》는 진주와 반도 부부가 함께 과거로 가게 되서 결말까지 쭉 함께 해결해간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둘이 같은 상황을 다시 함께 겪으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의리를 재발견해 간다고나 할까. 이쪽 남편도 잠시 아들의 존재를 깜빡한다. 다른 것은 잠시 깜빡하고 자주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아내인 진주는 매일밤 아들을 그리워하며 현재로 돌아가길 기도하다 잠든다. 두 사람의 가장 큰 공감대인 아들을 시작으로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고 같이 고민하고 현재로 돌아가는 선택도 같이한다.
결혼 14년차, 40년을 넘기며 함께 사셨던 부모님에 비하면 아직 클라이맥스는 한참 남은 셈일지도. 때론 힘들었고 때론 흔들렸지만, 잘 버텨낸 지금 굳이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저 드라마나 보며 대리만족하고, 내 얼굴 보는 시간보다 TV를 보는 시간이 더 많아진 남편을 바꾸는 헛꿈을 꾸며 산다. 남편도 TV 속 늘씬한 아가씨들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고백부부》가 함께 헤쳐가는 모습이 좋아보이는 걸 보면 ‘남편 교체 프로젝트’는 역시 《쥬라기 공원》 급 판타지일 뿐이다.
2019년2월 <한국산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