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쁜' 위장
오길순
젊은 여자의사의 한마디는 치유의 묘약 같았다. 초긴장한 내 마음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어머나! 이렇게 이쁜 위장은 처음 봐요. 이 거 보세요. 식도까지도 이렇게 잘 생겼네요.”
10년 묵은 체증이 그리 내려갈까? 명치에 맺혔던 둔탁한 것들이 감쪽같이 스러지는가 싶었다. ‘이쁜 위장’ 이라니! 식도까지도 잘 생겼다니! 우수에는 대동강 물도 풀린다더니 봄볕 같은 의사의 한마디에 얼음장 같던 긴장이 흔적 없이 풀렸다. 흉측한 것도 처녀 얼굴이듯 청년의 외모이듯, 곱게 보는 그가 진정한 명의로 여겨졌다.
명치 끝 통증이 시작된 건 7,8년 쯤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악성이 되었다 해도 충분할 기간이었다. 정기적인 검진이 늘 두려웠다. 내시경 결과를 들을 때마다 긴장은 걷잡기 어려웠다.
서른 살도 넘기기 어려우리란 젊은 날이 있었다. 수시로 공격하는 다양한 통증 앞에서 마음도 롤러코스터 타듯 속수무책이었다. 어느새 고희까지도 잘 넘어온 걸 생각하면 감사의 노래를 불러도 끝이 없을 일이다. 그런데 이제 ‘이쁜 위장’이라니, 언감생심 장수걱정까지 더해야 할 일 아닌가. ‘골골팔십’이라는데 그의 한마디는 백세시대 예고도 같았다.
그는 일생동안 환자를 위해 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했을까? 그러기에 그리 평안한 인상이었을 것이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려는 촌철살인 한마디를 찾기 위해 자신의 인상부터 다스렸는지도 모른다. 꽃 보듯이 오장을 보는 그의 마음은 의술보다 높은 마음 치료의 복음 같았다. 스스로도 위장약을 달고 산다며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라는 위안의 말도 환자를 향한 지극한 기도로 들렸다.
대형병원은 6개월을 기다리라 했다. 가 본 적 없는 동네의원에 문의했다. 이튿날로 내시경 예약이 되었다. 인연은 복불복이라지. 새벽 같이 핸드폰의 ‘티맵’을 켜고 걸어가니 간호사는 아이 어르듯 반가이 맞이했다. 첫 손님이라며 마음을 다하는 게 보였다.
‘7,8 분 쯤 죽은 거야’, ‘또 한 번 죽는 거야!’ ‘눈 질끈 감고 견디고 볼 거야.’ 호스를 끼고 침상에 누우니 나도 몰래 눈물이 흘렀다. 지난 날 내시경에 놀랐던 뇌신경이 무의식 속에서도 지레 풀이 죽었나 보았다.
“어머니! 내시경 점수가 100점예요. 아니 200점예요. 힘든 걸 이리 잘 견디는 분은 처음예요. 토악질 한 번 안 하시네요.” 간호사의 칭찬에 아이처럼 더욱 참고 싶어졌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간호사의 한마디도 이미 치유의 묘약이 되고도 남았다.
지난 날 커피를 중독처럼 마신 적이 있었다. 위축성 위염 앞에서 절제해야 했다.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헐고 우툴두툴했던 위장이 ‘이쁜’ 위장으로 변하기까지 식이요법도 효과를 주었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지 않던가. 명의를 만났으니 위장에도 빛이 오리라는 짐작이다.
병원을 나오니 아침 해가 정수리를 뜨겁게 비추고 있었다. 참으로 찬란한 빛살이었다. 나는 들뜬 아이처럼 태양을 향해 홀로 맹세했다.
‘선생님, 이제 자주 올게요.’
은혜로운 그 분에게 천 냥 빚을 갚고도 싶어졌다. 그 분을 오래 주치의로 모실 것만 같다.
<<강남신문>>2020.3.31. (제 14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