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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순 씨의 방    
글쓴이 : 박영화    20-08-21 00:17    조회 : 5,486

복순 씨의 방

 

 

쇳조각이 엉키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젓가락 네 개, 숟가락 두 개. 그것들이 들어갈 만큼 주머니가 깊어서 다행이었다. 돌배기 아들은 등판에서 곤히 잠들었다. 말랑한 두 딸의 손을 놓칠세라 꼭 잡아서일까. 아이들은 자꾸만 손을 비틀며 빼내려고 했다. 애들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서울로 가자고 하는지 속 깊은 아내는 묻지 않았다. 길을 알려주던 달님은 어디로 숨었을까. 내딛는 걸음은 불안했다. 그렇게 함평 땅을 뒤로한 채 밤기차에 올랐다.

 

내 엄마 복순이는 스물다섯 되던 해 고향을 떠났다. 서울 동대문구에 터를 일구어 아들 하나, 딸 셋을 키웠다. 칠십이 되던 해 3,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가 되었다. 그녀는 화장터에서 울지 않았다. 아니, 우는지 울음을 삼키는지 자식들은 슬픔의 깊이를 알 수 없었다. 꼭 다문 입술 사이로 미세한 진동만이 흘러나왔다. 초점 없는 두 눈은 카메라 조리개처럼 깜빡일 뿐이었다.

초상을 치룬지 석 달이 지났을 때였다. 엄마의 방안에 아버지의 바지가 걸려있었다. 허리띠만 매어져 있지 않았을 뿐, 방금 벗어놓은 것처럼 구겨져 있었다. 룸메이트가 남긴 흔적을 지우고 싶었을까. 다 태워버려 눈에 띄는 유품은 하나도 없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걸 뭐하러 걸어놨어요.”

그냥 내두랑께. 놔두란 말이다.”

물기 어린 목소리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남매가 돌아가며 밑반찬을 들고 드나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엄마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녀의 눈빛은 아버지가 떠난 그날부터 흐릿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힘들다. 외롭다. 아프다는 투정을 하지 않았다. 가끔은 드라마를 보면서 웃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 감정의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비워진 그릇을 헹구며 별일 없다고 안도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께 저 아랫목에 누워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아. 눈만 뜨고 숨만 붙어 있어도 괜찮아. 그렇게라도 살아 있으면 좋겄어.”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이 조용히 퍼져나갔다. 내 속에 각인된 그들의 모습은 어찌 된 것일까. 새끼들 때문에 살았노라고, 다시 태어나면 길 가다 마주치기조차 싫다던 엄마의 말은 다 무엇인가. 자식들이 어찌 부부간의 일을 다 알 수 있을까마는 그리 금실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부모님의 어색한 분위기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내가 보기에 두 분은 언제나 자신들 입장에선 자기가 옳았다. 홀로 노후를 보내야 하는 외로움이 있겠지만, 적어도 엄마의 마음고생만큼은 덜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남겨진 아내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착각이었다.

 

딸애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 나는 가까운 친구와 남편에 대한 뒷말을 자주 늘어놓았다. 야릇한 쾌감은 맥주 한 상자를 마시는 폭주 같았다. 한 병 따고, 두 병을 넘기면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몰랐다. 땅콩 알 까먹듯, 오징어 찢어먹듯 남편이란 사내를 아내들의 입에서 입으로 탁구공 치듯 주고받았다. 그런 시절도 있었는데, 수다도 나이를 먹는지 이젠 적정 수위를 넘지 않는다. 아내와 남편이 한 팀으로 살아가는 것. 결혼생활 25년이 넘었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넘쳐흐르는 호르몬을 격하게 나누었던 청춘의 기억으로 사는 걸까. 아니면 생존을 위해 전장을 누볐던 전우애로 살아가는 것일까. 때때로 돌아누운 뒷모습은 지구 반대편 거리만큼 멀게만 느껴지는데. 갈수록 구부정해지는 어깨는 처량하기까지 하다. 전화기 너머로 함께 공놀이했던 친구는 이젠 늙어가는 신랑이 불쌍하단다. 더는 뜨겁지도 밉지도 않고 거울 보듯 바라보며 나이 들어가는 거란다. 나는 너를 가엽게 여기고, 너는 나를 안쓰럽게 봐주며 측은지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독거노인 생활 16년째, 엄마 복순 씨의 홀로서기는 나름 성공적이다. 단짝이 떠나간 방에 커다란 티브이가 자리를 차지했다. 동무들을 만나러 가는 경로당 행차도 익숙해졌다. 힘없이 흔들리던 눈빛은 제법 초점을 찾았다. 가끔은 빈 이부자리의 여백이 서글프기도 하겠지만, 옆자리에 남아있는 향기를 더듬으며 재회의 날을 기다린다.

너그들 고생 않게 자다가 죽어야 할텐디. 얼릉 가서 너그 아부지 만나야 할 텐디.”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지, 나에게는 여전히 어렵지만, 죽을 때까지 남녀로 산다는 둘의 오묘한 관계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2019. 1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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