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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반이라니    
글쓴이 : 박영화    20-08-21 00:21    조회 : 5,860

반반이라니

박영화

엄마, 나 결혼할 때도 반반이죠?”

친구 언니 결혼식에 다녀온 큰딸이 돌아오자마자 말 폭탄을 던졌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예고 없이 훅 들어온 한 방에 나의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한참 사회활동에 열정을 다할 이십 대에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자식은 태어나 얼마 동안 그 존재 자체로 부모에게 할 평생의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이 꼭 맞았다. 내 배를 빌려 세상에 나온 인형 나라 천사. 소중함, 귀여움, 사랑스러움. 표현할 수 있는 예쁜 단어를 다 갖다 붙여도 모자랐다. 이토록 영원히 꿈속이면 좋겠지만 그 보라빛 황홀함은 얄궂게도 서너 살까지였다.

엄마, 아빠를 더듬거리던 큰아이가 말문이 트이더니 내꺼야, 이거 사줘, 저거 갖고 싶어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동네 슈퍼나 문구점을 하루도 그냥 지나치는 날이 없었다. 아이에게 간택 당한 풍선, , 토끼 인형 등은 집안 곳곳에 쌓여갔다. 사랑에 빠진 엄마는 예스 맘이 되어 그 욕구를 채워주기만 했다. 그러나 허구한 날 내꺼야를 합창하는 두 딸의 본능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다.

큰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나는 반반의 규칙을 제안했다. 문자 그대로 갖고자 하는 물건이 생기면 비용을 나누는 것이다. 당시, 아이들에게 일정 금액의 용돈을 주급으로 주었고, 명절이면 친척들에게 받은 소득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만 원짜리 장난감을 가지려면 오천 원을 모으고 나머지는 엄마가 지급했다. 두 아이는 목적 달성을 위해 반드시 절반만큼은 모아야 했기에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대견하게 생각했다. 이만 원짜리 바비 인형, 오만 원하는 게임기 등 몸집이 커지면서 목표물도 단계적으로 상승했다. 법안은 대학 입학 때 새 컴퓨터를 구입하는 것까지 유지되었다.

 

친구 언니는 신혼집 비용을 신랑 신부가 반씩 냈대요.”

아니, 집값이 얼만데?”

요즈음은 다 그렇게 한 대요.”

딸애의 말은 즉, 맞벌이해야 하니 출퇴근이 쉬운 중심지에 거주해야 한다는 것. 전세나 자가 주택이나 별반 차이가 없으니 사는 것이 트렌드라면서 데이트 비용도 더치페이인데 집도 반씩 부담하는 것이 잘못된 논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무슨 강아지 풀 뜯어 먹는 소리인지.’ 조목조목 신세대 결혼의 조건을 읊어 대는 고 입이 어찌나 얄미운지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나라고 귀 닫고 사는 것도 아니니 시대가 변했다는 걸 왜 모를까마는 엄마로서의 품위유지보다 내 주머니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작은 딸애가 뱃속에서 두 달쯤 자리를 잡았을 때 서울 끝자락 은평구 구산동으로 이사를 했다. 여덟 가구가 모여 사는 다세대 2층이었는데 방 두 칸짜리 전세였다. 신혼을 한 칸 방에서 시작했으니 나름 발전한 셈이었다. 처지가 고만고만한 이웃이었고 살만하다 싶은 생각에 행복했었다. 그 시절에도 부모 백이 명품이거나 금수저 신랑을 둔 친구들은 딱 떨어진 아파트에서 새살림을 시작했다. 급수로 따지면 내 형편이 그들처럼 A급은 아니지만, B급 아니 C급은 되었기에 그리 막막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차츰 집을 늘렸던 소박한 삶이었다.

엄마는 방 한 칸에서 시작했어. 그 집이 얼마였더라···.”

옛일을 떠올리며 가족의 보금자리 변천사를 늘어놓았지만, 아이에겐 그저 현실성 없는 무용담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귀에 담지도 않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긴, 벌써 언제 적 얘기인가. 그 시절엔 남자가 능력껏 살 집을 구하고 신부가 혼수를 장만했는데···. 신혼집 비용을 함께 나눈다니 달라진 것은 물가 상승만은 아닌 듯싶다. 남녀 교육수준이 차이가 없고 직업영역 또한 성 평등인 세상이니 젊은이들 사고의 변화가 당연할지도 모른다.

물론 불필요한 혼수품을 사들이는 것보다 주택마련에 서로 힘을 모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에 이의를 갖지는 않는다. 문제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집값이다. 강북 토박이로 살아온 나는 한나절 강남 나들이만 다녀와도 남의 구역에서 헤매다 온 기분이었다. 한강 이쪽저쪽의 땅값 차이는 가끔은 인간의 품격까지 갈라놓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곱게 키워 대학까지 가르쳐 놓았으니 한시름 놓았고 어지간한 직장도 얻었으니 두 시름 놓았건만. 딸자식 혼수비용으로 노후를 위협당하는 현실이 내 발 앞에 떨어질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지역이 어디든 아파트값이 천정부지인데 양측이 반씩 부담하고 딸내미 몫의 반에서 그 반은 영락없이 보태줘야 할 것 아닌가. 평소 대학교육까지만 책임을 지겠다고 못을 박았던 나의 주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머릿속에 온통 ’, ‘’, ‘하는 북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그렇다고 반을 채워줄 수 없으니 집값 수준에 맞추어 짝을 만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요즈음 결혼 일찍 하는 세상도 아니잖아. 뭘 벌써 걱정하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준비가 된 후에 가정을 꾸려야지. 안 그러니?”

아이 방 쪽을 향해 한마디 던졌지만, 나의 말은 방문을 뚫지 못한 채 바닥에 툭 떨어졌다. 아무튼, 이것도 반반, 저것도 반반. 결혼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딸의 혼수 문제로 주말 저녁 나른했던 집안 분위기는 대략 난감해졌다.

떨떠름한 이 기분을 치맥으로 달래주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당분간, 양념 반, 프라이드 반 치킨은 먹지 못할 것 같다.

 

 

2019. 7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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