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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님과 메기매운탕    
글쓴이 : 박영화    20-10-08 21:32    조회 : 5,869

아버님과 메기매운탕

 

박영화

 

광장이 촛불로 타올랐던 2017년의 일이다.

권력자와 그 측근들이 저지른 행태에 나는 분개했으며, 마음껏 육두문자를 퍼부을 수 있어 야릇한 쾌감마저 들었다. 온갖 불법행위가 특보로 전해지던 어느 날, 장남 내외와 밥 한 끼 하자는 시아버님의 전화를 받았다. 천 원짜리 한 장 허투루 쓰지 않는 성품인 아버님의 외식 제안은 그리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뭘 그리 잘못했냐? 배가 가라앉은 것이 왜 대통령 탓이냐? 그동안 정권 잡아서 안 해먹은 인간 하나도 없다.”

적당히 조려진 메기 매운탕을 두 그릇째 먹고 있던 나는 느닷없는 아버님의 호소에 가만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너는 김xx 찍을 거지?”

결혼 후 첫 대통령 투표가 있었을 때, 시어머님은 걱정스러운 듯 말씀하셨다. 숨 쉬는 것조차 간격을 맞추려 애쓰던 초보 며느리 시절이었다. 당시는 지역감정이 팽배했기에 같은 지역 출신의 정치인에 대한 지지는 강렬했다. 친정 부모님의 고향이 전라도이니 시부모님은 아마도 염려가 되셨을 것이다.

광주에서 자란 엄마는 더 깊은 산골인 함평으로 시집을 가셨다. 몇 년 후, 백일이 갓 지난 오빠를 등에 업은 채, 여린 꽃잎 같은 두 언니의 손을 잡고 서울행 기차를 타셨다. 동대문구에 작은 집칸을 마련했을 때 내가 태어났다. 서울 한복판에서 도시아이로 자라났지만, 집 안의 분위기는 전라남도 어디쯤이었다. 두 분의 얼기 설긴 넋두리는 언제나 거시기로 시작해 거시기로 끝이 났다. 명절이 다가오면 뒤늦게 상경한 친척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들의 한 많은 서울살이는 거시기, 긍게, 어째쓰까나.” 등 속절없는 푸념이 되어 밤늦도록 온 집안을 떠다녔다. 황석어 젓갈을 듬뿍 넣어 담근 김치가 마당 구석 항아리에 가득했고, 철마다 구린내 풍기는 까만 홍어가 치렁치렁 처마 밑에 늘어졌다. 그렇게 나는 온통 전라도 냄시에 절인 채로 자라났다.

나와는 달리 남편은 경기도 파주 출신이며, 시부모님 두 분의 고향은 삼팔선 이남의 작은 마을이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시아버님은 노모와 함께 큰 형 집에 기거하셨다. 한 핏줄인 형님의 집에 의탁하는 것이니 비교적 고충이 덜 했겠지만, 피를 나눈 형제가 아무리 소중한들 제 자식만 하겠는가. 집안의 장손인 큰조카의 대학 진학으로 젊은 아버님은 공부를 중단하셔야만 했다. 흰 밥 할 술 챙겨 먹기도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두 명의 대학생 뒷바라지는 가당치도 않을 일이었다. 대학을 중퇴한 아버님의 설움은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완고한 의지로 연결되었고, 평생을 지역 공무원으로 근무하셨다.

아버지, 저희도 잘 생각해 볼게요. 그러니 집회 너무 자주 다니지 마세요. 건강을 생각하셔야죠.”

남편은 오늘따라 장남다운 듬직한 당부를 전했다. 날 좋은 주말이면 함께 늙어가는 동무들과 주변 산으로 향하시던 노년의 나들이는, 촛불이 광화문을 뒤덮은 그 겨울 이후, 시청 앞 광장으로 이어졌다. 내조의 여왕이신 어머님은 매일 아침, 출처를 알 수 없는 가짜뉴스를 자식들에게 보내셨다. 그 덕분에 어머님의 문자 실력은 나날이 진화했다.

한 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엔 마른 침묵만 가득했다. 창문을 열었지만 성급한 여름은 봄날의 여유를 넘보는 듯, 바람은 상쾌하지 않았다. 나는 백미러로 아버님의 얼굴빛을 살폈다. 낡은 가방을 메고 구부정한 허리춤을 고쳐 세우며, 구호를 외치시는 모습이 보이는듯했다. 오로지 성실과 원칙만이 삶의 밑천이었고, 어렵게 얻어낸 자리를 지켜내야 했을 것이다. 바위 같은 아버지는 지독한 고집쟁이로 비쳤으리라. 젊은 시절의 열정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고, 가장은 그저 열심히, 죽도록 열심히를 목구멍 가득 채웠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고통에 대한 감흥을 느끼느냐 그렇지 않은가.”로 구분한다는 유시민 작가의 논평에 나는 공감한다. 그러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개조차 돌릴 수 없는 비좁은 한 평의 인생길을 달려오신 아버님. 그 삶의 무게를 자식으로서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촛불혁명은 잘못 굴러가고 있던 세상을 향한 국민의 외침이고 나 역시 그들과 나란히 서 있다. 그러나 철 지난 외투 속에 감춰진 아버님의 애달픈 메아리도 여기 우리들과 함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버님, 저 메기 매운탕 오늘 처음 먹었어요.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는 저희가 모실게요. 메기가 기력회복에 좋대요.”

나는 전에 없이 물기 어린 콧소리로 말씀드렸다. 아버님은 어린아이처럼 맑게 웃으셨다.

 

2019. 동인 수수밭 길 맑은날, 슈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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