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나를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박영화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 바람이 앉았다. 거리마다 마른 나뭇가지들이 뒤엉켜, 애꿎은 환경미화원들만 고달프게 생겼다. 아직은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나의 가을맞이는 두꺼운 외투를 찾아 장롱을 뒤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박영화 씨, ‘릴케’ 한번 해 보시죠?”
“네! 저, 잘 모르는데요.”
“아니, 릴케를 몰라요?”
“시인 아닌가요?”
까만 안경 너머 교수님의 눈빛에 차마 이름만 들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명색이 평론 공부를 한다면서 어찌 무식의 밑바닥을 들어낼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난국을 어찌하면 좋을까···.’
문학에 대한 나의 관심은 불투명한 삶에 스며든 생소함이었다. 미국 이민 초기, 가까운 한인교회를 방문했다. 유학생이든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든, 태평양을 건너온 한국인 대부분은 너나 할 것 없이 교회에 다녔다. 척박한 남의 나라에서 피가 당기는 동질감에 그 문턱을 넘었을지도 모른다. 작은 개척교회이다 보니 전 교인의 간부화 체제였고, 내 임무는 서가 관리였다. 집안 어딘가에 쌓여 있거나 냄비 받침으로 취급되었던 책들이 이곳에서는 그 존재를 드러내며 벽면을 가득 채웠다. 도서를 선정하여 읽고 추천 리뷰를 작성해야 하는 일이니, 어쩔 도리 없이 교회 도서실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를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다행히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때부터였다. 뒤늦게 시작된 책을 읽는 행위는, 지구별 수만 가지 소음으로부터 나 자신만을 바라보게 했다. 펼쳐진 책으로 들어가 답답한 현실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다.
두 딸과 남편의 공부가 끝난 후, 가족은 영구 귀국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자, 십수 년의 공백으로 인한 무력감으로 점점 지쳐갔다. 더욱이 잠복 중이던 갱년기는 나를 빛바랜 유화처럼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즈음 수필 동아리와 평론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것은 열기가 빠져버린 중년에게 찾아온 행운이었다.
“네, 한 번 해보겠습니다.”
대답했지만 밑천이 드러날까,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불안했다. 검색창에 ‘릴케’를 넣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등 ‘도대체 뭔 시를 이렇게 많이 썼을까.’ 나는 시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온갖 미사여구를 붙인 간지러운 단어들은 사랑 타령같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시를 읊조리는 것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기억하는 모든 시간이 아름다운 추억이면 좋겠지만, 세상이 온통 가혹하게 굴었던 흔적만이 세포 마디마디에 저장되어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아니, 보기 싫었다.
도서관에서 맞닥뜨린 릴케 관련 책은 얼핏 보아도 수십 권이 넘었다. 그 중, 두 권을 손에 들고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며, 지하철 안에서, 설거지하다가도 그의 시와 편지를 들여다보았다. 길을 걸을 땐 오디오북을 통해 전해지는 음성을 마음에 담았다. 독일의 시인이 조금씩 내게 다가왔다.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릴케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문장들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내 속에 가득한 공기의 밀도를 느슨하게 만드는 듯했다. 머릿속에 겹쳐진 수만 가지 잔상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두꺼운 커튼이 젖혀지고, 원래,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것이 드러났다. 고개를 들면 따스한 품을 내어줄 것 같은 청초한 하늘이, 꽃길을 깔아 놓은 듯 쭉 뻗은 아스팔트가, 아슬아슬하게 달린 누런 나뭇잎들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휘리릭’ 귓불을 스치는 바람이 어디에서 온 것일까 궁금해 저 빌딩 너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바스락거리는 수줍은 수다에 잠깐 숨을 멈춰 보기도 했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 계절의 형체였다.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으려 코끝에 힘을 주었다. 앉아있던 공원 벤치 아래, 바람 타고 모여든 군중만이 나를 지켜보았다.
“릴케 오빠랑 잘 돼가?”
“어. 그런데, 이 오빠, 대단한 시인이야. 나 완전히 반했잖아.”
“그래? 그럼 나도 콧수염이나 길러볼까?”
핸드폰 화면 속 젊은 시인을 보고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질투 어린 그의 장난에 우리들의 첫 데이트가 생각났다. 오래전 초가을, 대학로 밤거리. 목젖이 보이도록 호탕하게 웃는 그의 순수함이 좋았다. 그날 우리는 어스름한 저녁, 사그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한참 동안 거닐었다.
체감온도는 점점 낮아진다. 여전히 옷장을 뒤지며 다가올 추위와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창문 틈으로 작은 이파리 하나가 들어왔다. 손끝으로 살짝 집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가을바람은 나를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2019. 동인 수수밭 길 《맑은 날, 슈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