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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 화장실    
글쓴이 : 이성화    21-01-06 10:31    조회 : 8,865

열린 화장실

이성화

 

화장실 문이 없다니 당황스럽다. 중국이나 인도에는 화장실 문이나 가림막이 없고 구멍만 뚫린 공간이 쭉 이어져 있기도 하다는데, 인터넷에서 본 그런 곳들 사진이 떠오른다. 그나마 좌식변기가 있고 몸통까지 가릴 정도의 칸막이는 있는데, 문은 없다. 어쩌나, 점점 신호가 강하게 온다. 할 수 없이 최대한 구석진 곳의 빈 변기에 앉는다. 그런데 너무 긴장한 걸까? 급한 신호는 아랫배 안에서만 울리고 변기를 울리는 시원한 소리가 나지 않는다. 누구라도 들어올까 봐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지는데 몸은 전혀 반응이 없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화장실로 들어온다. 제발 이쪽까지는 들어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칸막이 위로 올라온 고개를 최대한 숙인다. 발소리가 점점 다가온다. 지금이라도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히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결심한다. ? 이상하다. 옷이 없다. 나는 지금 벌거벗은 상태다. 사람들이 다가온다. 스쳐 지나간다. 봤을까? 봤나? 고개를 돌려서 빤히 쳐다보진 않았는데?

 

안절부절, 초조한 마음이 극에 달할 때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비비며 더듬더듬 스마트폰을 찾아 화장실 꿈 해몽을 검색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속 시원한 해몽은 없었다.

칸막이가 없는 화장실 꿈은 사생활이 노출되는 상황? 연예인도 아니고 사생활 노출될 상황이 뭐가 있을까, 내 방이라고 한정된 공간이 없긴 하지만 남편, 아이들에게 노출되어 위험할 사생활도 없고.

꿈에서 자신의 나체를 부끄러워하고 감추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있거나, 어려운 처지, 고독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라는데, 화장실에 있을 때도 해당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사실 나는 잊어버릴 만 하면 한 번씩 화장실 꿈을 꾼다. 상황은 거의 비슷하다. 화장실 모양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열려있다는 거다. 두 번째는 내 차림새다. 차림새라고 하기에는 민망하게도 헐벗고 있거나 다 벗고 있는 상태다. 마지막으로 꼭 누군가 다른 사람이 들어와 안절부절못하다 깨고 만다.

도대체 왜 이런 쓸데도 없는 꿈을, 그것도 반복해서 꾸는 것인지.

 

서울디지털대학의 마지막 학기, 편안한 마음으로 선택한 교양과목 <감정코칭> 수업에서였다. 감정과 감정코칭이란 무엇인지, 감정코칭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개요 시간이 지나 인간의 주요 감정인 분노, 슬픔, 불안과 수치심에 대해 배우는 주차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설화에서 임금님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우습게 볼까 봐 두려워서 귀를 감추고 비밀을 지키도록 강요한다. 이처럼 수치심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 그러나 임금님의 귀가 드러났을 때, 오히려 백성들의 소리를 귀담아듣느라 당나귀 귀가 되었다고 여겼고 그 뒤로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된다.

수치심은 실제로 혹은 가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거나 놀림이나 비웃음을 당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몹시 부끄러운 마음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수치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서울디지털대학 교양과목 감정코칭(이지영 교수) 교안 참조>

 

내 안에도 당나귀 귀가 있다. 불안한 어린 시절, 마치지 못한 학업, 이루지 못한 꿈, 대물려 받아버린 가난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관심조차 없는 당나귀 귀를 감추느라 급급한 무의식이 쓸데없는 꿈을 반복해서 꾸게 했나 싶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알몸을 혼자만 부끄러워하며 감추었다.

불완전함은 결함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일 뿐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세요. 자신의 부족한 면을 인정하고 사랑해보세요. 잘하는 면을 인정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스스로 받아들여 보세요.”

차분한 태도로 조곤조곤, 강의가 아니라 아끼는 후배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는 듯한 교수님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꿈속에 그 화장실은 여자목욕탕 탈의실 안에 있는 화장실이었는지도 모른다. 탕에 들어가기 전 화장실에 들렀다면 벗고 있다 한들 대수인가. 다른 사람들도 벗고 있거나 옷을 입은 사람도 벗은 사람에게 관심 없을 텐데.

 

수필을 쓰며 나를 자꾸 드러낸다. 이 일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부족한 면을 인정하는 일이기를 바란다. 그러다가 그 일이 내가 잘하는 일이 되어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할 수 있기를 꿈꾼다.

또 열린 화장실에 들어가는 꿈을 꾼다면, 무사히 볼일을 마치고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 그러다 이 나이 먹고 이불에 지도를 그리는 건 아니겠지.


<문예바다> 202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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