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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잠실(蠶室)에서(격월간지 '에세이스트' 2021.3-4월호)    
글쓴이 : 김주선    21-03-07 15:35    조회 : 11,254

당신의 잠실(蠶室)에서/김 주 선

 

 삼십오 년 전 봄, 부모님은 생계의 수입원인 잠업(蠶業)에서 손 떼셨다. 섬유산업의 발달로 합성섬유가 대중화되고 누에고치 수매가격이 폭락하면서 뽕밭을 갈아엎고 땅을 묵혔다. 토질이 안정되면 과실나무 묘목을 심을 요량이었다. 휴지기를 보낼 무렵, 시집간 막내딸이 다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었던 모양이다. 첫차를 타고 달려온 부모님은 시댁 세간살이를 보고 기가 찼는지 방으로 들어오기도 전에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 아빠는 변변한 직업도 없이 얼굴만 반지르르한 연기 지망생이었다.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아이가 생겨, 나는 어쩔 수 없이 시댁의 단출한 집에 얹혀살았다. 살림과 직장생활을 병행했음에도 눈칫밥을 먹었다.

 출산과 함께 부실한 산모의 몸속으로 결핵균이 급성으로 왔다. 시댁 부엌의 연탄불은 시퍼런 혓바닥을 놀렸고 펄펄 끓는 소독물에서 달그락거리는 내 숟가락과 밥그릇처럼 나는 떨었다. 엄마는 사위를 영영 안 볼 사람처럼 나의 손목을 잡고 강원도 영월 친정으로 끌고 내려갔다. 한 사흘은 기생오라비 같은 사위 놈 욕하는 시간으로 보내더니 더 보탤 욕도 없어진 모양이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무엇엔가 홀린 듯 엄마는 분주했다. 잠실(蠶室)로 쓰던 사랑채를 청소하고 바닥이 뽀송뽀송 마르도록 군불도 지폈다.

 그해 6월쯤, 일흔이 넘은 엄마는 느릅재 떡갈나무 숲에서 살다시피 했다. 떡갈나무 잎이 결핵균을 죽이는데 효능이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물결 모양을 한 넙적넙적한 이파리를 따와 잠실에 쏟아부었다.

 “걱정하지 마라. 아무 걱정하지 마라.”

 한 달 후면 툭툭 털고 일어날 것이라는 엄마의 낯빛은 햇살처럼 빛났다.

 마흔여섯에 늦둥이로 낳은 막내딸의 병시중을 들게 된 엄마의 하루는 마치 누에를 치던 그 모습과 흡사했다. 침대만 한 평상을 만들고 그 아래는 떡갈나무 잎을 깔았다. 심지어 침상 보료 밑에도 잎을 몰래 넣었다. 그 위에 뻣뻣하게 풀 먹인 하얀 광목천의 이부자리를 펴고 나를 눕게 했다. 한잠(누에잠 2일가량)을 자고 나면 엄마는 새로운 잎으로 또 갈아 넣었다. 그렇게 넉 잠(누에가 네 번째 자는 마지막 잠)을 잤을까. 숨이 죽은 잎에서 군내가 나 없던 병도 도질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뽕잎만 먹고 채반에 누워 사는 누에처럼 떡갈나무 이파리를 사각사각 파먹으며 베고 자고 뒹굴었다.

 봄이면 돈이 되는 두릅나물 고사리 산나물 등, 궁한 시골 살림이 피는 좋은 시절임에도 엄마의 넝마에는 언제나 떡갈나무 잎사귀뿐이었다. 하루가 고된 줄도 모른 채, 어스름 저녁이면 멍석을 펴고 또 한 번 잎을 선별했다. 부드럽고 향이 짙은 여린 잎은 방 구석구석 바구니에 담아 놓았다. 물에 깨끗이 헹군 잎은 삶은 감자나 음식도 싸서 보관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떡갈나무 잎을 사용했다. 엄마의 손은 풀독이 올라 늘 벌겋게 부어있었다.

 조금씩 밥술을 뜨고 말린 육포에도 손이 갈 즈음, 풀물이 들어 누렇게 더러워진 이불 홑청을 뜯던 엄마가 짓궂은 농담을 던졌다.

 “봐라, 누에가 오줌 쌌다!”

 딸을 웃기려고 한 소리지만 나는 죽을까 봐 겁나서 몰래 울었다. 실을 뽑기 전 마지막으로 오줌 한번 싸고 고치 집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된다는 말을 얼핏 들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1937, “식물이 내뿜는 휘발성 기체인 테르펜 속에 살균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구소련의 토킨 박사(Torkin)떡갈나무 잎을 결핵균과 함께 넣어 두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균이 완전히 죽어버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질병을 치유하는 삼림욕이란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켰다.

 (이우충 저, 삼림욕, 김영사, part 2) 

 정보가 귀했던 시골 촌 노인이 신문 칼럼을 오려 부적처럼 가슴에 품고 산 이유를 나도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알게 되었다. 살다 보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매달리고 싶은 날이 얼마나 많은가. 가슴 졸이고 숨죽여 울어야 할 어머니의 숲, 떡갈나무 숲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족히 한 달이면 훨훨 날아가게 될 것이라 믿었던 나는 엄마의 잠실에서 겨울까지 살았다. 표준 월령에 비해 작았지만, 다행히 내 아기는 건강했고 서울 친할머니 품에서 쑥쑥 잘 자랐다. 어머님의 기도로 정신을 차린 아이 아빠는 이듬해 신학대학원에서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했다.

 도토리 씨가 말라 산짐승이 다 굶어 죽었다는 우스갯소리를 먼 옛이야기처럼 하시다가 십여 년 전 엄마는 돌아가셨다. 백수는 못 채웠어도 정정한 삶이셨다. 평생 비단옷을 입어본 적 없는 엄마였지만 누에고치 품질은 언제나 최상급이었다. 노란 누에고치로 만든 황금 수의를 입혀드렸어야 했는데 수의 또한 소박한 베옷이었다. 어쩌면 나의 완치는 엄마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의학의 발달로 질병에 맞는 치료 약 덕분이겠지만 엄마의 처방만 할까. 당신의 잠실에서 무지개 색깔로 고치를 지은 딸이 최상의 품질인 마지막 잠업(蠶業)이었을 것이다.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하고 집들이 선물로 떡갈나무 화분 하나가 배달되었다. 상춧잎처럼 몇 장 따서 냉장고 속에 두면 좋다고 해 골랐으니 잘 길러보라는 친구의 축하 화분이었다. 살균과 탈취 효과가 있는 정화식물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굳이 관상용으로 길러보라는 말이 탐탁지 않았지만, 친구의 속 깊은 의미를 알기에 자리를 만들어 집안으로 들였다.

 바람이 불면 흥에 겨운 떡갈나무 이파리가 서로 손뼉을 친다. 잎을 만지면 어머니의 손을 보듬는 기분이 들어 마른 수건으로 매일매일 닦아 준다. 낮잠이 스르르 오는 날이면 누에나방 한 마리 꿈속으로 찾아오고 도토리를 품고 있는 껍질에서 종소리가 들린다.


2021.3-4월호 에세이스트 발표

('The 수필'_ 2022 빛나는 수필가 60) 선정작

('에세이스트' _2022 대표에세이 51)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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