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와 베토벤
성혜영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해가 바뀌었다. 무심히 떡국을 끓이며 몇 가지 전을 부치는데, 새해 첫날 아침 두 시간째 울려 퍼지는 베토벤의 ‘합창’. 둘이 사는 집에 흔치 않은 일인데, 새해 조짐이 좋다. 새해를 맞는 반려자의 마음이려니 생각하니 다행이다. 감정표현을 읽기가 쉽지 않은 사람인데 새해 첫걸음을 힘차게 내딛고자 하는 마음이리라. 바이러스에 의기소침해져서 일 년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허탈함. 지루했던 한 해를 보낸 시원함이 음악에 실려 힘차고 활기차다. 불청객 코로나를 훌훌 털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합창하며 새해를 맞는다
지난가을 남산을 같이 걷다가 친구에게 물었다.
“저 소나무, 베토벤과 닮지 않았어?”
어떤 대답이 나올지 초조했다.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네.” 원하던 대답을 들으니 날아갈 듯 신났다.
내 딴엔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의문이었다. 친구의 대답이 지금 이 글을 만들고 있다.
‘그게 말이 될까?’라는 의문이 풀린 시원함에 그날 남산의 소나무는 더 푸르르고 의연했다. 내가 느끼는 소나무는 베토벤과 닮아있다. 그들에겐 나약한 이들을 모두 품어 안을 수 있는 포용력과 굳센 힘. 그런 게 있다. 그래서 ‘내 마음의 소나무는 베토벤이다.’
남산에 오를 때 수복천 약수터를 끼고 지름길에 들어서면 소나무 숲이 있다. 인체공학적으로 만든 곡선의 멋들어진 의자에 누워 하늘을 본다. 빼곡한 소나무 무늬 사이로 하늘은 숨바꼭질하듯 조각조각 보인다. 피톤치드 향이 내 몸을 감쌀 즈음, 누운 채 베토벤의 ‘전원’을 들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라는 생각에 미친다. 소나무와 베토벤의 향연.
돌아오는 길에 습관적으로 집 근처 서점에 들렀다. 나를 보아달라고 누워있는 책들이 정겹다. ‘어쩜 이렇게 예쁜 책이 있을까?’ 자석에 끌리듯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이건 책이 아니라 미학이며 예술이며 식물이다. 종이의 질감도 자연 그 자체이다. ‘나무처럼 살아간다’라는 책 표지만 봐도 마음이 싱그러워져 사다 놓고 자주 뒤적인다. 내 눈을 맑게 해주는 마스코트이자 반려 책으로 자리매김. 표지의 나무 그림들 귀퉁이에 ‘흔들리며 버티며 살아가는 나무의 지혜’라는 부제가 쓰여있다. 나무와 우리들의 삶과 다를 게 무언가(?) 나무도 버티며 살아가려면 지혜가 필요한 것을. 평소 좋아하는 은행나무와 소나무에 대해 살펴본다.
은행나무의 주제는 ‘누구도 완벽하진 않다’이다. 아름답고 생명력이 강하나 지독한 냄새가 빈틈을 보인 게다. 냄새는 열매 맺을 시기 잠깐만 참으면 될 것을. 히로시마의 원자폭탄에서도 살아남은 은행나무이거늘. 지독한 공해, 이산화탄소를 우리 대신 먹어주거늘. 은행나무 냄새의 주범은 암나무. 그렇다고 그 많은 나무를 냄새 없는 수나무로 바꾸자는 말이 있다고 이 책에서도 얘기한다. 그 말은 시끄럽다고 강아지의 성대를 수술하는 격이 아닐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소나무에 대해 살핀다.
코르시카섬의 소나무는 ‘과거에서 배우기’
스코틀랜드의 소나무는 ‘나의 자리를 지킨다’이다. 나무도 살아가는 이치가 사람과 진배없다. 소나무에 있어 과거의 큰 시련은 태풍이다. 숲의 가장자리를 지키는 나무들은 몸통을 가늘고 튼튼하게 하여 흔들어대는 겨울바람에 적응한다고 한다. 소나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본연의 자리를 지키며,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진다고 하니 놀랍다.
그래서 역경을 극복한다니 나무의 의연함에 경외심을 보낸다.
부산 해운대의 속속들이 모든 곳을 소나무가 지켜내고 있다.
늘 푸른 소나무는 항상 제 자리에 서 있다. 해운대 달맞이고개의 소나무, 동백섬의 소나무. 그들의 위용을 떨치는 자태에 압도당하는 사람들. 달맞이길을 걷는 문탠로드의 소나무 숲.
해운(海雲) 최치원 선생도 이곳의 절경에 취해 떠나지 못했다고 하니 소나무도 한몫했으리라.
자연은 우리에게 조건 없이 너른 품을 내주고 있다. 자연에 진 빚이 많은 우리도 소나무처럼 자아 성찰을 해야겠다. 지난달에 만나고 온 달맞이길, 동백섬의 소나무들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갈 때마다 고고한 모습은 그대로인데 맞이하는 마음은 새롭고 벅차다.
변치 않고 의연히 의리를 지킬 줄을 아는 소나무를 닮고 싶다.
새해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핸드폰 단톡방에 들어온 음악을 듣고 나서 쭉 훑어본다. 오늘도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에 클릭하며 아침을 연다.
아침에 달빛은 아이러니하지만, 그냥 좋다. 슬픈 듯 아름다운 곡.
루체른 호숫가에 달빛을 받은 나만의 소나무를 그려본다.
월광의 피아노 소리는 아침을 열기에 충분하게 아름답다.
202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