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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선물    
글쓴이 : 노정애    12-05-16 17:54    조회 : 5,732
 
마지막 선물

                                                                                                               노문정(본명:노 정 애)

  경상남도 창원시 지귀동 325번지. 아버지의 출생지며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꼬리표처럼 달고 다닌 본적지다.  슬하에 12남매를 두고 부모가 주신 재산으로 편안한 삶을 누리면서도 자린고비에 여포(呂布) 창날 같은 성격을 가졌던 할아버지가 평생을 사신 곳이기도 하다.
  초등학교때 입 하나 덜기 위해 우리 4남매 중 한둘은 방학에 그곳으로 보내졌다. 난 뽑히지 않기 위해 아픈 척도하고, 앙탈도 부렸지만 두번중 한번은 어김없이 당첨되어 가야했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새할머니가 오신 때가 아버지의 결혼과 비슷해 부자가 함께 새신랑이 되었다.  보통 언니나 동생과 짝이 되어 시골에 가면 늘어난 식구를 싫은 기색 안하고 받아준 할머니와 한두살 차이가 나는 삼촌, 고모들이 친구가 되어준 것이 유배지 같은 그곳 생활을 숨통 트이게 하는 구석이었다. 
  할아버지는 자식이며 손자들에게 모질고도 엄하게 대하셨다.  수탉이 목청껏 아침을 깨우면 우리 모두를 싸잡아 일으켜 “일 안 하면 밥도 못 준다”고 눈을 치켜뜨며 엄포를 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토끼나 닭들의 아침을 해결시킨 후 아궁이에 불도 때어 밥도 짓고 잔심부름도 해야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식사가 끝나면 여름에는 밭에 잡초를 뽑거나 적당히 자란 아기의 살결처럼 보드라운 가지나 가시가 톱날만큼 따가운 오이를 따야했다.  겨울에는 먼 산으로 나무를 하러갔다.  달비와 나무 가지를 지게 가득 싣고 와야 점심이나 저녁 먹을 자격이 주어졌다.  워낙 무서운 분이라 그분 말씀이 곧 법이었다.  준법정신 투철한 난 밥을 굶은 적은 없었다.  철저한 경제 교육과 노동의 즐거움을 둘 다 가르치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는지 모르나 난 할아버지가 무섭고 밉기만 했다.
  어느 해 겨울 언니와 함께 갔을 때의 일이다.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타서 멀미로 거의 탈진할 지경에 도착한 그곳.  솟을대문에 들어섰을 때 마당에 계신 할아버지와 눈이 딱 마주쳤다.  인사도 올리기 전에 당장 내 집 밖으로 나가라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영문을 몰라 다리는 후들거렸고 괜한 서러움에 닭똥 같은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어디선가 할머니가 뛰어 나오셨다. 애들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열심히 설득하는 1시간이 내게는 10시간 보다 긴 고문처럼 느껴졌다.  우리의 손과 발은 꽁꽁 얼어 오도 가도 못한 체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산을 타고 내려온 바람은 마당을 지나 약 오른 고추만큼 매운 칼바람으로 변해 내 가슴을 훑고 등골을 시리게 해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겨우 들어간 그곳은 나에게 더 이상의 할아버지 댁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돈을 빌려갔는데 지난 달 이자가 들어오지 않아 괘씸죄에 걸려 받은 처벌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빌린 돈을 갚지 않으면 등골에 칼날 같은 시린 바람이 지나간다는 진리를 난 그때 배웠는지도 모른다.  그일 이후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더 강짜를 부렸다.  중학교에 가면서 말만한 계집애를 보내는 것도 탐탁지 않은데다 형편도 좋아져 안 가겠다고 떼 쓸 일은 더 이상 없어졌다.
  내가 성년이 되었을 무렵 명절에 할아버지 댁에 가서 인사를 올리면 “쟈는 누고”가 제일 먼저 듣는 말이다.  슬하 12남매의 여식들까지 일일이 기억하기에는 나이가 드셔서 반드시 물어보셨다.  작은 여식이라는 아버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길고 지루한 훈계가 시작된다.  여식은 제 이름 석자만 쓸 줄 알면 시집보내야지 무슨 대학이며 공부냐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난 슬금슬금 뒷걸음으로 빠져 나오지만, 아버지만은 날아오는 불똥을 피하지도 않고 다 받으셨다.  기력 쇠한 할아버지의 잔소리가 좋은지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잘못했다며 머리를 조아리셨다. 
  그런 그분은 내 결혼이 한 달 앞으로 바싹 다가와 준비가 바쁠 때 덜컥 앓아누우시더니  집과 가까운 부산 큰 병원에 입원하셨다.  병원에서 온 어머니가 노환이라며 며칠 넘기기 힘들겠다고 했다.  입고 계시던 옷가지와 신발을 챙겨서 가져왔는데 조끼며 마고자 양쪽 주머니가 상추쌈 밀어 넣은 볼처럼 불룩했다.  세탁을 위해 주머니를 털었을 때 꼬질꼬질한 손수건에 쌓여진 덩어리가 ‘툭’ 떨어졌다.  풀어보니 만원과 천원권 지폐를 검정 고무줄로 꽁꽁 묶어 달아나지 못하게 포박해 두었다.  어림잡아 100만원쯤 되었는데 동전도 한 주머니다.  어머니는 “노인네가 참 힘도 좋다. 이 무거운 걸 어찌 가지고 다니냐”며 다시 싸두셨다.  자신의 힘이 되어준 피와 살 같은 돈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집에서 임종보시라며 퇴원할 때 세탁된 옷을 받자마자 그것부터 확인하셨다고 한다.  돈이 3만원이 빈다며 생떼를 쓰셔서 두장을 더 얹어 드리니 흐뭇해 하셨단다.
  난 할아버지가 아프거나 말거나 그저 원망스러운 마음뿐이었다. 끝까지 날 골탕 먹이려고 하필이면 이때 아프실 건 뭐람.  온 집안 초상 친다고 결혼식도 못하는 게 아닌가 하여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일주일을 못 넘길 거라는 의사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기운을 차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시장구경도 다니고 여전히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지내셨다.  물론 난 편안한 마음으로 결혼식을 치렀고 서울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새살림 정리와 집들이 행사가 끝난 두달쯤 후 여름 한밤에 할아버지가 88세의 생을 마감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살림정리시간까지 넉넉히 주시고 가신 것이다.  장례식에 참석하며 이것이 미움 덜라고 주신 그분의 마지막 선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왈칵 눈물이 나왔다.  끝까지 날 울리는 분이다.
  그 후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날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뜻하지 않게 좋은 일이 생긴다.  표현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손녀를 사랑하셨나보다. 그런 마음도 모르는 나.  미움 덜고 가신 마지막 선물이 아직도 약발이 덜했다고 생각되는지 감사함보다는 미움이 많은 할아버지가 꿈속에 나타나길 바라는 철없는 손녀일 뿐이다.  
 
                                                                                                   <수필시대> 2005년 9/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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