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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 걸린 나무 <좋은수필> 2021, 7월호 발표    
글쓴이 : 최선자    21-08-15 14:38    조회 : 5,166

                                 시계 걸린 나무

최선자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드디어 아까시나무 꼭대기 가지에 연둣빛 잎사귀가 눈을 떴다. 마치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환자를 보는 듯 반갑다. 장하다. 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상처투성이 몸통을 쓰다듬어 준다. 힘에 겨운 듯 작년보다 잎이 나온 가지가 더 줄었다.

  아까시나무를 처음 본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산이 붙어 있는 동네 공원으로 강아지와 산책에 나섰다. 앞장서서 걷던 강아지가 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로 들어섰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호기심이 일어 따라갔다. 조금 들어가자 자드락에 여러 가지 운동기구들이 잘 갖추어진 쉼터가 나왔다. 내 눈길을 붙잡은 건 시계가 걸린 아까시나무였다.

  나무에 가까이 다가갔다.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옆으로 돌출된 시계 걸이를 고정하기 위해서 못을 여러 개 박아 놓았다. 꼭대기 가지 사이에 까치집이 있었다. 잡초가 무성하고 돌담이 무너진 시골 폐가를 연상시켰다. 아까시나무에 쾅쾅 못 박았을 누군가를 생각하자 화가 났다. 본인은 건강하게 오래 살겠다고 운동했으리라. 나무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침은 느릿느릿 여유를 부렸다.

  그 후, 오솔길 걸을 때마다 아까시나무를 외면했다. 내가 시계를 걸어 놓은 것도 아닌데 부끄럽고 미안했다. 까치도 나무의 고사를 미리 알고 이사 갔는데 어찌 사람이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하기야 남을 밟고 올라서는 사람도 있다. 나무의 아픔까지 모두가 공감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 게다.

  산책을 가끔 했는데 그만두었다. 왼쪽 다리가 걸을 때마다 아팠다. 4년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 허리 협착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척추뼈가 내려앉아서 다리로 가는 신경을 누른 탓이라고 했다. 보름 간격으로 세 번에 걸친 시술을 받고 괜찮았다. 그때와 똑같은 증세였다. 전처럼 시술을 받았지만 소용없었다. 곱게 단풍 든 은행나무 잎을 주워 책갈피에 끼어 놓을 무렵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다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정밀검사 결과 허리 디스크가 터졌다기에 수술했다.

  허리쯤이었어, 나처럼 아프겠지. 병상에서 아까시나무가 떠올랐다. 건강이 회복되면서 산책이 가능해지자 제일 먼저 아까시나무를 찾아갔다. 여전히 시계가 매달려 있었다. 안타까워 몸통을 쓰다듬어 주고 쉼터 주위에 있는 다른 나무들도 자세히 살펴보고 놀랐다. 왜 못을 박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몇 그루 나무에 못이 여러 개씩 박혀 있었다. 심지어 한 곳에 대여섯 개씩 박아 놓아서 상처가 심각한 나무도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철물점에 가서 장도리를 사 왔다.

  다음 날, 장도리를 들고 다시 찾아갔다. 대개는 깊게 박혀서 빠지지 않았다.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위치가 높거나 잘 빠지지 않은 못은 어쩔 수 없었다. 시계도 이미 죽은 나무로 옮길 참이었는데 높이 걸려있어서 할 수 없었다. 시청 공원관리과에 전화해서 나무들에 박힌 못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한 달이 지난 뒤에 가봐도 그대로였다.

  어디 나무뿐이랴. 누군가의 가슴에 박힌 못을 빼준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귀 기울여 사연을 들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것만으로는 뺄 수 없다. 평생 안고 가야 할 못이 박힌 사람, 가만히 안고 등을 쓰다듬어 주고 싶다. 나는 누군가의 가슴에 못을 박은 일이 없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어찌 한 번도 없다고 장담할 수 있으랴. 시간이 가면 저절로 빠지는 못일망정 나도 모르게 박은 못이 있을 게다. 남은 생이라도 조심조심 걸을 일이다.

  다른 나무에 비해 잎도 훨씬 늦게 나왔듯이 꽃도 지각할 것이다. 다시 공원관리과에 민원을 넣어야겠다. 아까시나무를 뒤로 하고 조금 더 올라가다가 갈참나무 아래 누웠다. 낙엽이 푹신한 요가 된다. 연둣빛 잎 사이로 삐쭉이 내민 하늘이 숨바꼭질하던 여섯 살배기 손녀의 얼굴을 닮았다. 문득 어디선가 읽은 한 문장이 떠오른다.

  '나무들은 허공도 서로 양보하면서 가지를 뻗는다.'

정말 겹치는 가지가 하나도 없다. 심지어 어떤 나무는 양보에 더해 옆 나무를 무지 사랑했는지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었다. 오늘은 나무들이 스승이다.


                           2021, 7월호 <좋은수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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