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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간둥이 (에세이스트 연간집 '꽃 밟는 일을 걱정하다' 신작발표)    
글쓴이 : 김주선    21-10-12 22:05    조회 : 6,094
뒷간둥이 / 김주선  

“옛날, 옛날에 감자바위 아래 울음도 시원찮은 계집아이가 태어났단다. 온몸에 재를 묻힌 더러운 꼴로 잿간 삼태기 안에서 우는 걸 삼신할미가 안고 나왔지.”

 부엉이가 우는 밤. 외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언제나처럼 산파 노릇을 하는 삼신할미 이야기로 시작했다. 마흔여섯에 출산을 한 당신 맏딸의 노산이 얼마나 힘들고 기가 막힌 일이었는지, 탄생이 경사가 아니라 얼마나 남사스러운 일인지를 회상했다. 잦은 병치레로 지어미 등딱지에 붙어사는 외손녀에게 숨을 거두시는 그날까지 똥 묻은 애, 재 묻은 애라고 놀렸다.

나의 출생은 구전동화처럼 입에 오르내렸다. 동네 어르신마다 구전이 틀렸다. 뒷간둥이라 했다가 헛간둥이라 했다가 짓궂은 어느 어르신은 똥간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놀렸다. 재나 쌀겨를 퍼 담는 삼태기 안에서 태어난 것은 분명해 보였다. 마구간 구유에서 아기 예수도 탄생했다는데 헛간 삼태기에서 태어난 것이 보통 축복이냐며 엄마는 생일날마다 미역국 한 대접에 쌀밥을 말아 주었다. 북어 대가리만 넣은 쌀뜨물에 푹푹 끓인 미역국이지만 엄마도 몸 푼 산모처럼 미역국을 후루룩 들이켰다. 비록 부뚜막에 걸터앉은 채로 비워내는 국이지만 그 모습은 마치 당신의 생일날처럼 행복한 모습이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산달이 별 차이가 없었다. 한집에서 삼촌지간으로 두 아이가 태어나면 손아랫사람에게 안 좋은 사주라는 점을 봤던 모양이다. 자신의 배 속 아이보다 며느리가 품은 아기에게 해가 될까 노심초사하던 중에 시어머니인 엄마는 대문 밖에서 나를 낳고 며느리인 큰올케는 안방에서 조카를 낳기로 했다. 산기를 느껴 외가로 기별을 넣었더니 차멀미가 심한 외할머니가 사십 리 길을 걸어오시는 바람에 바깥뜰 헛간에서 아기를 낳게 되었다. 급한 마음에 들어가긴 했는데 아궁이에서 금방 퍼낸 뜨끈뜨끈한 잿더미 때문에 잿간이 그렇게 훈훈할 수가 없더란다. 뒤뜰에 놓인 벌통에 아카시아 꿀이 차는 좋은 계절에 망신스러운 출산을 했노라고 엄마가 고백했다. 점심나절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 놀라서 나가 보니 삼태기 안에 애기씨를 담아두었더라며 언젠가 올케는 내 생일 수수경단을 동글동글 빚으며 그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말해주었다.

반면 조카는 안방의 비단 조각보 아기 이불에 쌓여 귀하고 귀한 장손으로 탄생해 붉은 고추가 열린 금줄을 치고 삼칠일을 보냈다. 경사도 그런 경사가 없었다. 줄줄이 아들 삼 형제를 내리 낳자 큰올케는 광 열쇠까지 양도 양수받아 큰 살림의 안주인이 되었다. 동창이면서 친구이면서 고모와 조카 사이로 온갖 혜택을 누리며 조카는 남부럽지 않게 컸다. 

외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속에는 재 뭍은 아이 재동이가 가끔 등장한다. 어쩌다 할머니 기분이 수틀리면 ’똥재동‘으로 둔갑해 이웃집에 팔아버릴까 말까 하다가 안 팔았다는 둥 이야기가 가끔 삼천포로 빠졌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런 날은 외손녀인 내가 못마땅한 날이었다. 하지만 마음 놓고 내 새끼를 예뻐할 수 없었다는 엄마의 증언은 일리가 있어 보였다. 내 위로 나이 터울이 많은 오빠 언니들이 다섯이나 더 있었다. 며느리 보기 민망하여 산후조리뿐 아니라 젖 물리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두어 달 후에 며느리가 몸을 풀자 올케 젖을 물고 컸다는 말도 있고 태생적으로 허약해 오래 못 살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문경 틀모산사 보살 말만 믿고 출생신고도 하지 않아 호적에는 조카보다 나이도 한 살 줄어있었다. 내 출생의 비밀이 봉인 해제되는 날, 뒷간둥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 싫어 오줌까지 지려가며 울어댔다. 더는 옛날이야기 따위는 듣기 싫었다.

대문 밖에 헛간채가 있었다. 각종 농기구와 허드레 살림을 보관하는 헛간에는 재를 모아두는 잿간과 뒷간이 나란히 붙어있어 그 공간을 통틀어 헛간채라고 불렀다. 장작 아궁이에서 나오는 재를 모아 인분과 오줌을 섞어 거름 만드는 작업을 하려면 안채하고 멀리 떨어져야 했다. 고약한 냄새 때문이었다. 어릴 땐 뒷간 대신 잿간에서 볼일을 보았다. 뒷간 문턱이 높아 무섭기도 했지만, 잿간은 불씨가 남은 상태라 들어가면 따뜻한 온기가 있었고 졸졸 오줌을 누어도 소리도 안 나고 좋았다. 신기하게도 참외 싹이 나고 수박 싹이 날 때도 있었다. 잿간은 더러운 잿더미가 쌓이는 쓰레기소각장이 아니라 농작물의 영양공급원이 되는 산실이었다.

나는 가끔 헛간 태우는 꿈을 꾸었다. 그 누구보다 헛간이 불타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어쩌면 증거인멸을 바라고 불을 지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 소원대로 우리 집 헛간이 불에 탄 것은 경칩이 막 지난 무렵이었다. 정월대보름에 논둑이며 밭둑의 마른풀에 쥐불을 놓아 태우다 보면 가끔 농막까지 불이 옮겨붙는 경우가 있었다. 대다수 헛간에 불이 나는 경우는 재 속에 숨어있는 불씨 때문이었다. 정성스럽게 짓거나 돈을 들이지 않았고 언제든 허물어도 되는 공간이었다. 살림집하고 뚝 떨어진 바깥마당 한구석에 대충대충 흙으로 짓는 이유를 나중에 알았다. 지붕에 얹은 볏짚에 불이 붙어 폭삭 주저앉아도 전혀 유감스럽지 않았다. 그 불로 뒷간이 아닌 화장실을 집안에 짓게 되고 덤으로 목욕할 수 있는 공간도 생겼다.

엄마의 산실(産室)로 쓰인 헛간채는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를 두거나 재와 인분을 섞는 곳으로 사람의 거주지는 절대 아니었다. 하물며 기르던 개도 살지 않았다. 그런 곳에서 몸을 푼 엄마의 깊은 속내를 다 들여다볼 순 없었다. 설마 내가 죽기를 바랐을까마는 삼신할머니가 점지해 준 아이의 운명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을 것이라 나는 믿고 싶었다. 얼마나 질긴 목숨줄이기에 재를 묻힌 더러운 꼴로 태어났음에도 나는 살아냈던 것일까.

큰오빠네가 직장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조카들도 떠나게 되어 나는 온전히 엄마의 똥강아지가 되었다. 조카들 몰래 뒤꼍으로 불러내어 숨겨놓은 곶감이며 과자를 몰래 주지 않아도 되는 엄마는 무엇이든 내 입에 먼저 넣어주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까지 엄마의 등딱지에 붙어살았다. 엄마는 등에 업혀 사는 내가 밭일 안 나가게 하는 효녀라고 아버지 몰래 집안 살림을 돕는 김氏 부인을 앞장세워 읍내로 가는 버스를 타곤 했다. 엄마의 서걱거리는 치마저고리에 부는 봄바람이 내 마음 까지 간지럽혔다.

삼신할미의 산바라지 덕에 잘 먹고 잘살았다고 마무리되는 옛날이야기처럼 나는 오래오래 엄마의 치마폭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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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선의 ‘뒷간둥이’를 읽고 / 박 춘 작가의 촌평

  아름다운 동화에는 반드시랄 정도로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 없는 고달프고 범상한 사연들이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처경에서 오늘과 미래가 잉태되고 이야기가 생겨나고 꽃이 핀다. 
김주선의 ‘뒷간둥이’는 잿간 삼태기 안에서 온몸에 재를 묻히고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다. 차멀미가 심해 사십 리 길을 내처 걸어올 수밖에 없었던 외할머니 덕에 헛간에서 태어나고 만 자신의 탄생설화(?)를 청명한 가을날의 뭉게구름처럼, 밥하고 난 아궁이가 품은 다습고 은은한 기운처럼, 하늘을 기뻐하고 온몸으로 감사하는 것처럼 가만가만 풀어 놓았다. 
글 어디에도 엄마가 고맙고 외할머니가 그립고 다섯 명의 오빠와 언니와 올케가 보고 싶다는 구석은 없다. 외려 ‘태생적으로 오래 못 살 것이라는 문경 틀모산사 보살 말을 믿고 출생신고조차 미루어 한 해에 같이 태어난 조카보다 호적이 한 살 줄어 있는, 그래서 ‘출생의 비밀이 봉인 해제되는 날 오줌까지 저려가며 울어댔다’라고 그는 원망(?)을 늘어놓는다. 그 감정 세계를 이해하면서도 왜 나는 그가 진정으로 그들이 보고 싶고 그립고 고마워하는 것으로 알아듣는가. 이 역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는 감성이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할 줄 아는 탁월한 언어조율사다. 이야기의 강약을 다스릴 줄 아는 능수능란한 지휘자다. 딱하고 남사스럽고 자괴의 상처가 되어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을 남녘 하늘에 은은하게 비추는 은하수의 이야기로 파고들게 만들었다.
 ‘옛날, 옛날에 감자바위 아래...’로 시작되는 첫 문장의 마력 탓일 것이다. 제목을 정하고 첫 문장을 완성하고 나면 작품의 7할은 썼다고 하는 작가들의 말은 허언이 아니다. 첫 문장이 작품 전체를 가늠시키고 구성을 조율시키는 것이다. 김주선의 마력적인 첫 문장의 효과가 이를 증언하고 있다. 도입부의 구전동화가 방향타가 되어 독자로 하여금 전래되는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착각에 빠지도록 몰아넣는다. 벗어날 수 없도록 부드럽게 유혹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창작의 열기를 배가시키도록 힘을 북돋는다.
 ‘뒷간둥이’는 작가 김주선이 이야기꾼의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났음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물이 여울을 만나면 잠시 맴돌다 흐르고 좀은 돌 틈을 만나면 등을 떠밀리듯 쓸려가는 그의 이야기는 그지없이 자연스럽다. 그의 특별한 재능이 문학의 기율 속에서 정겹게 빛나고 있다. 다정하고 따뜻하다. (2021년 10월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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