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방 / 김주선
자기 방 하나도 감당 못 하는 작은아들이 자취하겠다고 선언한 게 아마 작년 2월경이었나 보다. 옷 무덤을 만들고 퀴퀴한 쓰레기와 한 몸이 되어 뒹굴던 녀석이 자취의 의미를 알기는 할까. 통학하기도 자취하기도 참 애매한 거리의 학교였다.
스물다섯 약대 5학년, 군대를 다녀왔다면 복학을 할 나이지만 아들은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다. 입대를 미룰 만큼 녀석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아들의 청춘 일기에 잔소리 한 줄을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부쩍 자취하겠다는 걸로 보아 녀석의 꿍꿍이가 의심스러웠지만, 딱히 반대할 처지도 아니었다. 부모 속을 썩이거나 공부 문제로 실망을 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위례에서 학교까지 버스와 지하철로 이어지는 두 번의 환승과 늦은 밤 귀가가 빈번하여지자 중고차를 사줄까 고민도 했었지만 젊어서 하는 고생이라 모르는 척했다. 바쁜 부모를 대신해 며칠 발품을 팔더니 학교 앞 원룸으로 계약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작년 일 년 동안 거의 비대면 수업이었으므로 원룸에서 보낸 시간은 채 한 달도 안 될 것이다. 원룸의 판타지에 젖어 독립을 갈망했던 작은아들의 꿈이 코로나로 발이 묶이자 방이 비어있는 상태로 관리비만 축내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시험을 치러야 하는 과목 때문에 한주의 반은 원룸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홀로 사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는 녀석의 방이 궁금하여 반찬을 핑계로 들여다보려다 말았다. 그것도 공부이니 자식을 믿어 보자는 게 남편의 생각이었다. 코로나가 떡 버티고 있는 한 자신이 책임져야 할 6평 남짓 첫 독립 공간에서 마냥 행복하고 달콤할까, 나는 궁금했다. 성년이 되면서 누구나 한 번쯤 독립에 대한 로망을 꿈꿨을 것이다. 도대체 남자들이 꿈꾸는 원룸의 판타지는 무엇일까.
작은 오피스텔을 얻어 작업실로 쓴다는 소설가 B를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남들처럼 출근하고 퇴근해 글 쓰는 시간을 정해놓고 산다는 것이다.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지만, 나의 시간만큼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로지 나만 쓰고 싶기는 하다. 어쩌다 찾아오는 문신과 접신이 되어 자판기 위에서 손가락이 춤출 때, 꼭 “밥 줘”라고 산통을 깨는 남편이 제일 밉다. 이래저래 아이들마저 하나둘 집을 떠나 적막강산이 따로 없는데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한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밥 달라 놀아달라 정말 귀찮아 죽겠다. 정작 작업실이 필요한 사람은 나인지도 모르는데 남편은 팔자에도 없는 서재 타령까지 한다.
어렸을 적에 사형제가 한방에서 복닥거렸던 생활을 꺼내놓고 두고두고 가난을 원망했다. 단 한 번도 자신만의 방을 가져보지 못하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았다며 나중에 돈 벌면 큰 집을 사 서재라도 하나 갖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가 셋이다 보니 서재는커녕 거실조차 마음 놓고 TV를 못 켜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큰아이가 독립하면서 방 하나가 남게 되었다. 그 절반을 팬트리(창고)로 개조하고 나머지는 주방 확장 공사에 보탰다. 지금은 창고조차 글 쓰는 마누라에게 양보했기에 다음번 이사 가는 집은 그토록 소원하던 독방을 하나 만들어 주어야 한다. 책 한 줄 안 읽는 사람이 서재라니 꿈도 야무지다고 빈정댔지만, 서재가 그가 꿈꾸는 자유와 동경의 절대적 구역이라면 얼마든지 꾸며줄 용의는 있다.
지난여름, 침실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방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펄쩍 뛰며 섭섭하다고 할 줄 알았는데 주변에서 흔히 듣는 얘기라며 한술 더 떴다. 이젠 우리 부부도 싱글침대를 써야 한다는 둥, 각자의 노트북이 필요하다는 둥,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공간적 독립과 개인 비품 사용을 피력했다.
“여자는 뭐 독립 공간이 필요 없는 줄 알아? 마냥 자기랑 붙어있고만 싶겠냐고?. 이참에 각방 써 그럼!” 은근 부아가 났던지 내 꾀에 내가 넘어가고야 말았다. TV 리모컨도 따로 썼으면 좋겠고 당장 이불도 따로 썼으면 좋겠다고 성질을 부리다 보니 갑자기 허탈하고 슬펐다. 벌써 싱글침대가 편한 나이가 되었다는 게 말이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답이었지만, 막상 듣고 보니 서운한 마음이 들어 두 번 다시 각방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자식 셋 중에 아직 결혼한 자식도 없고 언젠가 집으로 모두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빈방을 놓고 부부가 동상이몽을 꿈꾸다니. 누구나 혼자만의 방에 대한 판타지는 있는 모양이다.
텅 빈 집에 단둘이 남는 날이 많아졌다. 특별히 누구를 만날 일도 줄고 대소사도 줄어 일상이 단조롭고 고립된 나날이었다. 남편을 거실에 자가격리 시키고 그의 무료함을 외면한 채 혼자만의 문학 공부를 만끽했다. 나는 행복했다. 방에 갇혀있는 시간이 역설적이지만, 축복처럼 여겼다. 밀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 누구보다 코로나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거실에 오도카니 앉아 주말드라마를 챙겨보는 남편은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코로나로 불안한 나날이 계속되자 사는 낙이 없다고 한다. 안부를 묻는 사람도 술 한잔하자는 사람도 없단다. 하물며 반려견 동만이도 아빠가 귀찮은지 자기 방에 들어가 나오지도 않는단다. 그의 마음속에 혼자만의 방을 만들기 전에 내가 먼저 나의 방을 허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글을 쓴다고 밥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몸과 마음을 혹사하며 늦은 밤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날 보며 남편은 늘 혀를 찼다. 밥이 나오는 것도, 돈이 되는 것도 아니기에 주말마다 늦잠 자는 바람에 산책길에 따라나서지 못하고 아침 밥상마저 소홀했던 것이 미안했다.
주말이 되면 집 떠난 자식들이 줄줄이 집에 온다. 밑반찬을 만들고 음식을 장만하느라 마음은 분주하지만, 촉을 곤두세워 아이들의 자잘한 변화를 탐색한다. 비혼주의를 선포한 딸이나 판타지에 젖어 부모의 둥지를 날아간 아들이나 그들의 방 한 칸이 지상 최고의 보금자리일지는 잘 모르겠다. 언젠가는 부모 품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날아갈 아이들이지만, 막상 떠나보내고 보니 마음이 텅 비고 쓸쓸하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보따리를 싸 돌아올 것을 이참에 회유해 보아야겠다. 빈방이 더 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