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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세이·율리시스의 여행    
글쓴이 : 이기식    21-12-11 14:54    조회 : 5,060

오디세이·율리시스의 여행

 

이기식(don320@naver.com)

 

수필과 비평 242, 2021-12

 

 고등학교 3년간 방학을 이용하여 전국을 돌아볼 계획을 세웠다. 여름방학 한 달간을 이용해 무전여행을 하기로 했다. 60년대 초라 지금처럼 근사한 여행 장비는 없었고, 대부분이 군대용 장비였다. 당시 동대문시장에서는 여러 가지 군인용 물건을 파는 곳이 많았다. 미제라 튼튼하기도 하고, 중고품이라 값도 적당했다. 배낭, A 텐트, 침낭, 워커, 항고 등을 샀다. 시장에 가서 장비를 챙길 때부터 마음은 이미 작은 모험에 들뜨기 시작한다.

 변산반도의 채석강이라든지, 남해의 비진도는 지금은 누구나 아는 관광지가 되었으나, 60년대는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기차나 버스에 무임승차를 하면서 지도를 보고 힘들게 찾아갔었다. 수영복을 입고 채석강 바다에 잠겨있는 책상 바위를 신나게 걸으며 놀고 있다가 동네 할아버지한테 빨가벗고 다닌다고 큰소리로 혼나던 일, 비진도 앞바다에 잠수하여 동네에서 키우는 소라인지도 모르고 잔뜩 따서 소주 안주로 먹다가 치도곤을 당한 일들이 그립다.

 여행이나 모험 관련 이야기는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편이다. 어릴 적 읽은 거인국, 소인국 이야기인 걸리버 여행기』『라만차의 돈키호테의 황당한 모험 여행, 마르코 폴로의동방견문록손오공등이 재미있었다. 요즈음은 TV에서 다큐멘터리 테마기행은 빼지 않고 본다. 여행도 젊었을 때 몸소 체험하는 육체적인 여행과 나이가 들면서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정신적인, 내적인 여행으로 나눠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대표적인 육체적인 여행 이야기는 그리스 호메로스의 서사시오디세이가 아닐까 한다. 주인공 오디세이는 트로이의 목마계책으로 10년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산더미만큼의 전리품을 12척의 배에 싣고 고향으로 향한다. 식량 조달 때문에 기착한 섬에서 외눈박이 거인을 죽이게 되는데 이것이 화근이 된다. 거인의 아버지인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게 되어 10여 년간의 표류 항해를 시작하게 된다. 지중해보다는 이태리의 서쪽 바다나 그 보다 더 서쪽의 끝인 명계를 돌아다닌다. 마녀 키르케를 만나 부하들이 돼지로 변하기도 하고, 요정 세이렌(스타벅스 로고에 그려진 여성) 세 자매의 노래를 듣고 유혹되지 않으려고 돛대에 몸을 묶고 그 섬을 지나기도 하고, 표류하던 그를 요정 칼립소가 도와주는 바람에 그곳에서 7년을 보내기도 한다. 

 정신적인 여행도 있다.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가 쓴 소설율리시스(Ulysses). 그리스어로 Odyssey, 로마어로는 Ulixes, 영어로는 Ulysses. 20세기의 실험소설로 현대 영문학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내용 대부분이 오디세이와 그 아들을 상징하는 두 남자가 하루 동안에 아일랜드의 더블린 시내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며 열여덟 개의 장소를 오디세이처럼 떠돈다. 각 삽화의 제목도 칼립소’, ‘세이렌’, ‘키클롭스’, '키르케처럼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신화의 인물들이다. 정육점, , 국립도서관, 성당, 교회, 박물관, 장례식장, 술집 등을 다니는 동안의 의식의 흐름과 내면의 독백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오디세이10년에 걸친 이야기이고, 율리시스는 하루만의 여행이다. 여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어느 쪽을 보느냐는 관점의 문제인 것 같다. 젊을 때는 아무래도 걷고 움직이는,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다니는 여행이나 모험이 어울린다. 생생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는 육체적인 여행이나 모험보다는 좋은 책을 읽거나 깊은 사유를 하는 내적인 여행이 필요한 시기다.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지혜나 철학이 나침반 역할을 하리라 본다.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다. 스페인 산티아고의 순례길, 마야·잉카문명의 유적지도 가보고 싶고, 신화의 나라 그리스도 다시 가보고 싶다. 그러나 지금 우선할 일은 여태까지 밟아 온 길과 현재의 정확한 좌표를 표시한 인생 지도를 자세히 그려봐야겠다. 새들이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 보듯이, 마치 유체이탈처럼, 나 자신을 높은 곳에서 조감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도 속에서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내 인생의 남은 여정을 확실하게 다시 그려 볼 때가 됐다. [2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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