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유감
奉惠善
아정(雅鼎). 호를 받았다. 내가 모르는 어떤 나는 단아하며 발이 셋 달린 솥처럼 안정되어 있다고 여겨지나 보다. 조선의 책벌레 이덕무의 호도 아정(雅亭)이다. 한자는 달라도 발음이 같으니 그렇게 살라는 지침으로 받았다. 감사한 마음으로 나는 또 하나의 내가 된다.
외할머니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으셨고 살갗이 까만 건 보리를 빚어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동생은 엄마를 닮아 피부가 뽀얗다며 흰 찹쌀로 빚었다고 했다. 작아서 예뻐하는 게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나마 나에 대해 얘기라도 꺼내신 걸 감사해했다. 내 피부색은 아버지를 닮았다. 내 탓이 아니다.
외할머니는 왜 그렇게 나를 미워하셨을까. 내 이름은 외할아버지 애인 기자의 이름이다. 집안에서 맺어준 두 분이 같이 일본 유학을 다녀오신 후 기자 생활을 한 외할아버지는 당신의 큰 딸이 딸을 낳자 애인의 이름을 갖다 붙이고 부르라고 했다. 유학도 다녀오지 않은 가난한 사위가 성(姓)이라도 봉(奉)가가 아니면 좋겠다며 사위를 마뜩찮아 하셨다고 했다.
첫 딸 작명을 장인에게 빼앗긴 억울함이었을까. 장모에게 귀염 받지 못할 첫 딸의 마음을 헤아리고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을까. 아버지는 내 뒤를 이어 연거푸 나온 딸에게 보란 듯 꽃 이름을 닮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봉선화. 성(姓)이 봉(奉)이어서 딸을 낳으면 지어주려고 했단다. ‘봉’가는 강화도 우물가에서 갓난아기를 발견한 사람이 왕에게 바치자 가히 받들 만하다고 하사한 성(姓)이라고 했다. 꽃 이름을 받은 동생은 꽃처럼 사랑 받으며 자라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보낸 양 ‘이름을 봉혜화로 바꿨다’는 내용으로 담임 선생님께 짧은 편지를 썼다. ‘혜화’는 할아버지가 아니라면 내 이름이었을 이름과 비슷하게 내가 만든 최초의 내 이름이다. 친구들이 ‘봉선화’로 잘못 부르거나 놀렸기 때문이기도 한데 동생이 귀염 받는 것은 꽃 이름이 들어가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오빠와 남동생 이름에 같은 돌림자가 들어있는 걸 보고 비슷하게 지었다. 선생님은 엄마를 불러오라고 하였다.
한자를 배우고 동생에게 “너는 ‘화낼 화’자를 쓴다.”고 알려주었다. 동생은 그런 한자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늦게야 알았다. 자기가 화내는 건 이름 때문이라고 착각하고 지냈다. 나 때문에, 아니 할머니 때문에, 어쩌면 할아버지 때문에, 아니 어쩌면 여기자, 아니 이름 때문에.
엄마 주변 사람들은 엄마를 내 이름을 넣어 부르지 않았다. 첫째인 오빠 이름을 넣어 부르거나 ‘선화 엄마’가 우리 엄마의 이름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들렸다. 내 동창 엄마는 잠시 내 이름을 넣어 부르다가 선화와 그 동생이 같이 학교에 들어가자 바로 선화 엄마로 바꿔 부르셨다.
이름 대신 ‘봉보로봉봉’, ‘뽀그라질 봉’ 등 성(姓)으로 놀림감이 되던 사춘기가 싫었다. 우리 집엔 엄마만 빼고 다섯 명이 다 ‘봉 씨’라고 나름 변명하고 나섰다. 할머니 탓을 하며 의기소침한 성격이 되고 있었다. 중2 한자 시간에 ‘아름다울 가(佳’)와 ‘기둥 주(柱)’자가 쓰기도 간단하고 의미도 마음에 들었다. 당장 이름을 숨기고 ‘가주(佳柱)’라고 나를 소개하고 다녔다. 호(號)로 알려져 있는 시인들도 배웠다. 두보, 이태백, 김삿갓, 오성과 한음, 추사, 백사 등 이름보다 호로 더 알려지고 친숙한 분들이 많다.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 들어선 가주라는 자호(自號)로 불릴 때 귀가 더 편안하고 희성(稀姓)에 대한 변명도 생략할 수 있어 남의 이목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름을 자주 불러주지 않은, 열 번도 만나지 않은 연애답지 않은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하고는 아이엄마가 호칭이 되는 자연스러운 수순을 밟았다. 그게 이렇게 부드럽게 승계되는 거였나. 엄마에게 “선화 엄마”라고 작게 불러본다. 큰 아들이 없을 때 작은 아들의 이름을 넣어 아이 아빠를 부르니 어린 작은 아들이 적응이 안 되나 보다. “엄마, OO 아빠라고 불러야지.” ‘얘야, 나도 그랬단다.’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려 있다. 본인 소개난이 생기고, 상태를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동태를 알리는 사진은 짧은 동영상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름을 갈음하는 상황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본인이 등록해 알리고 싶은 것만을 올리는 SNS도 성하다. 더 이상 홀로 섬으로 남을 수 없고 그 와중에도 섬인 것을 실감해야 한다. 나는 책으로 피신해 외로움을 달래며 고독을 키우고 있었다. ‘만 시간 법칙’* 뒤에 숨은 독서가 또 다른 이름으로 위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두 개의 이름을 찾아 내걸었다.
책은 기다리지 않고 반대하지 않고 배반하지 않고 나를 설득할 때까지 달랜다. 나는 책에서 위안을 받는다. 그러한 ‘책이 신’이라는 말이 너무 뻔해서 조금 비튼다. ‘채기신’. 자칫 ‘책 귀신’이라고도 들린다는 나, 채기신은 ‘글자주의자’임을 표방하며 무방비 상태로 책을 찬미하는 맹신도다.
책에서 떠나는 순간이 아쉬워 카페인이 든 커피를 만든다. 커피, 설탕, 크림을 넣은 봉지를 툭 털어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생은 부드럽지 않다는 생각에 크림을 뺀다. 다시 마신다. 이제 단 맛. 생이 이리 달던가, 설탕을 거른다. 남은 커피를 맛본다. 쓰기만 하지 않은 생을 기대하며 커피를 뺀다. 지난하기 그지없는 거름 과정을 거친 물은 하얗고 뜨거운 상태인 백비탕으로 남았다. 만병통치약이라는 백비탕(百(白)沸湯)은 물을 팔팔 끓였다가 식히기를 99번 해 두었다가 왕에게 낼 때 한 번 더 끓여 내는 정성들인 물이다.
머리 속이, 마음속이, 열정이 표백된 듯 탈진했지만 거르던 한 방은 남아있다. 갈라지지 않는 상태를 가른 정성에 방점을 찍는다. 서부의 총잡이가 고요한 가운데 순식간에 허공을 갈라 생의 변곡을 일으키듯 ‘탕’ ‘백비 탕’을 하나의, 또 하나의 나로 내세운다. 모든 변신은 무죄이고 변화하지 않는 생은 퇴보이니.
아침저녁으로 변덕스러운 나는 잠시 접기로 하자. 팔색조 같은 여러 이름은 나의 페르소나이다. 또 다른 나, 진정한 나를 찾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모든 이름 속에는 그 이름을 가진 존재의 성품이 숨어 살고 있다’ ‘이름은 그 존재의 숨결이다’ 소설가 신경숙은 『푸른 눈물』속에서 뇌인다. 이름 모를 풀꽃으로 살다 지는 수많은 풀꽃도 들여다보면 아름답고 귀하다. 김춘수의 시어(詩語)대로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한갓 몸짓에 지나지 않는 내가 스스로의 꽃이 되어가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만 시간 법칙: 미국 기자 맬컴 글래드웰이 발표한 개념. 하루 3시간, 일주일 20시간, 10년, 즉 1만 시간 노력하면 한 분야의 일인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 선천적 재능을 따라갈 수 없다는 주장과 상치되기도 하지만 설득력 있다.
<<한국산문 9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