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엄마가 하늘나라로 갔대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내가 말했다.
“대전으로 이사 갔다는 그분! 왜 갑자기 돌아가셨디야. 지병이 있었는가?”
아내는 내가 묻는 말에 대꾸도 없이 혼잣말했다.
“큰애 유치원 다닐 때였지요. 엄마들 9명이 〈물망초〉라는 꽃 이름을 따서 모임을 만들었는데, 3개월에 한 번씩 만나지 않소. 엄마들이랑 만난 지 엊그제 같은데 35년 세월이 흘렀네요.”
이야기 중간에 내가 끼어들었다.
“내려가 봐야 하지 않겠어?”
“상갓집에 갈 사람이 총무하고 나밖에 없는 것 같소. 장례식장이 대전이라 고속버스로 갈까 하는데, 총무는 어제 ‘코로나 예방접종’을 했다지 않소. 우리 좀 태워줄라요?”
“그러지 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내 전화기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총무가 백신 맞고 머리가 아파서 못 갈 것 같답니다.”
“그럼, 드라이브하는 셈 치고 우리 둘이 갑시다.”
서울에서 대전에 있는 ‘성모병원 장례식장’까지는 2시간 반 거리다. 부인들 모임에 남편들이 두세 번 초대를 받았는데 고인은 ‘다도예절’에 관심이 많았다.
‘찻잔과 주전자는 도자기로 만든 것을 사용한다. 양반 자세를 하고 뜨거운 물로 찻잔을 데운 다음에 첫 번째 차를 우려낸 물도 버리고, 다시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붓고 차를 따를 때는 한 손으로 주전자를 들고 다른 손은 팔꿈치를 받친다. 주전자를 위아래로 흔들어가며 따른다.’
다도예절을 떠올릴 때, 고인이 살아생전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다소곳이 앉아서 차를 따르는 모습으로 비쳤다.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고별예배’를 드리는 중이었다. 식장 안에는 관이 길게 놓여있고 관 옆으로 빙 둘러서 큰 촛불이 몇 개 켜졌다. 수녀님과 참배객들이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뒷자리에서 1시간 정도 예배에 참석했다. 고인의 남편 나이가 70 중반쯤 됐을까, 몸집이 작은 편인데 앞자리에 구부정하게 서 있는 모습이 더욱더 안쓰러워 보였다. 예식이 끝난 뒤 남편 손을 잡고 말없이 얼굴만 바라보았다.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마누라 따라 여러분을 만나서 정이 들었는디유. 이제 마누라가 가고 없으니 만날 수도 없겠네유.”
남편이 먼 길 와줘서 고맙다며 한마디 덧붙였다.
“집사람이 3 개월 전에 가끔 기침을 하고 목이 부어서 병원에 갔시유. 진찰 결과 ‘급성 후두암’이래유. 급히 수술 했시유. 그리 빨리 갈 줄 누가 알았남유.”
다른 분들도 나서서 남편을 위로할 때, 우리 부부는 영정을 모신 곳으로 가서 국화 한 송이 올리고 예를 갖췄다. 영정사진의 웃는 모습이 평화롭고 온화해 보였다. 아내와 나는 상주와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아내가 혼잣말했다.
“장례식에 물망초 회원 몇 명이라도 더 참석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보,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없어도 정승댁 개가 죽으면 문상하러 오는 사람이 있다는, 속담이 있잖여.”
내가 말했지만 아내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하늘도 슬픈가 봐! 가을장마라더니 비가 줄기차게 내리네요. 물망초 회원끼리 ‘어린이대공원’에 갔을 때가 생각나오. 아이들 손을 잡고 동물원에 들르고, 잔디밭에서 00 엄마랑 짝이 되어 공놀이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술래잡기하면서 깔깔거리던 생각이 떠오르오!”
아내는 눈을 지그시 감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내가 〈물망초〉라는 꽃 이름을 따서 모임 이름을 정했다는 말을 듣고, 뜻이 뭘까 궁금했다. 집에 도착해서 ‘물망초’라는 꽃을 검색했다.
꽃이 7~8월에 하늘색으로 피는데 물망초 ‘꽃말’은 ‘나를 잊지 마세요, 진실한 사랑!’
한국산문 202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