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누워 ‘잠’ /김주선
과수원과 잠농(蠶農)을 겸했던 우리집은 살림방까지 누에에 내주어야 할 만큼 농사가 컸다. 잠란지(蠶卵紙)에 붙은 누에씨가 꼬물거리기 시작하면 여러 채반으로 나누었다. 한 번씩 허물을 벗고 잠을 잘 적마다 키가 쑥쑥 자라나 잠실 시렁에 층층이 채반을 올려서 키워야 했다. 뽕잎이 한철일 때 잠실 문 앞에 서 있으면 잎을 갉아 먹는 벌레 소리가 지적지적 빈대떡 지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먹고 자고 그렇게 네 번째 허물을 벗은 후에야 제 몸 하나 웅크릴 관을 만드느라 실을 토해냈고, 나비로 환생할 꿈을 꾸었다.
인간의 잠드는 욕망은 잠벌레(누에)의 생을 통해 꿈틀거리기 시작했을까. 영면(永眠)에 들면서도 환생을 바라고 누에고치처럼 생긴 옹관에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과 함께 삼한시대의 옹관 묘터가 곳곳에서 발견되니 말이다.
잠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하길래 식욕 성욕 못지않게 수면욕을 다뤘을까. 나도 죽은 듯이 곱게 자고 싶지만, 나이 드니 병이 들고 병이 드니 수면의 질이 급격히 떨어졌다. 수면다원검사 예약날짜를 받아놓고 보니 걱정이 깊어졌다. 내가 모르는 나의 잠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잠’의 어원을 찾아보니 누에의 잠(蠶)에서 유래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누에가 뽕잎을 먹지 않으면 ‘잠이 들었다’라고 말한다. 사람이 베개를 벤 모양으로 머리를 들고 넉 잠을 자야 고치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한 달이 채 안 걸린다. 누에에게 잠은 먹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람이 죽는 것을 ‘고이 잠들다’라고 표현하는 것 또한 고치 속에서 번데기가 되어 이듬해 봄에 나방이 되기까지의 깊은 잠을 비유한 것이다.
잠을 잘 잔 누에가 고치 색깔도 좋고 희다. 아기잠에서 시작하여 막잠을 잘 때까지 누에가 자는 잠의 질에 따라 명주실의 품질이 다르다. 농부는 최적의 수면 환경을 위해 똥이 묻은 채반을 소제하고 깨끗한 뽕잎으로 갈아 주어야 한다.
내가 유아일 적에 잠자는 모습을 보면 코끝에 손가락을 대 볼 정도로 숨소리가 약했다고 한다. 잠투정도 없는 순둥이를 바랐지만, 병치레를 달고 살았다 하니 고양이만큼 선잠을 자고는 칭얼대었나 보다. 쌔근쌔근 건강한 숨을 쉬는 아기라면 엄마도 꿀잠이 되게 잤겠지만, 나 때문에 늘 괭이잠을 잤다고 했다. 그랬던 내가 유년을 지나 한창 클 나이에는 취미가 ‘잠’이라고 할 만큼 잠벌레였다. 잠이 보약인지 처녀 시절엔 예쁘다는 소리도 곧잘 들었다.
예쁜 숙녀가 예순이 되자 몸에 변화가 왔다. 최근 일을 기억하고 관장하는 좌측해마가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서 있는 날이 많아졌고 방금 외웠던 단어도 생각이 안 났다. 고혈압 고지혈증약은 2년째 복용 중이긴 하나 약은 또 다른 부작용을 가져왔다. 드디어 공복혈당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더 무서운 것은 노화로 심해진 코골이였다. 50세 이상이 되면 남녀의 절반 이상이 코를 곤다고 조사되었지만, 무호흡이 동반될 수 있어 관리가 시급했다. 코골이가 부부 금실에 위협이 되고 이혼 사유도 된다는데 귀책사유의 빌미를 주기 전에 의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연애 때는 피천득의 수필 「잠」처럼 “잠자는 것을 바라다보면 연민의 정이 일어난다”고 평생 먹여 살린다며 프러포즈했던 남편이었다. 또 “입을 벌리고 자는 여편네 얼굴은 밉기도 하지만 불쌍하기도 하다”고 코골이도 잘 참아주는 듯했다.
어느 날부턴가, 그이도 질 나쁜 수면장애로 인해 건강에 이상이 오자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아내의 코골이 때문에 남편이 통잠(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자는 잠)을 못 자니 법정에 가기 전에 병원부터 가야 할 일이었다. 피천득처럼 “기생 무릎을 베고 단잠을 자는 달콤함”을 누리게 하고 싶어 내가 먼저 병원문을 밀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 앞에서 방귀를 참듯이 코골이도 참아지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음주 남편의 코골이로 각방 쓰는 부부 이야기는 많아도 정작 여자들은 백설공주인양 우아하게 잠자는 줄로만 알았다. 피차 긴장 상태로 잠들다 보니 자주 깨고 뒤척이고 자도 자도 피곤한 만성피로가 오게 마련이었다. 심지어 불편한 잠 때문에 잠꼬대하며 가위눌리는 꿈을 꾸는데 대책이 없었다.
“이런 말 부끄럽지만, 아마도 제가 코를...”
나는 의사에게 나지막하게 고백했다. 저의 잠자는 모습을 제가 좀 볼 수 있을까요?. 혹시 수면 상태를 CCTV로 촬영 안 해주나요? 등등.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양질의 잠을 자고 꿈을 꾸어야 다음날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닐 텐데, 자도 자도 몸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고. 머리는 깨질 듯 아프고 눈꺼풀은 떨리고 얼굴을 잡아당기는 느낌까지 온다고. 솔직히 비뇨기과만 안 가봤을 뿐, 지금도 병원 순례 중이라고. 명색이 작가랍시고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져 글도 못 쓴다는 말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종합병원 신경과에서 신경계통 검사까지 하고 마지막으로 소견서를 써 준 곳이 이비인후과 수면다원검사였다.
먼젓번 초진 때 내시경으로 콧속 사진을 찍고 이비인후과 전용 CT도 촬영했다. 기도로 넘어가는 인후두가 현저히 좁아진 사진을 보여주었다. 목구멍과 콧속이 심하게 부어 있단다. 꽃가루가 날리는 봄이면 유난히 눈과 코가 가렵더니 비염도 있었다. 좁아진 인후두로 호흡기류가 차단되면서 목젖이나 구강 구조물에 진동을 일으켜 나는 소리가 코골이였다.
드디어 나의 수면 세계를 들여다보기로 한 날이었다. 저녁에 입원해서 다음 날 아침에 퇴원하면 되었다. 커피쟁이가 커피 한 모금 입에 안 대고 검사를 위해 잠약을 먹었다. 머리부터 종아리까지 주렁주렁 측정기 줄을 달고 최면에 걸린 듯 깊고 깊은 잠의 바다로 빠져들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낯선 환경과 온몸에 부착된 센서와 심리적 불안감 때문에 평소와 다른 수면 상태로 뒤척였다. 약을 반쪽 더 먹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풍랑 한가운데 일엽편주가 떠 있는 기분이랄까. 바다에 누워 허우적대는 꿈을 꾸었다. 뇌파가 출렁거렸다. 불규칙한 심전도 파상이 모눈종이 위에 그려지고 두려운 듯 안구마저 흔들렸다. 아, 애잔하다. 양압기 마스크를 써야 한다면 어쩌지, 정말 꼴 보기 싫을 텐데.
그로부터 2주 후. 적외선 비디오를 통해 녹화된 잠버릇은 볼 수 없었지만, 많은 검사지의 판독결과가 나의 상태를 말해주었다. 결과는 의외였다. 수면 패턴이나 수면의 질도 양호했고 타인의 숙면을 방해할 정도의 코골이도 아니었다. 시간당 RDI(호흡방해지수)도 5.4(중증15부터 의료보험 적용대상자)로 경증이었다. 죄인 된 심정으로 매일 밤 잠자리에 들었던 나는 홀가분하게 병원을 나왔다.
한 채반에서 먹고 자라는 누에 중에도 잠 못 들고 부스럭대는 아픈 벌레가 있다. 남들 잘 때 자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죽거나 병들거나, 설령 고치 집을 짓는다 해도 선별작업에서 폐기되었다. 오히려 작은 부스럭거림에도 잠을 깨는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 남편을 병원에 모시고 오란다. 정작 검사를 필요로 하는 환자는 남편인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