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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영우... 그리고 카프카    
글쓴이 : 김창식    22-12-27 11:22    조회 : 3,156

우영우... 그리고 카프카

김창식

  화제를 모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16회로 막을 내렸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경남 창원 소덕동 소재 ‘팽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었고, 우영우에게 영감을 주는 상상 속 고래는 젊은이들 사이에 ‘최애(最愛)동물‘이 되었다. 여주인공이 우산을 펴거나 쓰레기를 줍는 동작을 따라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지만.

  우영우의 소개말도 눈길을 끈다. “제 이름은 우영우.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별똥별, 역삼역...” 그밖에도 김밥김, 우향우, 좌향좌... 그리고 카프카! 이른바 팰린드롬(Palindrome, 回文)이다. 우영우를 만나면 부탁하고 싶다. 카프카를 꼭 끼워 달라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일종인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을 가진 천재 변호사 우영우와 실존문학의 선구자인 요절한 천재 작가 카프카의 이미지가 겹친다.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출생 배경과 정체성부터 심상치 않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이었던 지금의 체코에서 태어나 독일어로 글을 쓴 유대계 소설가다. 어릴 적부터 병약한 카프카는 아버지의 억압과 폭력으로 신경쇠약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고, 폐결핵에 걸려 40세에 요절했다. 생전에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사후 사르트르 등 철학자와 마르케스 같은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가의 소개로 역주행하여 20세기를 대표하는 실존주의의 작가로 칭송받는다.

  대학시절 카프카에 심취했다. 무기력한 일상, 황량한 정신풍토, 분열되는 의식구조를 훈장처럼 주렁주렁 매단 채 독립적인 자유의지와 부조리한 현실의 질곡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던 차 카프카는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나는 스스로를 카프카 소설 속 주인공으로 여겼음 직하다. 그 무렵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휴학을 하고 입대를 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어렵사리 졸업을 한 후 가장 아닌 가장 역할을 맡아 학문으로 향하는 길을 포기하고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카프카의 작품 중 중편 <변신(Die Verwandlung)>이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졌지만 먼저 쓰인 단편 <판결(Das Urteil)>도 만만치 않다. 서두를 보자. '절정을 이룬 봄 어느 일요일 오전이었다. 젊은 상인 게오르그 벤데만(Georg Bendemann)은 강물을 따라 길게 늘어선, 나지막하고 가볍게 지어진, 거의 높이와 색깔로만 구별되는 야트막한 집 들 중 어느 한 집의 이층 자기 방에 앉아 있었다.'

  <판결>의 서두는 사실주의 규범을 따르는 전통적 묘사다. 그러나 하루의 시간, 계절, 날씨를 묘사하는 첫 단락이 끝나자마자 텍스트는 돌연 일련의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지며 파국을 향해 치달아 간다. <선고>라고도 번역되는 작품에 나오는 친구의 정체는 수수께끼다. 게오르그는 러시아에 사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약혼 사실을 숨긴다. 한편 아버지는 친구의 존재를 한사코 부인하면서도 대리인을 자임하며 친구가 더 훌륭한 아이였다고 게오르그의 내면에 자리한 악마성을 질타, 익사형을 선고한다. 게오르그는 망설임 없이 강물 속에 몸을 던진다,

  친구는 누구이며 존재하기나 하는가? 게오르그는 무슨 문제가 있어 친구에게 약혼사실을 감추려 하며,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비정한 아버지는 누구이고, 왜 아들은 항거하지 않고 강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사형을 집행하는 것인지. 게오르크의 정체도 미심쩍긴 마찬가지다. 동성애자인가 양성애자인가, '고독한 원(圓)‘의 ’고독한 중심'인가, 아나면 소멸하려 확장되는 ‘동심원(同心圓)의 외곽’인가. 맥락 없는 듯 보이며 그래서 더욱 긴밀한 의문점들은 아직 해명 되지 않았다.

  <변신>은 또 어떠한가?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가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한 마리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었다'로 시작하는 <변신>의 서두 묘사는 세계문학사상 불후의 글귀이다. 이어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이 묘사된다.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웠는데, 활모양의 각질(角質)로 나뉜 불룩한 갈색 배가 보였고, 이불이 미끄러질 듯 간신히 걸려 있었다.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서 맥없이 허위적 거렸다.'

  의류회사 외판원인 그레고르는 하룻밤 사이에 벌레로 변해 세상과 단절된다. 벌레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레고르는 가족들에게도 골칫거리로 전락한다. 하지만 그레고르는 변신을 크게 괘념치 않으며 오히려 출근 기차시간에 늦지 않을까 걱정한다. '한 숨 더 자면 이 모든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잊어버리게 될거야. 맙소사! 벌써 여섯시 반이로구나. 도대체 자명종이 울리지 않았단 말인가?'

  카프카의 작품 중 <변신>은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알레고리다. 출구 없는 절망적 상황에 던져진 개인이 겪는 압박과 소외감을 묘사한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낡은 것이다. <변신>의 참다운 의문점은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데 있지 않고, 그 같은 초자연적 현상이 본인과 가족에게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된다는 데에 있다. 이상한 것은 현실이 되어 분리할 수 없다. 이상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은 상처가 덧나 교회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숨을 거두는 그레고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데, 가만, 게오르그(Georg)와 그레고르(Gregor), 그레고르와 게오르그라... 섬광처럼 머리를 스치는 생각.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무엇인가? 애너그램(Anagram, 語句轉綴). 발음, 음운과 글자의 배열이 닮았다. 그레고르는 다름 아닌 게오르그의 변신이었다! <판결>은 <변신>의 탄생설화다. 아니, 그보다... 팰린드롬과 애너그램. 우영우와 카프카가 같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게오르그와 그레고르처럼.

*<<계간 현대수필>> 2022,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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