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막 산에서 내려온 참이었다. 대문을 들어서자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서른 걸음쯤 앞에 돌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오르면 정원이 나오고, 집은 한 층 더 올라가야 있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저 집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따라가는 게 아니었다.
어렸을 때, 아직 할머니가 살아있을 땐 고모가 우리 집에 자주 왔었다. 가끔은 한 살 위의 사촌언니도 같이 왔는데, 그런 날엔 고모를 따라가겠다고 떼를 쓰곤 했다. 동생은 같이 놀기엔 너무 어렸고, 오빠들은 온종일 날 골탕 먹일 궁리만 하는 것 같았다. 고모네 집에는 언니도 둘, 오빠도 둘이 있었는데, 사촌오빠들은 자기들끼리 놀았고 큰언니는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고모네 가면 막내 언니는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그날도 엄마를 졸라 고모네에서 하룻밤 자는 것을 허락받았다. 언니랑 한 이불을 덮고 키득대다가 잠이 들었고, 일어나서는 함께 만화영화를 봤다. 아침을 먹고 나서 언니는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고모와 나갔다. 심심해하는 나에게 사촌오빠들이 꿩을 보러 가자고 했다. 몇 번을 와봤어도 집 뒤로 이어진 산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중학생인 큰오빠의 뒤를 잰걸음으로 따라갔다. 큰 키의 나무들이 빼곡한 사이로 한참을 걷는데, 앞서가던 오빠들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이내 멈추고는 자기들끼리 쑥덕대더니 어른을 불러오겠다며 왔던 길로 사라졌다.
숲은 처음이었다. 몇 걸음 앞 바위 아래로 어떤 뭉치 같은 것이 보였는데, 마치 외갓집에서 보았던 공작새의 깃털처럼 오묘한 색채를 띠며 번쩍였다. 안 돼! 보지 마! 뒤돌아 도망가고 싶었지만,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등 뒤로, 오빠들이 사라진 길에서 귀신이 나올 것 같았다. 손바닥만큼이지만 하늘이 보이는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아침에 본 만화영화의 주제가를 몇 번을 불러도 오빠들은 오지 않았다.
울고 싶었던 것 같다.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노래가 자꾸 끊겼다. 그때까지 겪어본 적 없는 덩어리가 내 안에서 부피를 키우고 있었다. 거기에 계속 있다가는 풍선처럼 터져버려서 기어이 울음보를 터뜨릴 것 같았다. 사촌오빠의 뒤꿈치만 보며 올랐던 길을 내려갔다. 재빨리 뛰어가고 싶었지만 발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고모네 집 대문이 보이자 날 버리고 가버린 사촌오빠들에게 앙갚음하겠다는 생각에 속도가 빨라졌다. 깜짝 놀라보라지!
살며시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개들이 짖어댔다. 문에서 서른 걸음쯤 앞에 3층 높이의 돌계단이 있었고, 계단 왼쪽으로 개집 세 채가 있었다. 제각기 자기 집에 묶인 세 마리 중 가장 시끄러운 녀석은 하얀색의 작은놈이었다. 방방 뛰며 짖어대는 하양이 옆 누렁이는 그보다 느리고 낮은 소리를 냈다. 검은색 개는 입에 재갈이 물려있어 그르렁댈 뿐이었지만, 날렵한 생김새만큼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댔다. 계단 가장 가까이에 선 놈은 내가 움직이면 바로 달려들 기세였다. 검은색 개는 큰 사촌오빠 말만 듣는다고 했다. 어쩐지 개집 뒤에 오빠가 숨어있는 것 같았다.
지난번에는 화장실에 갇혔었다. 그날도 언니는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고모와 나갔다.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미닫이문이라 밖에서 고리만 걸면 안에선 열 수 없었던 것이다. 방 두 개를 합친 것처럼 길고 넓은 욕실엔 작고 푸르스름한 타일이 사방을 덮고 있었다. 타일을 바른 욕조는 우리 식구와 고모네 온 가족이 다 들어갈 만큼 컸다. 공중목욕탕 같은 욕조 안에 쪼그리고 앉아 훌쩍이다가 잠이 들었다. 볼일을 보려다가 나를 발견한 고모에게, 밖에서 문을 잠갔다고 말해도 오빠들은 그저 모르쇠를 잡을 뿐이었다.
우리 집에 가고 싶어졌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계단을 향해 있던 발을 돌렸다. 그리고 뛰었다. 대문 밖 골목 어귀에 다다를 때까지 등 뒤로 개 짖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학교 근처 독립문까지만 가서 택시를 탈 계획이었다. 동대문 스케이트장에서 집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다. 자동차로 걸리는 시간이 비슷하니 거리도 비슷할 터였다. 게다가 그날보다 따뜻하고 날도 밝았다. 하지만 막상 학교에 가까워질수록 택시 값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산에 갈 때도 챙긴 핸드백은 엄마가 사준 보물이었지만, 동전 한 개 들어 있지 않았다. 쌍둥이 아기천사가 그려진 빗-거울 세트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돈이 없다고 했으면 차장 언니가 봐줬을지도 모를 일이건만, 버스 탈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내 머릿속엔 그저 오빠들을 혼내줄 생각만이 가득했다. 집 앞 교회가 보일 즈음엔 엄마를 보자마자 서럽게 울 준비가 되어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도 아빠도 없었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지하실에 있는지 1층은 텅 비어 있었다. 그날 저녁을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난 그대로 잠이 들었고 이튿날엔 엄마한테 이를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언니랑 놀지 말라고 하면 어쩌지? 고모가 사촌오빠들을 혼내면 친오빠들이 날 더 미워할 것 같았다. 내가 한 살 위 사촌언니를 따랐듯이, 우리 오빠들도 한 살 터울인 사촌오빠들을 잘 따랐으므로. 이후로는 고모네 놀러 가겠다거나 언니와 놀겠다고 조르지 않았다. 이따금 꿈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피해 좁은 길을 따라 도망치곤 했다.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거무스름하고 번쩍이는 것이 크기를 키우며 끈질기게 내 꽁무니에 따라붙을 뿐이었다. 꿈은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3학년 봄, 나는 녹번동에서 장충동까지 걸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날의 이야기이다.
2. 나는 고발한다
그 방은 모든 것이 반짝거렸다. 부엌 옆 쪽방과 거실에서 들어가는 안방의 벽을 허물어 만든 공간이었다. 엄마는 작은방이었던 곳에 식탁을, 넓은 쪽에는 소파와 테이블을 두고 손님이 올 때만 사용하였다. 평소엔 잠겨있는 그 방에, 열쇠를 숨겨둔 곳을 알아내서 몰래 들어가곤 했다. 그곳은 두 살, 네 살 위의 오빠들도 드나들지 못하는 ‘어른들’의 공간이었다.
즐겨보던 만화영화가 종영한 한참 후에도 주제가를 흥얼거리던 시절, 큰오빠의 책장에는 주황색 책 세트가 꽂혀있었다. 한 권 구경이라도 해봤으면 했지만, 중학생이 된 오빠는 맨 위칸에 있는 그 책들의 제목도 보지 못하게 했다. 엄마는 다른 책들은 사달라는 대로 사줬으면서도 그 책들은 사주지 않았다. 대신 나는 호시탐탐 응접실에 들어갈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한쪽 벽면 가득 책이 꽂혀있는 응접실이 좋았다. 손때 적당히 묻은 책의 구린내가 향기로웠다. 새 책 특유의 잉크 냄새도 좋았다. 어떤 날엔 제목의 글씨가 멋있는 책을, 다른 날엔 표지 색이 예쁜 책을 골라 읽었다. 부모님의 책장에서 꺼낸 책을 읽다 보면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커피테이블 위에 누워서 바라본 천장은 만화경 속을 닮았었다. 샹들리에의 크리스털이 빛을 반사하면서 알록달록하게 보석 무늬를 만들어냈다.
문에선 보이지 않는 식탁 아래는 책을 읽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나란히 붙인 의자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책을 읽곤 했다. 가장 좋아했던 건 시집이었다. 샛노란 색이 아니라 하양을 살짝 섞은 표지 색깔이 고왔다. 파란색 그림과의 어울림이 조화로웠다. “내 생애가 한 번뿐이듯 /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시 구절을 읊으며 식탁 아래에서 잠이 들기도 했다. 내게도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오기를. 우리 집 담장이 너무 높고 창밖으로 나무가 없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로미오’가 내 주위에 없는 것은 문젯거리가 못되었다. 오빠들이 나를 못살게 굴어도 나는 살아남기로 했다. 그때부터였다. 그날에 관한 기록에 불과했지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침대 매트리스 사이는 일기장을 숨겨놓는 장소였다. 단 한 번뿐일 사랑을 그리며,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은 마음 금고에 두었다.
“넌 감정이 없니? 로봇이야?” 중학교 1학년 발표시간이었다. 당시 국어 선생님은 자유로운 주제로 작문 숙제를 내주고는 수업 첫머리에 두 명씩 소리 내어 읽게 했다. 나는 두어 달 전에 있었던 할머니의 장례에 관해 썼다. 선생님은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추억이 있었기에 내 글에서도 그런 마음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불행히도 내게는 할머니와의 기억이 없다시피 했고, 문학작품 속에서 죽음은 비극적인 동시에 낭만적인 무언가를 떠올리는 단어였다. 자칭 문학소녀였던 나는 글 좀 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생님의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 중간고사 성적이 좋지 않아서 괜히 트집을 잡는다고만 생각했다.
이제는 어른들의 책이 재미없었다. 그해 가을 국내 첫 순정만화 월간지가 창간되면서 신세계가 열렸다. 용돈 모아 산 내 것은 오빠들에게 빌려봐야 했던 소년만화와는 달랐다. 예쁜 그림 속의 여자 주인공은 모두의 사랑을 받았고, 멋있는 남자들은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 남북전쟁, 종교개혁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여자나 유럽풍의 성을 공책에 따라 그리기도 했다. 응접실 샹들리에 아래에서 사랑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쉴 새 없이 사랑에 빠졌다.
“넌 글 쓰는 게 장난이니? 너 정말 문학적 재능이 없구나.” 2학년 땐 가출했던 이야기를 썼다. 부모님한테 혼나고 집을 나갔지만 용돈 몇 푼 들고 어디로 갈지, 동네 길도 몰라서 두어 시간 만에 돌아왔다는 내용이었다. 막막함을 표현한답시고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을 찾아서 신앙심 깊은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렸던 걸까. 선생님의 남편이 우리가 금요일마다 예배를 드렸던 교회의 목사였고 본인도 교회의 직책을 맡았었다는 건 나중에 들었다. 발표를 끝맺지도 못하고 자리로 돌아왔지만, 친구들은 재미있다며 좋아했다. 1학년 때 공개적으로 망신당한 것에 대한 복수를 한 것 같아서 조금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 누구도 내 가출을 알지 못했다는 얘기는 비밀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 가방 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모르는 아저씨가 지하철역 앞에서 대뜸 내 책가방을 채가더니 속을 뒤졌다. 겉에 ‘ㅇㅇ국민학교 6학년’이라고 적힌 교과서 몇 권과 공책들을 보고는 가방을 돌려주며 그런 거 그만 먹고 살이나 빼라고 했다. 귓불이 벌게져서 집에 왔다. 연습장이 찢어지도록 낙서를 했으면서도 그날의 일기는 쓰지 않았다. 오늘을 잊음으로써 미래의 나를 속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훗날 오빠들이 대학생이 되고서야 내 차지가 된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처럼 말이다. 한 번도 바란 적 없다는 듯이, 나는 수십 권에 달하는 그 책들을 상자에 넣어 쓰레기로 내놓았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여름, 나는 종일 최루탄 가스에 시달려야 했다. 학교 근처 경기대학교에서도, 집 앞 동국대학교에서도 매일 같이 학생운동이 있었고, 통학길인 종로에서조차 시민운동이 있었다. 데모를 왜 하냐는 질문에 먼 친척 아저씨가 말했다. “쎄빠지게 일해서 대학 보내놨더만 아새끼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저 지랄이다.” 기사 아저씨는 대통령 물러가라고 해서 경찰들이 가스총을 쏘는 거라고 했다. 그 총에 맞아 대학생 두 명이 죽었다고도 했다. 철조망으로 창문을 가린 버스들이 둘러싼 시위 현장, 헬멧 아래로 그물을 뒤집어쓴 채 커다란 방패 뒤에 숨어서 최루탄을 쏘는 경찰들, 불붙인 소주병을 던지는 대학생들, 서로 팔짱을 끼고 소리를 질러대는 어른들, 그리고 브라운관 속에서 무조건 잘못한 게 없다는 사람들. 데모하는 사람들도, 그걸 막는 사람들도, 6학년인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였다. 아저씨는 더 이상 말해주지 않았다.
여름방학 전 수영 수업이 있던 날에 나는 수영복을 안 가져왔다는 핑계를 대고 빠졌다. 애들을 구경하는 대신, 일기장 빼곡히 내가 들은 것을 받아 적었고 본 것을 기록했다. 대학생이 왜 죽어야 했을까? 경찰이 왜 사람들한테 총을 쏘는 걸까? 데모에 참여하지 않은 우리는 왜 매운 공기에 시달려야 할까? 사람들은 왜 대통령에게 물러나라고 하는 걸까? 머릿속을 가득 채운 질문을 쏟아냈지만, 일기장은 말이 없었다. 담임선생님이 내 수업태도를 꾸짖으며 일기장을 압수해 갔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어머니를 통해 돌려받을 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왜인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혼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