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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할머니의 똥떡    
글쓴이 : 김명희 목요반    23-02-05 22:58    조회 : 3,216

                   외할머니의 똥떡

                                                                                                          김 명희

 

외갓집 가는 길은 힘들었다.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서 의령과 합천의 경계지역인 신반에 내리면 늘 장날이었다. 생각해 보면 시골 친지들과 중간에서 만나기 위해 일부러 날을 맞췄구나 싶다. 장 구경을 하고 있다 보면 외가나 친가 식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큰집 가는 길은 멀었지만 신작로를 따라 가는 큰 길옆에 있어 편히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외할머니나 이모를 만나 외가로 가는 길은 신작로에서 내려 한참을 걸아야 했다. 작은 도랑도 두엇 건너고 논두렁을 걸어가다가 할머니 집이다 하셔서 들어가면, 그곳은 엄마의 외갓집이었다. 엄마가 엄마의 외할머니와 외삼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시는 동안 우리는 마당에서 뛰어 다니며 기다리곤 했다.

거기서 뒷길로 한참을 더 가야하는 골짜기에 외가가 있었다. 여우가 나온다는 고갯길을 넘어 갈 때면 막내를 업은 엄마 등 뒤에서 동생과 손을 잡고 칭얼대곤 했었다. 그 중턱에는 작은 암자도 있었는데 가끔 스님이 아닌 고시공부 한다는 아저씨가 보이기도 했다. 그 유학사 암자를 넘어 갈 때쯤 장에서 산 튀밥이나 옥수수를 꺼내주셔 먹다보면 그제야 외가가 저 너머로 보이는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삼십 여 호나 되었을까 싶게 마을은 정말 작았다. 기억이 나는 것은 마을 초입에 커다란 디딜방아다. 초가지붕에 한 벽이 뻥 뚫려 긴 줄로 연결된 나무로 만든 커다란 방아가 놓인 모습이 잘 보였다. 가끔씩 흰 줄에 매달려 동네 아주머니들이 방아를 찧던 모습과 둘러서서 가루를 퍼 담던 모습들이 신기했었다. 줄을 잡은 이가 발을 한번 구를 때 마다 반질반질한 까만 구멍이 하얗게 가루를 뿜어내는 날이면 뛰어가 구경을 하곤 했다. 방아 찧는 옆을 배회하다가 흩어지는 가루를 한 줌씩 운 좋게 얻으면 뭉치기도 하고 뿌리기도 하며 놀았다.

간혹 늦가을이면 낙엽 사이에 까맣게 말라 있던 열매를 주워 동네 아이들이 나눠주곤 했었는데 지금도 그 맛이 가끔 생각난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이라 호롱불을 켜놓은 곁에서 할머니와 이모들은 ‘오비’ 라는 걸 하고 있었다. 일본으로 수출하는 천이라고 했는데 어둑한 방안에서 작은 틀에 달려있던 고리에 실을 걸었다 풀었다 하며 천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잠들곤 했었다.

시골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시골에는 송아지가 태어나면 소를 여럿 키우는 이웃에 보내 잠시간 키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걸 ‘바내기보낸다’고 한다. 나도 ‘바내기’를 간 적이 있는데 큰댁인지 외가인지 아직 겨우 걷던 시절의 첫 기억이 있다. 연년생 동생을 봐서 힘들었을 어머니 때문이었던지 시골집에 있었던 나는 해질녘 동생을 업고 마당으로 들어오시던 엄마를 보며 울면서 뛰어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제법 커서까지 외할아버지와 아직 어렸던 외삼촌이 가마에서 쪄 내 식혀둔 닥나무 껍질을 벗기시던 모습 정도가 더 남은 기억일 뿐이다.

그런데도 할머니 댁 아래채와 그 옆에 정원처럼 펼쳐져 있던 밭이 늘 기억난다. 시퍼런 토란잎들이 큰 키로 흔들흔들 춤을 추는 여름날의 기억이 나는 것은 아마도 외할머니가 해 주신 똥떡 때문일 것이다. 혼자서 일 보러 간다고 갈 정도였으니 예닐곱은 되었을 터였다. 그날 나는 토란밭 옆을 지나야 있는 뒷간을 혼자 갔다가 그만 빠져버렸다. 마침 거름을 내고 난 뒤였던 건지 얕아서 거기에 서서 한참을 운 것 같다. 어떻게 건져내진 건지는 기억이 없다. 씻겨주고 안아주셨던 기억이 난다. 애 안보고 놀기만 한다고 이모들이 날벼락을 맞았던 것 같다. 동티나면 안 된다, 떡을 해서 돌려야 한다고 부산하셨던 기억도 난다. 가난한 시골 살림에 급히 할 수 있는 것이 풋고추 전이었을 것이다. 할머니께서 풋고추를 썰어 넣어 전을 잔뜩 부치신 것이 생각난다. 노르스름한 반죽 사이사이에 떠오르는 시퍼런 초록. 한참을 전을 부치고 이모들은 부산히 전을 이웃집들에 갖다 날랐다. 그리고는 씻어두었던 옷을 들고 말리러 나갔다. 소쿠리에 전도 담아 들고 나는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나가서 볕 좋은 너럭바위 위에서 한참을 놀았다. 나뭇가지에 걸쳐둔 옷을 걷어 집으로 돌아올 때 까지 할머니와 둘이서 뭘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햇볕이 부드럽게 일렁이고 나뭇잎들이 많이 반짝였었다.

나는 조롱조롱 매달린 4남매의 맏이였다. 어머니는 나를 낳고 많이 아프셨는데 외할머니가 아기였던 나에게 지청구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다. 아직 어렸던 이모들과 외삼촌도 있었지만 외할머니께는 자식보다 귀한 맏손주인 나보다 한 살 위의 외사촌 언니와 또 여섯의 손자가 더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외할머니와 친한 손녀는 아니었다. 그리고 혼자 외가에 간 적은 기억에 없으니 그날 동생들도 함께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 손을 잡고 단 둘이 그 바위 위에서 보낸 시간이, 그리고 온전히 나만 보아 주시고 나만 안아 주신 그 순간이 참 좋았던가 보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 나 만을 온전히 바라봐 주고 나 만을 위해주는 그런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싶다. 오롯이 나와 할머니만 있던 시간에 대한 비밀스러움과 소중함. 그것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그리움이다. 그리고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자주 생각이 난다.

어렸던 내가 혹시 해를 당할라 싶어 급히 밭에서 따온 채소들로 차려주신 풋고추전. 그래서인지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늘 여름이 된다. 시퍼런 풋고추가 듬뿍 든 전과 여름 햇살아래 흔들리던 토란잎들, 그리고 바위 위에서 흔들거리던 햇볕과 나뭇잎들. 외할머니의 똥떡이 효험이 있지 싶다. 긴 세월 살면서 여태껏 크게 동티나는 일 없이 살고 있으니 ...



                                                                    - 창작산맥  (제29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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