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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르시스의 비밀    
글쓴이 : 김삼진    23-02-18 13:10    조회 : 3,863


카타르시스의 비밀

 

                                                                                          김삼진

                                                                                              ks12130130@hanmail.net

 

군대생활 말년엔 욕이 입에 붙어살았다. 내 욕엔 대상이 있었다. 수돗물을 빨고 대학을 다니다 왔다는 이유로 나를 오지게 미워했던 선임하사가 그였다. 그는 다른 병사들의 실수는 그냥 지나갈 일도 내가 하면 꼭 빠따를 쳤다. 그게 아니라도 당시에는 군기가 세서 기합을 받을 일이 많았는데, 나는 중대의 군기반장이랄 수 있는 선임하사에게 미운털이 박혀서 막말로 눈만 마주쳐도 머리가 짓무르도록 대가리를 박거나 숨이 끊어지도록 선착순을 돌아야 했다.

그 험한 군대생활 36개월을 탈영도 하지 않고, 자살시도도 하지 않고 어떻게 용케 버티어 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넉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기합을 받고 난 후엔 반드시 욕으로 고통과 상심을 풀었다. 마치 고된 운동 끝에 마사지로 근육을 풀어주듯이. 그리고 욕을 혼자서 속으로 꿍얼거리는 게 아니라 졸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웅변하듯 함으로써 그들의 갈증까지 해소시켜주었다. 길고도 구체적인 그 욕을 차마 여기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 욕은 나뿐만 아니라 졸병들의 스트레스까지 날려주는 통쾌무비한 것이었다. 은근히 내가 욕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놈들도 많았다. 졸병들은 내가 선임하사에게 깨지고 나면 내 앞으로 모여들어 이번에는 어떤 욕이 나오는지 기대에 찬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욕으로 그 끔찍한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었던 시절도, 그 선임하사도 이제는 그립기조차 하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욕을 먹은 선임하사는 지금 아흔이 넘었겠지만 내 덕에 건재하리라.

어려서부터 욕은 나쁜 것이며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배워왔다. 욕은 마치 교양 없음의 상징처럼 여겨왔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의 교육으로 인해 여간해서는 욕을 하지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을 때 처음으로 새끼라는 욕을 듣고는 놀랐다. 허락되지 않은 말로만 알고 있어서였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욕을 사용했고 그래서 나도 몇 번 써보니 내 자신이 뭐가 된 것 같았다. 집에 와서 그 말을 쓰고 싶어서 형에게 나쁜 새끼라고 했다가 어머니에게 야단과 함께 장딴지에 빨간 줄이 선명하도록 회초리를 맞았다. 욕의 용처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

그 후로 욕은 강제에 의해 못하기도 했지만 철이 들어가면서는 스스로 자제하여 하지 않게 되었지만 세상이라는 것이 살아보니 억울한 일도 생기고 응어리가 쌓이기도 하는데 이런 것을 어떻게든 해소를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게 느껴진다. 그럴 때면 독백일지라도 욕을 툭, 뱉어내면 시원해졌다.

칠십 중반이 넘어도 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는 5,60년 묵은 고등학교 동창밖엔 없다. 나는 욕의 효용가치가 궁금해서 욕이 통할만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한 달이면 두어 번 소주잔을 기울이며 무자비하게 욕설을 주고받던 그는 5,6년 전에 지방의 작은 도시로 이사를 가버려서 욕을 배설한지가 오래 되었던 터였다. 신호가 서너 번 가고 친구가 받았다. 나는 약간의 간격을 두었다가 , **놈아 잘 있냐?”하고 인사를 텄다. 2,3초쯤의 침묵이 흘렀다. 사실 나는 그 약간의 침묵을 즐기고 싶어서 도발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녀석의 반격. 나는 소총을 썼는데 녀석은 대포를 끌고 왔다. 나는 그의 무지막지한 반격에서 개도 두어 번 되었다가 흘레도 대여섯 번 했다가 결국은 걸레가 되었다. 웃기게도 녀석은 통화를 끝내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나의 욕에 대한 효용가치탐구는 대단히 유의미했다. 며칠 전에 녹내장에 황반성인지 뭔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운전 면허증을 반납했는데, 그러고 나니 불편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스트레스도 쌓이고 우울하던 참이었다나.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내 욕 덕분에 풀렸다는 것이다. 이해 못할 사람들이 더러 있겠지만, 나는 어떤 계산도 없이 어릴 적 그대로 입을 털 수 있는친구가 있어서 행복하다.

문우의 차를 얻어 타고 모임에 가는 길이었다. 밀린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는데 친구가 갑자기 *놈의 새끼 좀 보소. 깜빡이도 안 넣고 갑자기 끼어들면 어쩌란 거야? *새끼.” 나는 놀라서 그녀의 고운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변소도 다니지 않을 것 같은, 교양미에 세련미까지 넘치는 여인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욕을 자연스럽게 퍼부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왜요, 저는 욕하지 말라는 법 있어요? 욕 안 하고 이 드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라구.” 그때까지도 입을 벌리고 있던 나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맞다. 욕과 약은 같은 방향을 걷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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