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다고?
박경임
“이제는 일하기 싫더라.”
며칠 전 친구가 내 사무실에 놀러 와서 한 말이다.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이제 사회적으로 정년이 지나 자영업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백수가 되었다. 그 친구는 동대문에서 직물 도매상을 오래 했는데 요즘에는 기성복이 발달해서 예전처럼 직물을 직접 사러 오는 일반인은 드물어졌단다. 그렇기도 하지만 이제 직물을 날라주고 자기 가게에 없는 물건을 다른 상회에서 찾아주는 일이 버거워지기도 했다. 동대문 시장을 누비며 밤낮없이 일하던 지난 시절을 돌아보니 지금 젊은 사람들은 너무 편해지려는 경향이 있어 조금만 힘들어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통에 직원이 3년을 넘기기가 어렵다 했다. 그래서 지금 있는 직원도 그만두려고 하는 것을 자기 가게를 나중에 좋은 조건으로 넘겨주기로 하고 붙잡아 두었단다.
그 친구는 자식에게 유산을 남겨주고 싶지도 않고 자식들도 출가하여 제 나름의 생활을 하고 있으니 부부만의 생활비로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힘들여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주변에 아픈 친구들이 늘어가는 것을 보며 굳이 건강을 해쳐가며 일하는 것은 더욱 피해야 한다고 했다. 이제는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을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여유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지 우리나라 노년층의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최상위라고 한다. 일하기 싫어도 밥벌이를 해야 하는 많은 노인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취업인구 분포를 살펴보아도 60대 이상의 취업 인구가 2.30대를 추월해있다. 젊은이들이 찾는 일자리가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노년층은 좋은 일자리는 아니더라도 뭔가 일거리에 매달려 있어야 심신의 안정을 가질 수 있는 습성 탓도 있을 것이다. 물론 경제적 안정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지만 일이 몸에 밴 우리는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친구들 중에는 넉넉한 연금으로 생활하는 친구도 있지만, 아파트 경비를 하거나 택배 아르바이트 등으로 경제 활동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경제적인 안정이 없이도 우리 부모님은 40대 중반에 돈벌이를 끝내고 80대까지 살고 계시니 지금 일을 그만둔다 해도 나는 그들보다 20년이나 더 일한 셈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는 예전 우리 처럼 월급을 봉투 째 내미는 자식이 없으므로 일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지난 2020년 우리나라 인구조사 결과를 보다가 친구들끼리 실소하며 기운을 뺀 일이 있는데, 나이별 인구통계를 보니 67세의 인구가 약 32만 명이고 77세는 16만 명이 조금 안되고 87세는 32,000명 정도였다. 앞으로 10년을 살아있을 확률은 50%,20년을 살 확률은 겨우 10% 였다. 친구가 말했듯이 제 발로 걸어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먹고 즐길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살아있을 사람들 속에 내가 있을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말이다.
언젠가 명문 대학교에서 부모님이 언제까지 살아있기를 바라느냐는 설문 조사를 했는데 가장 많은 답이 63 세라고 하는 기사를 본 일이 있다. 그렇듯 오래 사는 일은 자식들에게 별로 달가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나 역시 6 년이 넘도록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의 삶에 대해 별로 기대하는 바가 없으니 말이다.
십 대에 우리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더디게 가는 시간이 야속했는데 이제는 너무 빠르게 흐르는 시간에 정신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나이의 속도만큼 시간이 흐른다는 것에 공감이 되기도 한다.
내가 가진 시간의 양이 어떠하든, 내가 살아있는 것이 환영을 받든 아니든 지금 나는 살고 있다. 친구가 하는 말처럼 쉬고 싶기도 하고 일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나는 일해야 한다. 요즘 시대에 자식이 나의 노후를 책임지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서 저축이 없는 나는 아직 배고프고 일차적 생존을 위해 일해야 하는 많은 노인 속에 속해 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에 하나를 더하고 있는 내 처지가 서러울 때도 있지만 아직 건강하게 아침에 눈 뜨고 갈 곳이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다행히 내가 하는 일인 공인중개사는 정년이 없어 나의 공무원 동기들도 아직 현업에 있는 나를 부러워한다. 물론 이 일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품위를 지키며 일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내 건강을 지키며 내 손으로 번 돈으로 친구들에게 술 한잔 사는 재미 또한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