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튀김 하나 먹을까요?
박경임
“우리도 생선 튀김 하나 먹을까요?”
여자는 상체를 반 쯤 남자 가까이 기울이며 작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60대 중년 부부로 보였는데 남자는 핸드폰 액정에 눈을 고정한 채 답이 없다.
그 집은 혜화동 로터리 부근에 있는 칼국수 집이다. 아주 오래된 시멘트 블록집으로 잘해야 20평이 될까 하는 땅에 지은 이층 집이다. 하늘색 페인트가 칠해진 벽은 군데군데 얼룩이 지고 알루미늄으로 된 출입문은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오지 않아 이 층 난간에 붙여진 <00 칼국수> 라는 간판이 아니면 이곳이 식당이라고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편에 주방, 왼편에 방이 두개, 지하에 작은 방이 하나 더 있고 이 층에는 올라가 보지 못했지만 일 층보다 면적이 작아 보였다.
꽤 오래된 집으로 사골 국물에 애호박 한 가지만 몇 개 띄운 깔끔한 스타일인데 직접 뽑은 면발이 부드럽게 맛이 있는 집이다. 딸이 처음에 데려갔을 때는 뭔 이런 허름한 집에서 비싸게 파는 칼국수를 먹겠다고 줄을 설까 했는데 먹을수록 입에 남는 맛이 좋았다. 이 집에 또 한 가지 명물이 생선 튀김이다. 동태인지 대구 살 인지를 튀겨 주는데 푸짐하기도 하고 맑은 색깔의 튀김이 좋은 기름을 쓰는 것 같았다. 나도 일행과 함께 생선 튀김과 칼국수를 시켰다. 내가 주문하는 소리를 듣고 먼저와 있던 옆 테이블의 여자가 나를 힐긋 보며 남자에게 물어본 것이다. 보통 양이 적은 두 사람이 오면 칼국수 한 그릇에 생선 튀김을 시켜 나누어 먹는다.
내 뒤에 따라 들어 온 젊은 커플도 칼국수 한 그릇에 생선 튀김을 주문했다. 그네들은 바로 남자의 뒷자리였다. 여자는 그 젊은 커플이 주문하는 소리에 벽에 붙은 메뉴판을 올려다보며 앞에 앉은 남자에게 “저기요, 생선 튀김 하나 먹을까요?” 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계속 핸드폰만 들여다보았다. 마침 주문한 칼국수가 나와서 그들은 아무 소리도 없이 칼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우리 밥상에 생선 튀김이 먼저 나오자 여자는 계속 옆눈질로 우리 생선 튀김을 쳐다보며 입으로 국수를 밀어 넣었다. 옆 테이블과의 거리라야 종업원이 겨우 다닐 정도여서 생선 튀김을 먹는 내가 민망했다. 몇 개 담아 나누어 주고 싶었다. 칼국수를 다 먹을 동안 그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소리 없이 국수를 먹고 뒤 돌아 나가는 그들을 보며 내 음식 맛이 사라졌다.
그 나이에 여자는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시킬 수 있을 만큼의 결정력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남편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준 것일까? 오랜만의 나들이가 음식 하나로 망가져 버리지는 않았을까 걱정도 되었다. 아무리 사랑의 유효 기간이 다 되어 서로에게 시들해 있다 하더라도 아내와 동행한 외식에 남자의 행동은 나를 화나게 했다. 여자는 자기가 계산을 하더라도 만 오천 원의 생선 튀김을 못 먹고 그냥 가야 했을까?
부부에게는 <일상가사 대리권>이 있다.
부부가 혼인이라는 공동 생활을 하기 위해 서로가 대리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제삼자와의 법률행위를 한때에는 다른 일방은 이로 인한 채무에 대해 연대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정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산다거나 생활비로 쓰기 위해 은행 대출을 받는다거나 했을 때, 객관적으로 가족 공동 생활에 필요한 범주의 결정에 대해 상대방의 승인이 없어도 결정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채무에 대해 부부 공동의 연대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이와 같은 법률적 지침이 아니라 하더라도 부부는 일일이 허가 받지 않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그 여자는 생선 튀김 한 접시의 주문을 굳이 두 번씩이나 남편에게 물어야 했을까?.
일단 시켜서 먹어보고 남으면 포장하고, 남편에게도 새로운 음식을 먹여주며 나긋하게 얘기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렇게 말이 안 통하는 남자라면 이런 외식 나들이조차 하지 않았으리라고 예단했다. 여자의 우유부단함이 오히려 남자를 우습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식당에 마주 앉아 말없이 음식만 먹는 커플은 부부이고, 대화를 나누고 눈을 맞추는 커플은 불륜이라는 세상 속 얘기가 생각났다. 일요일 점심에 맛집으로 소문난 집까지 와서 남자는 왜 그리 멋 없이 굴었을까?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음에 먹자.”라고 한마디만 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녀는 오늘의 점심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먹고 싶은 음식을 앞에 두고 못 먹었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하지만 밖에서 보면 낡고 허름하지만 내실 있는 이 칼국수 집처럼 오래 산 부부들도 밖에 보이는 모습이 다는 아니리라고 위안 해보며, 식당에서 식사하는 동안이라도 핸드폰을 잠시 넣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