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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상 장부( 동인지 『산문로 7번가 』7호)    
글쓴이 : 김시현    23-06-08 20:18    조회 : 1,818

외상 장부

 

김시현

fence2000@hanmail.net

 

삶이 가라앉을 때는 재래시장을 찾는다. 서민들에게 재래시장은 삶의 터전이다. 상인들의 목울대가 숨 가쁘게 움직인다. 목청을 돋우어 호객하는 그들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떼 같다. 가슴은 뜨거워지고 발걸음에 힘이 들어간다. 단골 가게에서 흙이 묻은 무를 보면 고향을 보는 듯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시루떡을 산다. 고소한 향이 나는 참기름을 바구니에 담는다. 아버지가 먼저 떠난 고향 집을 지키고 있는 엄마 인생이 한 꾸러미 딸려 온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경남 남해 도마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와 잡화 가게를 했다. 주변 여덟 개 마을의 아이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수업 준비물을 사기 위해 엄마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과자와 고무줄을 사고 축구공이나 제기 등 장난감을 사려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코 묻은 동전을 내밀었다. 가게는 아침마다 손이 모자라 난리였다. 아버지는 한국도로공사를 다녔는데 출근 전 바쁜 일손을 도왔다. 아버지 손을 빌려도 역부족인 가게를 모른 척하고 등교할 수 없어 5학년이었던 나는 엄마를 도왔다.

내가 맡은 일은 아이들이 물건을 훔치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어쩌다 정신없는 상황을 틈타 돈을 내지 않고 가 버리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엄마는 도와준 대가로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지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도 큰 것을 고르기가 죄송해 작은 것 하나를 고르면 엄마는 덤으로 먹을 것을 주었다. 아이들과 나누어 먹으라며 넉넉하게 집어 주곤 했다. 그래서였는지 엄마 일을 돕는 것이 좋았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엄마는 삶에서 돈이 갖는 가치를 알려 주기도 했었다.

 

이른 아침 집 앞 개울가에는 여인들의 빨래 방망이질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한 아주머니가 비누가 떨어졌다며 아침부터 외상을 했다. 그들 중에는 빨래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방 세제와 식용유, 조미료, 설탕을 외상으로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다. 들일 할 때 중참中站 거리가 필요해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우리 엄마가 장부에 달아 두래요하고는 냉큼 뛰어갔다. 외상 장부에는 대장간 영춘네, 농방집, 골등집, 두붓집, 도가 명구네, 씨앗집 상열네, 학교 사택 김 선생님 등 다양한 이름이 기재記載되어 있었다. 외상값을 제때 갚지 않는 골치 아픈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남성이 있다. 우리 집에는 건장한 두 오빠와 아버지가 있었지만 그 사람이 길에서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가족들은 불을 끄고 숨죽이며 그가 지나가기를 바랐다. 우리 가족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그는 저 멀리서부터 아지매 아지매하고 엄마를 불렀다. 대답이 없으면 가게 문을 발로 차고 시끄럽게 고함을 질러 댔다. 엄마는 마지못해 나가서 늦었으니 어서 집으로 가서 자라고 일렀다. 그는 무조건 술을 주면 가겠다고 했다. 술에 취한 사람에게 술을 줄 리 없었다. 불려 간 엄마가 들어오지 않으면 아버지가 나가서 타이르지만 소용없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 시절이었으니 신고도 못 하고 아는 처지에 당하고만 지냈었다.

 

30대 후반이었던 그는 막무가내였다. 매일이다시피 고주망태가 되어 외상으로 술을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노모가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집으로 가라고 일렀다. 아버지가 심한 말을 못 하는 걸 알고 시비를 걸었다. 한밤중에 나타나 사정없이 발로 문을 차고 가게 창문을 깨트려 놓고는 유리창값을 갚지도 않았다. 나는 유리창 깨어지는 소리에 무서워 이불 안에서 벌벌 떨었다. 그는 가끔 칼을 가지고 다니며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협박도 했다. 그가 길에 보이면 사람들은 도망을 치곤 했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위해 가족회의가 열렸다. 그가 맨정신으로 있을 아침에 엄마가 찾아가기로 했다. 아버지는 혹여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봐 나를 같이 보냈다. 전날 밤 안 들어왔는지 그는 집에 없었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이 집 저 집을 찾아다니며 동네에서 젓을 담그는 사람이었다.

 

그의 집에는 노모와 형수만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죄지은 것처럼 엄마에게 거듭 미안하다고 했다. 형수는 외상값 일부를 갚아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엄마는 그 집 형편을 보고 외상값 받을 것을 포기한 눈치였다. 그 이후에도 몇 년간 시달렸다. 마을에 나타나지 않을 때면 평화가 찾아왔다. 그가 보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가게로 찾아왔다. 멀쩡한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외상값은 물론이고 노름빚까지 남긴 채 남은 가족들에게도 고통을 주었다. 그러다 그는 끝내 술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무슨 사연으로 인생을 그렇게 험하게 살다가 갔는지 알 수 없다.

혹여 술의 힘을 빌려 인생의 답답함을 풀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이 잘 풀렸다면 엄마에게 외상값을 시원하게 갚고 아지매, 미안허요한마디는 건네지 않았을까 싶다. 외상값보다는 술에 취하면 지나가다 행패 부린 것이 우리 가족에게는 더 괴로움이었지만 말이다. 직장도 없이 술과 도박으로 인생을 살다 간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자녀들이 바르게 성장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외상 없는 인생을 살기를 바랐다. 밤마다 외상 장부를 정리하던 아버지와 엄마는 외상은 소도 잡아먹는다라는 속담을 자녀들에게 들려주며 돈을 함부로 써선 절대로 안 된다고 주의를 시켰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현대판 외상 장부나 다름없는 신용카드를 편리하다는 이유로 사용했다. 카드는 현금을 인출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한 반면 소비를 부추겼다.

어느덧 엄마 일을 돕던 어린 소녀는 60이 되었고 직장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신용카드 사용을 줄이고 이젠 연금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좋은 습관은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했던 아버지 말씀처럼 카드 지출을 줄이기로 했다. 확연히 지출이 줄어들었음을 핸드폰 문자로 확인한다. 카드 명세서가 청구되는 날은 지출을 더 줄여야 함을 인식하게 된다.

 

엄마는 손님들과 끝없이 실랑이하고 모진 소리를 듣고도 자식들을 위해 한평생 일해 오셨다. 엄마 인생을 뒤돌아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가게 물건을 사 오기 위해 새벽 시장나갔다. 바리바리 물건을 잔뜩 사서 다섯 형제가 자고 있을 때 집에 도착했다. 아침밥을 지어 차려 주고는 가게 일로 제때 끼니도 못 챙겨 먹었다. 저녁때가 되어야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엄마는 요즘 팔다리가 아프다며 병원을 드나들고 있다. 왜소한 몸을 이끌고 정신력 하나로 평생을 버티어 왔다. 당신들이 살았던 그 삶을 자식들이 따라가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가 살았던 삶을 흉내 내기도 벅차다.

 

부모가 살았던 인생을 대물림받았듯이 나 또한 두 아이에게 나의 삶을 대물림하려 한다.


( 동인지 『산문로 7번가 』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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