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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집    
글쓴이 : 문경자    23-07-23 22:24    조회 : 2,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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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사는 도심이 답답하여 가끔 시골집에 내려가 쉬고 올 때가 있었다. 시부모가 떠나고 난 후에 집을 비워 두었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볼품없이 변하였다. 손때 묻은 곳곳에 벌레들의 흔적들 탓에 더 심란했다. 안방의 구들장도 기울고 부엌의 아궁이가 무너져 무쇠 솥이 주저앉았다. 주위에는 거미가 줄을 쳐서 잡은 먹이들이 볼품없는 몸으로 걸려있었다. 그들의 왕국처럼 보였다. 대가족을 이루며 삼시 세끼 밥을 지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안방도 잠을 자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내가 시집와서 쓰던 작은방은 그대로 잘 보존이 되었다. 빗자루로 쓸고 몇 번 걸레로 닦았다. 방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니 잠을 자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기둥에는 벌들이 구멍을 뚫어 상처를 내기도 한다. 머리 위로 벌들이 윙윙거렸다. 우선 몸을 낮추고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벌소리는 무섭기도 하지만 날아다니는 모습은 신기했다. 시골에서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벌집을 보면서 자랐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집근처에서 벌에게 쏘였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노랗게 핀 호박꽃 속에 들어가 꿀을 따는 벌을 보았다. 그 속에 빠져든 벌을 잡으려고 꽃잎을 오므린 다음 꽃의 줄기를 땄다. 벌은 그 안에서 쉬지 않고 윙윙거리다가 벌침을 밖으로 내어 손가락을 쏘았다. 아야! 하고 나는 호박꽃을 놓쳤다. 꽃 속에 있던 벌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아픈 손가락이 발갛게 부었다. 어머니는 벌 독이 무섭다며 우리깅자 죽는다고 내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질렀다. 어머니 손가락도 벌벌 떨었다. 비상약이 없던 때라 급할 때 쓰이는 민간요법이었다. 어머니의 정성이 통했는지 아픔이 거의 사라졌다.

어른이 되어도 벌을 보면 겁부터 났다. 풀을 베다가 벌집까지 날려버리면 벌떼에 생명을 위협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실제로 주위에서 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조상의 묘에 난 풀을 베다가 벌집을 잘못 건드려 사고를 당한 사람들도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형제들이 모여 벌초를 하는 날은 벌 퇴치제를 준비하고 만일에 벌집을 건드려 날아오면 무조건 도망을 쳐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웃동네에서 사과 따는 일을 하다가 목부위를 벌에게 쏘여 응급실을 가기도 전에 젊은 남자가 운명을 달리하였다. 벌은 벌벌 떠는 사람들에게 더 공격을 하여 자기들의 활동영역을 펼치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달콤한 꿀을 선물해주니 고맙다. 작은 집 할머니는 벌통을 하나 마련했다. 수시로 벌통에 설탕을 넣어 주었다. 꽃이 없으니 그렇게 한다고 했다. 햇빛이 따듯한 날 마루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꿀을 따서 물에 타주었다. “할머니 이거 설탕 물이제.”하고는 먹지 않았다. 아까운 것을 먹지 않는다며 할머니는 다 마시고 안방에 들어가 꿀 잠을 잤다. 할머니가 벌을 손수 키웠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었다. 그때 꿀물이 아직도 효과가 있는지 구순이 넘은 할머니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어쩌다가 여름철에 소를 몰고 풀밭을 지나가다가 소가 발로 벌집을 툭 치거나 하면 어느새 벌들이 내 주위에서 빙빙 윙윙 원을 그렸다. 소 고삐를 놓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을 쳐도 꼭 땡벌 한 마리는 따라붙었다. 어찌나 놀라고 무서운지 자다가 일어나곤 했다. 우리 아들이 네 살 때였다. 서울 근교 가까운 산에서 놀다가 벌집을 살짝 건드려 이마에 쏘였다. 머리통이 얼마나 많이 부었는지 무서울 정도였다. 뇌에 손상이 가면 큰일인데 걱정이 되었다. 가까운 약국에 갔다. 여자 약사는 치명적인 곳을 공략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좋은 약이 있어 먹고 바르고 해서 나았지만 아찔한 경험을 했다. 무서운 것은 벌이나 사람이나 똑같다.

       시골 집 곳곳에 벌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 마당에 올라온 풀을 뽑을 때도 조심스러웠다. 한 무더기 풀을 힘껏 잡아서 뽑았다. 그 순간 벌들이 윙윙거리며 나에게 돌진을 하였다. 풀뿌리까지 들고 너무 놀라 도망도 가지못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놀란 벌들도 하늘 높이 날아 도망을 쳤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집 뒤 란에 있는 낡은 멍석에도 벌집이 달려있고, 두지 귀퉁이에도 달렸다. 곳곳에 크고 작은 것들이 있어 조심을 해야 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시어머니가 쓰시던 오래된 찬장이 있었다. 그 속에는 예쁜 꽃무늬 접시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것들도 어머니가 계시지 않아 다 정리를 해서 비워 둔 상태였다. 닫혀 있던 찬장문이 조금 열려 있어 문 틈으로 벌이 들락거리는 것을 보았다. 한 마리의 벌이 소리를 냈다. 시동생이 찬장 문을 살짝 열었다. 그 안에서 벌떼들이 윙윙 소리를 냈다. 무서워 벌이 다 날아 가기를 기다렸다. 조용한 틈을 타서 그 안을 살폈다. 시동생은 큰 벌집을 발견하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함성을 질렀다. 찬장 안에다 머리통 보다 더 큰 벌집을 지어 놓았다. 아직까지 벌집을 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좀더 꿀이 채워지면 따야 한다고 했다. 벌은 추울 때는 집을 떠나 산다고 벌박사처럼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시동생은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듯이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우리는 그냥 지켜보자고 했다. 그날 밤은 벌에 대한 이야기로 달콤한 밤을 지냈다. 빈집은 사방이 트여 있어 언제나 사람들이 들락거릴 수가 있었다. 인심 좋은 동네라 집을 비워 두어도 마당에 난 풀도 뽑아주고 마루도 물걸레질 해주니 안심하고 그냥 지내는 중이었다. 마루에 고추를 말리느라 어쩌다가 벌레가 기어 다녀도 참았다. 마룻바닥이 꺼뭇하고 매운 냄새를 맡은 마루의 얼굴은 얼얼해 보였다.

그 이듬해 음력 시월에 시제를 지내기 위해 고향 친척집으로 갔다. 마당에 펴 놓은 멍석에 둘러 앉아 서로 안부를 물으며 각자 어릴 적 고향에 살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야기의 주제는 벌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많았다. 벌집을 건드려서 눈탱이 밤탱이 되고,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구별을 못할 정도로 쏘였고,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벌 두 마리가 달려들어 일도 제대로 못 보고, 입술에 쏘이면 쌍나팔이 되었다며 웃음이 넘쳐났다. 그러던 와중에 벌 한 마리가 날아와 아이들에게 공격을 시도했다. 모두 벌을 잡는다고 집안은 벌집을 만들었다. 결국 벌을 잡지도 못하고 야단법석만 떨었다.

시제를 끝내고 우리 집으로 돌아와 벌집이 잘 있는지 열어보자고 했다. 모두 긴장을 하였다. 제일 관심이 많은 시동생이 문고리를 살짝 잡고 당겼다. 만일에 벌이 나오면 각자 흩어진다. 문을 열었다. 찬장 바닥은 윤이 날 만큼 깨끗하고 벌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는 허탈감에 빠졌다. 누군가가 노리고 있었던 게 분명해, 우리보다 한수 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모두 다 짐작이 가는 데가 있다는 듯 묵묵부답으로 입을 다물었다. 때맞추어 수확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때 땄어야 했는데 모두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루 천장에 세개의 벌집이 있었다. 옆집 아저씨가 사다리를 놓고 떼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빈집이었다. 벌집은 그대로 마당에 던져졌다.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집을 빌려 살았으면 월세 대신 꿀이라도 한 종지 남겨두었으면 하는 욕심이 들었다.

집을 수리한 후에는 벌집도 벌들의 윙윙거림도 들을 수가 없었다. 집안에 벌이 날아 다니며 무서워 온몸이 오싹하여 더위도 순간 잊곤 했다. 또 언제 벌집을 지을지 모르지만 벌들의 윙윙거림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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