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맞춤
고향, 형님네 문밖에 배롱나무가 있었다. 나무에 꽃이 피면 멀리서도 사람들 눈에 띄었다. 형님이 말하길, 수십 년 동안 자란 나무를 어떤 사람한테 거액의 몸값을 받고 팔았단다. 나무가 서 있던 자리가 이빨이 빠진 것처럼 허전했다.
어릴 적이 떠올랐다. 우물가에 배롱 나무가 있었는데 어른들이 말했다.
“나무를 간지럼 태우면 나뭇가지가 겁나게 흔들려야, 너그들도 해봐라!”
“진짜요? 거짓말이죠?”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뒤 나무에 빙 둘러서서 간지럼을 태웠다. 어른이 말을 해서 그런지 나무가 간지럼을 타는 듯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그 후 간지럼나무라 불렀다.
형님네 큰 나무는 없어졌지만 뿌리가 번졌는지 어린나무 몇 그루가 주변에 자라고 있었다. 나무를 키울 요량으로 3 년쯤 자랐다는 나무 한 그루를 얻었다. 한여름에 나뭇가지를 듬성듬성 쳐내고 뿌리에 흙이 떨어지지 않도록 마대자루를 씌우고 끈으로 묶었다. 신줏단지 모시듯 차에 싣고 와서 옥상 화단에 심었다. 한동안 몸살을 하더니 얼마 후 꽃이 피었다.
다음 해 봄, 나무가 어려 추위에 약할 것 같아서 아늑한 자리로 나무를 다시 옮겨 심었다. 그해도 꽃이 만발했다.
꽃이 진 뒤 형님 집에서 자라던 나무를 떠올렸다. 형님 집에 있던 나무처럼 나무가 집 밖에서 자라면 동네가 환할 것 같았다. 가을에 옥상에서 자라던 나무를 1 층 현관문 옆으로 옮겼다.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봄이 왔다.
집 앞에 매실나무, 보리수나무, 살구나무는 잎이 나서 자라는데, 간지럼나무는 여름이 다가오도록 깊은 잠에 빠졌는지 감감무소식이다. 겨울에 추워서 나무가 얼어 죽었을까, 나무를 3 번이나 옮겨 심어서 몸살이 났을까, 나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서 나무를 캐올 때는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간 게 나무도 출세한 거요’라고, 형님한테 농담을 건넸고, 양지바른 곳에 나무를 옮겨 심을 때는 따뜻하게 자라라는 선한 마음이었다. 사람 마음은 수시로 변하고 종잡을 수 없는가. 나무를 밖으로 옮길 때는 남이 듣기 좋게 명분을 내세웠다.
“귀한 몸이 옥상에서 살겄냐, 땅에서 자라야지.”
나무가 땅에서 자라야 한다는 구실로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휴가철에 형님 집에 갔을 때 추억이 떠올랐으므로. 그 당시 간지럼나무에 분홍 꽃이 만발했고 바람이 불어 꽃이 우수수 떨어졌다. 함박눈이 내리듯 꽃잎이 머리 위에, 어깨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나 잡아 봐라’ 하며 나무 근처를 빙글빙글 돌던 모습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형님 집에서 자라던 나무처럼 예쁘게 가꾸고 싶었다.
그런데 가을에 옮겨 심은 나무가 봄이 저물어 가도 싹이 나올 기미가 없었다. 나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고 나무를 바라볼수록 힘이 빠졌다.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봤다. 물기 하나 없이 말라 있었다. 하지만 뿌리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한 가닥의 희망을 품고 가끔 물을 주었다.
5 월 중순쯤 나무의 겉모습이 차차 푸르러지는가 싶더니 얼마 후 좁쌀만 한 새싹 2 개가 보였다. 나무에 눈이 나온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눈이 났잖아, 나무가 살았어!”
나무와 나, 눈 맞춤을 했다.
나무를 오랫동안 바라보는데,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 인류학 연구진이 〈인간진화저널〉 에 발표한 보고서가 떠올랐다. 눈은 사물을 보는 기능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고 의사소통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은 눈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지 않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은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다른 영장류보다 사람 눈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따르면 다른 영장류들의 눈은 갈색 등 짙은 색의 공막을 갖고 있어 눈동자의 움직임을 잘 보여주지 않지만 사람의 눈은 흰색 공막을 갖고 있어 시선이 잘 드러난다. 또 얼굴 피부와 공막, 홍채의 색깔이 대비돼 사람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 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눈이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예가 어머니와 갓난아기의 눈 맞춤이라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보고서에서 보듯,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와 눈 맞춤을 하면서 자란다. 아기는 사랑해 주는 사람을 통해서 세상에서 자신이 귀한 존재로 알고 사랑과 자존감을 키워가듯, 새싹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내 마음이 간지럼 나무에 고스란히 전해진 모양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나무에 새싹이 돋았다. 삶이란, 어찌 보면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은 뒤 행동으로 옮기는 일인가!
한국산문 202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