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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병(工兵) 가고 싶어    
글쓴이 : 봉혜선    23-08-29 14:29    조회 : 2,031

공병(工兵) 가고 싶어

 

봉혜선

 

어린 줄로만 알았던 아들들을 스무 살이 넘기 기다렸다는 듯 데려가는 입영 제도란. 아이를 군대 보내기에 알맞은 계절은 없다. 아들만 둘을 둔 엄마로서 아이들이 군에 갈 때마다 쏟은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큰 아이는 의논 한번 없이 합격했다는 통고만으로 해병대에 다녀왔다. 7년 터울의 막내는 근 1년 동안 온갖 군대에 지원을 해도 군 입대 인원 적체기에 맞물려 나이에서 밀렸다. TV에서 마침 방영되던 군 병영프로그램에서 각 군대의 모습이 저마다의 특성을 강조해서 저 부대는 어떠냐며 물어보곤 했다. 하마터면 해병이가 둘이 나올 뻔했는데 신체검사에서 갑을 받았는데도 10개월 차로 불합격이었다. 프로그램은 입대한 아들을 둔 엄마들 덕인지 계속되었고 내게 맞춰주는 듯 큰 아이 때부터 막내가 입대할 때까지 이어졌다. 연예인들의 숨은 체력이 드러날 때마다 나라면 '저 정도는 하겠는데' '왜 엄살일까' 하며 팔굽혀 펴기니 윗몸 일으키기를 해보기도 했다.

오래 보다 보니 할 수 있을 만한 훈련 앞에서는 의기양양한 마음이 되었다. 불에 뛰어드는 훈련은 할 수 있을 것 같고 수영은 쉬워 보여 익혀둔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쉽다, 어렵다의 기준이 이렇게도 갈리는구나, 반성하게도 했다. 겨울 설원을 헤치며 내려오거나 구덩이를 파고 일곱 명씩 들어가는 답답함을 견디기는 어려워 보였다. 진흙 속에서 밀어내기 같은 데에서는 탈락이나 불합격을 예상했다. 남편도 내가 스스로 챙겨보는 단 하나 프로그램 앞에서 리모컨을 뺏기고는 자신의 체력과 비교하며 과거로 돌아가곤 했다. 어떤 출연자를 대신해 뛰어보거나 시험대 위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보다.

여성 출연자들이 가족도 아이도 두고 입대해 훈련하는 과정이 나왔다. 그러는 사이 으슬으슬 추위가 올 무렵에 막내가 밀린 세월을 뚫고 입대 통지를 받았다. 일찌감치 휴학계를 내고 뒹굴면서도 훨씬 더 자란 어린 아들이 어떻게 기다려 왔는지 잠시 잊고 엄마가 대신 가면 어떨까.” 라고 말해 식구들의 빈축을 샀다. 팔굽혀 펴기 같은 초반 체력 훈련에서 탈락될 걸 뻔히 알면서, 윗몸일으키기는 당장 불합격 될 것을 염려하면서도 그렇게 말한 건 남자들의 훈련에서는 막연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훈련에서 엄살 피우는 여자들의 연약함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남자라면 저 정도는 해내야지 하는 기대 때문이었을까.

막내에 대한 불안도 작용했다. 같이 가서 서로 잘하는 종목에 나서서 입대 합격을 받고 같이 훈련한다면 정말 좋을 텐데. 친구와 동반 입대를 신청했다는 막내에 의하면 동반 입대는 최전방 배치가 기본이라고 했다. 겁도 없네, ‘짜식. 암 것도 모르고 엄마 맘도 모르고. 우정만 힘이 세다 이거냐?’

최전방 경계를 서는 지피(GP)근무에 차출되었다는 막내의 소식을 듣고 TV를 보니 프로그램이 새삼스럽다. 자원한 형과 다른 건 자신은 차출이라며 자랑스러워 하지만 둘이 똑같이 훈련도 없이 바로 대치하는 부대이니 긴장도면에서 같다고 한다. 덜 자란 아이들이 지키는 나라에서 발을 뻗고 자다니. 장갑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고는 큰아들 때 낮추어 둔 집안 온도를 더 내렸다.

그간 그만 나이가 들고, 젊은 아들들이 턱턱 나가떨어지는 걸 보았으면서도 그렇게 군에 가고 싶은 이유는 주변에 가 본 이가 없는 공병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 때문이다. 유사시에 폭파된 다리를 대신할 교량을 30분 내에 만들어 내는 걸 보면서, 그 위로 육중한 탱크가 거침없이 내달리는 장면을 대하면서 공병인의 힘과 협동심과 철두철미한 정확성에 온몸이 반응한다. 순식간에 없던 길을 만들어 내고 또 해체하는 걸 보며 느낀 전율이란. 신경줄이 바짝 선다. 오랜만에 남자가 아닌 것이 원통할 지경이었다.

평소에도 철도 도로 건설 류의 기간산업에 대해 궁금해 했다. 아파트 공사 현장의 굴삭기, 불도저와 덤프 트럭 같은 중장비가 돌아다니며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데 대해서, 또 그런 중장비를 만드는 기계나 시스템에 대해서 관심이 갔다. 용도에 맞는 기계를 만드는 체계랄지 톱니바퀴처럼 적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실체를 확인하는 느낌은 각별했다.

차를 타고 길을 달리면서 누가 무엇으로 이 길을 만들었을까 생각했다. 설계를 떠올리는 이도 있겠고 누구는 땅값을 누구는 또 다른 어떤 것도 있으리라. 한없이 이어진 고속도로 등 때로 군인이 동원되었다는 대규모 작업의 꽃은 단연코 공병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어떤 일을 상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건 공병의 지능적이고 거침없는 가능성이다.

막내 대신 갈 수만 있다면 공병으로! 그러다 골병든다는 등 옆에서 통박을 주는 남편은 내가 자원입대라도 할 것 같았나 보다. 주로 건축 공대 쪽 학생들이 간다는 말에 다시 한 번 더 꺾였지만 군대에 갈 수 있다면 진정한 공병인이 되어보고 싶다. 프로그램을 체험해낸 연예인들의 '보람'을 들으며 탈진해서 나가떨어지는 그들 옆에 몸을 부리고 싶은 열망에 시달렸다. 철조망 아래를 등으로 기거나 화염에 눈물 콧물 쏟거나, 축축한 데를 포복으로 전진하는 훈련만 아니라면 전우애를 북돋아 가며 다리를 만들거나 산을 허무는 일을 해볼 수 있을 텐데. 체력장 때 낙제점에 가까웠던 매달리기나 턱걸이를 좀 더 잘했을걸. 차별이 아닌 차이는 이런 데에서 나뉘는 게 아닌지, 공병인의 우렁찬 구령에는 여자 사관 한 명조차 없다. 나라면 저기 어느 위치에 서 있을 수 있었으련만. 움찔움찔 피가 빨리 돌아가는 몸을 가누기 힘들다.

삽 한 자루로 세상을 만드는 원시적이지만 정직한 노동 앞에서 그간 갖은 핑계를 대며 몸을 사린 나를 돌아본다. 과정을 생략한 결과가 있을 수 없듯이 더 기본으로 돌아가 근본을 챙기는 일에 충실해 보자고 다짐한다. 추운 겨울 한가운데 오도카니 앉아 발밑 단단한 아스팔트를 다시 디뎌본다. 추운 겨울에도 함께 땀을 흘리며 훈련에 임하는 젊은이들. 공병 가고 싶어.

 <<책과 인생, 2023, 202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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