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근처의 스코그쉬르코고르덴(Skogskyrkogården)은 스웨덴의 세계문화유산 중 한 곳이다. 영문으로는 우드랜드(woodland)로 표기하는데 숲 속의 묘지공원이라 할 수 있다. 스코그는 숲이다. 쉬르코는 교회라는 뜻에서 묘지로 번역한 것이다. 묘지가 세계문화유산인 것이 궁금했다. 세계유산은 모든 인류의 관심사로 간주될 만큼 가치가 있는 문화 또는 천연기념물이어야 한다. 독특한 방식으로 지구와 인간의 역사를 증언하는 장소, 지역, 환경 또는 대상이다.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보호 관리되는 것도 유네스코의 선정기준이다. 스코그쉬르코고르덴은 노르딕풍경과 독특한 건축으로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고 전 세계 묘지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도시의 묘지문제는 18~19세기 흑사병과 콜레라 같은 전염병에 의한 사망의 증가로 빠르게 악화되었다. 1815년 스웨덴에서는 마을내부에서 매장을 금하였다. 20세기 초 시민의견을 반영한 공공묘지를 공모하였을 때 건축가 군나르 아스플룬드(Gunnar Asplund)가 시민 공모에 당선되었다. 1917년부터 1940년까지 23년간에 걸쳐 대학 동기생인 시구르드 레베렌츠(Sigurd Lewerenz)와 함께 스코그쉬르코고르덴이 완성되었다. 100년 전 그들이 설계한 방문객 센터는 지금도 건재한 데 오후 4시까지만 운영하므로 먼저 들러 안내도와 자료들을 찾기로 했다. 센터에서는 차와 음식을 비롯하여 죽음과 관련한 동화책들과 공원묘역에 관한 자료집 포스터 등이 비치되어 있어 작은 뮤지엄에 온 듯했다. 나는 ‘부활의 교회’가 있는 서쪽 입구로부터 진입하였다. 거꾸로 되짚어가는 셈이지만 간혹 순서가 바뀌면 다른 영감을 얻기도 한다. 12월 동지 즈음 겨울의 공원모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빛의 성녀 ‘루치아의 밤’에는 비석마다 촛불이 밝혀진다고 했다. 스칸디나비아지역의 명절로 겨울을 쫓아내고 해를 다시 불러들이는 의미라고 한다. 넓은 묘역의 길에도 촛불을 켜둔다고 한다.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줄지은 촛불들이 볼 만했을 것 같다. 긴 겨울밤, 산 자들이 죽은 이들과 함께 마치 제사를 지내듯 머문다. 한국에서도 11월은 죽은 영혼을 위한 ‘위령의 달’이다. 하늘 문이 열리는 달이다. 연옥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데 살아있는 자들의 기도가 이때 절실하다 했지 않은가. ‘침묵의 건축가’로 알려진 레베렌츠를 회상하며 걷는다. 고집쟁이라고 불릴 정도였던 레베렌츠는 묘지위원회로부터 해임되고 말았지만, ‘성서적 풍경’이라고 회자되는 묘역의 공간 배치는 그의 스케치대로 만들어졌다. 걸출한 건축가를 떠올리며 예배와 화장을 위한 중심 공간에 당도하고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여행 중 보았던 8월의 노르딕의 풍경은 탁 트인 중앙 공간에서 한 폭의 풍경화였다. 인디고 블루 색을 띤 하늘이 청정했다. 뛰어오르면 닿을 듯 내려앉은 하얀 뭉게구름과 새털구름이 아름다웠다. 위도가 높아서인가. 멋진 구름들이 땅으로 내려앉으려는가 싶었다. 혹시 대기권이라는 게 마치 대기권을 감싸는 자기장의 분포도처럼 북극점에 가까워지면 얇아지는가? 그럴리는 없으리라. 낮시간이 긴 한여름이라 모든 구름이 태양빛을 받아 선명하다. 풍경만으로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충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묘지에서 산 이와 죽은 이 모두가 위로받고 기쁨이 넘쳐 나기 위해서는 건축가의 노고가 컸다. 흰 구름과 푸른 하늘을 은쟁반에 담아낸 것 같은 연못을 건너, 시선이 닿을 만한 거리에 부드럽고 도톰한 인공 언덕의 선이 완만했다. 풍경과 미풍으로 고인과 이별을 나누는 데도 슬프게 느껴지지 않을 축복의 공간이었다. 공간에 대한 비움의 미학이랄까? 채움을 목적으로 하던 서양의 건축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 치밀한 의도로 아름다웠다. 아~ 우리의 조선왕릉은 부드러운 곡선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새삼 전통적인 생활 속에 녹아있는 우리의 차경(借景)의 미학에 자부심이 커졌다. 정문 출입구의 초대형 십자가만이 이곳이 묘역임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성서의 12 사도를 말하는가. 언덕의 꼭대기에는 12그루의 느릅나무가 장방형으로 우뚝했다. 너른 공간 반대편에서도 사색(思索)의 숲(Almhojden)을 통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계단 폭은 오를수록 낮아져 정상에 이르렀을 때는 힘든 생각이 안 들도록 설계되었다. 7개의 우물을 따라 애도의 길은 1km를 곧게 뻗은 곳에서 한 개의 점이 되었다. 100여 년 이상 장대한 키를 높인 나무가 나를 부활의 교회로 이끌었다. 1세기를 내다본 건축가의 의도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예배를 위한 교회와 화장장의 실용적인 모습은 세계적으로 비슷해지고 있다. 햇빛이 그리운 북유럽 사람에게는 발틱해의 바닷바람 속에 책을 읽거나 운동하기에도 그만이다. 스웨덴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도 이곳에 묻히기를 열망했고 이곳에 묻혀있다. 죽음에 대해 두렵고 음산한 공간이 아닌 편안한 쉼의 장소요 기쁨이 넘쳐났다. 죽은 이와 산 자가 교감할 수 있는 공간배치를 지켜낸 레베렌츠가 존경받는 이유이다. 죽음이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슬퍼하더라도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인이 우리에게 삶에서 보여준 사랑도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슬픔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 시간을 내어 아이들에게 우리가 다시 행복할 수 있고 또 행복할 것이라고 안심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코그쉬르코고르덴의 홍보자료 문구가 마음에 와닿았다. 코끼리는 죽을 때에 찾는 곳이 있어 그곳에는 상아가 남는다던가. 평범한 인간이 물질로 남길만한 것이 얼마나 될까. 세상에 남은 이들과 계속 기억으로 연결되어 있음이 의미를 갖는다. 황실의 묘지 부족으로 인한 시대였더라도 영화 장면 속 모차르트의 주검처럼 구덩이에 던져져서는 안 될 일이지 않은가. 자연으로 회귀하면서도 묻힐 곳은 중요하다. 눈을 감고도 스코그쉬르코고르덴을 떠올릴 수 있다. 기억에 남는 풍경과 몽환적 분위기가 각인되었다. 스스로 만든 기억에 갇히는 게 인간의 한계일지 모른다. 묻히는 장소에 몰두해 있는 나는 방향을 잃었는지 모른다. 거꾸로 세상에 남은 이들이 눈을 감고도 떠올리는 때 행복한 일이 아닐까? 눈을 감고도 또렷하게 저세상까지 담아 가고픈 이들은 왜 안 보일까?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처럼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 ‘불타 본 적 있는 연탄재’로 살았어야 했다. 사는 게 쉽지 않다지만 죽기는 살기보다 어려운 일인가 보다. 그래도 죽는 순간에 이곳이 떠오르기를 희망해 본다. 정신이 멀쩡해야 가능한 일이긴 하다. 죽을 준비가 먼저인 것을 잊고 새 아침마다 잠만 깨면 살 궁리를 하려 든다. 오늘도 또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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