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가 용이 되려고(?)
추어탕 집 수족관은 유리가 사방으로 둘러 있고 윗부분은 플라스틱으로 막혀있다. 물속에서 미꾸라지 수십 마리가 서로 엉겨 붙었다. 잠시 후 용솟음치듯이 무리 지어 물 위로 솟구쳤다가 하강하면서 반복적으로 춤을 추듯 했다. 미꾸라지들이 움직일 때마다 물이 출렁이자 한두 마리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갔다. 추락한 미꾸라지는 혼자 힘없이 돌아다니거나 어항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추어탕을 시켜놓고 미꾸라지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친구가 말했다.
“미꾸라지가 죽은 거 아녀?”
“지네들끼리 놀다가 지쳐서 그러겄지.”
친구와 나, 추억을 떠올리며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우리 어렸을 적 말이여, 가을걷이 끝나면 친구들끼리 삽을 들고 논으로 달려갔지. 논바닥을 여기저기 파고 다니면 미꾸라지가 나왔어.”
“맞어, 누군가 배가 누런 놈을 잡으면 서로 빼앗으려고 난리 법석을 떨었어. 같이 먹을 건데 말이여. 미꾸라지가 손가락 두 개 합친 만큼 통통하고 알이 꽉 차 있었지.”
“모닥불에 구워 먹으면 겁나게 맛있었어.”
“재가 묻은 손으로 미꾸라지 살점을 때어서 서로 입에 넣어 주기기도 하고. 친구 얼굴에 ‘숯 깜장’을 묻히고 거지 같다며 놀렸어.”
“논, 물꼬 자리에 미꾸라지가 우글우글했는디….”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구먼.”
“어디 그뿐인가! 큰비가 지나가고 난 뒤, 마당에는 미꾸라지 네댓 마리가 흙바닥에서 뒹굴고 초가지붕 위에서도 미꾸라지가 떨어졌단게.”
“그게 아녀, 비가 오면 흙탕물이 일잖아. 마을 도랑에 살던 미꾸라지가 마당에 흐르는 작은 물길을 타고 올라 온 겨.”
“아니란게, 두 눈으로 분명히 봤단게!”
어릴 적 기억이 또렷한데 친구가 딴지를 걸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찍어놨어야 친구 코를 납작하게 만들 텐데, 내 말이 맞는다고 우기자니 친구 간의 우정에 금이 갈 테고! 나는 기억이 생생해서 ‘미꾸라지 용 됐다’는 말의 의미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미꾸라지가 빗물을 타고 올라가다가 마당으로 떨어졌거나, ‘마을 도랑에 살던 미꾸라지가 마당에 흐르는 작은 물길을 타고 올라왔다’ 치더라도 미꾸라지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 온 건 사실이다. 미꾸라지는 몹시 거칠고 세차게 쏟아지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야겠다는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속담에 ‘개천에서 용 나고 미꾸라지가 용 된다’는 말이 있고,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방죽을 헤집고 다니며 물을 흐린다’는 말도 있는가 하면, 『왕심재전집』 중 「추선설」에는 용과 같은 미꾸라지도 나온다.
추선설에 따르면, 도를 얻으려는 사람이 생선가게에서 드렁허리가 잔뜩 들어있는 대야를 보았다. 드렁허리들은 서로 얽히고 눌려서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그는 미꾸라지 한 마리를 보았다. 미꾸라지는 드렁허리들 속에서 나와 위로, 혹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혹은 앞으로 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 마치 신묘한 용과 같았다. 그러자 드렁허리들이 몸을 움직이고 기운이 통해서 삶의 의지를 회복하게 되었다.
또, 미꾸라지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게 된다’는 꿈 해몽도 있다.
수족관의 미꾸라지들도 꿈을 꾸는가. 미꾸라지들이 서로 뭉쳐서 벽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몸부림친다.
미꾸라지가 용이 되는 꿈!
한국산문 202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