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여름휴가 중이었다. 연일 30도 이상 오르내리는 날씨에 옥상 텃밭에 물을 주라고 딸한테 전화했다.
“숙아, 퇴근 후 텃밭에 물 좀 주거라잉!”
“매일 물을 안 줘도 되잖아요?”
“한여름 뙤약볕이 얼마나 뜨거운디, 물 안 주면 다 타버려야. 아빠는 아침저녁으로 물을 줬어!”
“예, 물 줄게요.”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 딸한테 전화했다.
“밭에 물 주었냐?”
“주었어요.”
딸이 물을 주었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나는 봄이 오면 밭에 씨를 뿌린다. 새싹이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면 기쁨이 배가 된다. 해마다 텃밭 한쪽에 꽃을 심고, 다른 쪽에는 상추, 아욱, 가지, 고추, 토마토, 오이, 양배추, 무, 호박, 감자, 수박을 심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텃밭이 놀이터다. 서리가 내리기 전 늙은 호박을 수확하면 호박죽을 쒀서 이웃과 나눠 먹는 상상을 한다. 겨울이 길고 지루할 때는 괜히 서랍에 넣어둔 꽃씨나 상추씨 봉지를 열어보기도 하고. 화단에 빈 곳이 보이면 어떤 나무를 심을까, 미리 점찍어 놓기도 한다. 봄에 흰 장미 한 그루 사다가 심을 작정이다. 그리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텃밭으로 달려가서 물을 주고 꽃향기를 맡아가며 하루를 열면 근사하지 않은가. 오래전부터 길들여진 습관이다. 하지만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접한 뒤 내가 너무 많이 가졌다는 생각에 몹시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차! 이때서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난초잎이 축 늘어져 있었다. 우물물을 퍼다 주고 정성을 들였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법정 스님은 밖에 볼일이 있어 분盆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되돌아와서 들여놓고 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고 말했다. 며칠 후, 친구한테 난을 주었는데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단다.
‘습관’이라는 힘이 센 놈, 힘을 빼려면 놓아주는 힘이 더 크게 작동하는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일은 지식이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지만, 뭔가를 채우기는 쉬워도 버리기는 아까운 게 사람 마음인가!
겨울이 꼬리를 내리고 봄기운이 돌 때 흰 장미 한 그루 사다가 심었다. 화단에 영산홍, 백일홍, 과꽃, 봉숭아, 장미가 꽃 잔치를 벌였다. 봄은 마치 여인네가 얼굴에 분을 발라 예쁘게 꾸미듯 형형색색의 꽃으로 저마다 맵시 자랑이 한창이다. 멋에 빠져 흠뻑 젖어 있을 때 어느새 여름으로 건너왔다. 그사이 사과나무, 대추나무, 포도나무, 무화과나무가 사방으로 뻗어서 가지가 축 늘어졌다. 가지치기하자니 나무에 매달린 열매가 아깝고 그냥 두자니 숨이 막힐 정도다.
나무들을 바라보는데,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가 떠올랐다.
‘마음을 비워야 할까, 채워야 할까’ 즉, 나뭇가지를 쳐서 열매를 버릴까, 그냥 놔둘까 두 갈래 길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들녘의 밭들은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비가 안 와서 가물 면 가문대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데, 나는 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바라보고 마음을 정하지 못한 체 갈대처럼 흔들리고, 텃밭에 매일 물을 줘야 근심 걱정이 사라질까?
언제쯤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목성들의 글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