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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보의 터널    
글쓴이 : 김영도    24-04-16 20:06    조회 : 2,131
   초보의 터널 -한산2022. 10월.hwp (160.0K) [0] DATE : 2024-04-16 20:06:32

초보의 터널

 

김영도

 

어휴, 터널에 들어오니까 아무것도 안 보여.”

아들의 불안한 목소리와 함께 차가 휘청거렸다. 세 식구가 함께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갓 면허를 딴 아들은 초보운전이라는 글씨를 커다랗게 붙이고 운전 연습 중이다. 고속도로를 달려 봐야 실력이 빨리 는다는 남편의 주장으로 포항 호미곶으로 나들이 가기로 했다.

속도계를 쳐다보지 말고 앞을 잘 보고 앞차의 속도에 맞춰서 따라가. 운전은 흐름이야.”

차로를 바꿀 때는 미리 깜빡이를 넣고 뒤 차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고 천천히 들어가야 해. 갑자기 훅 들어가지 말고.”

남편이 아들 옆에 앉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다 맞는 말이지만 아들의 귀에는 벌이 윙윙대는 소리로만 들릴 것이다. 시간이 지나야 능숙해질 테니 조급증을 내서는 안 될 일이다. 말대로만 될 것 같으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어나는 사고 소식은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한껏 힘이 들어간 양손으로 핸들을 꽉 움켜쥔 아들은 영락없이 왕초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와촌터널이 시커먼 입을 벌리고 나타났다.

몇 해 전 겪었던 짧지만 짙었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들은 부산에 있는 국립부산해사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바다라고는 보이지 않는 움푹 팬 대구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였다. 중학교 3학년 가을 뜬금없이 해사고등학교 진학을 원했다. 결정의 계기는 단순했다. 학교 홍보 안내지에 있는 하얀 제복이 근사했고, 무엇보다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것이 결정적이라고 했다.

아들은 천성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이 적게 분비되는 것 같았다. 유치원에 다닐 때도 여느 남자애들처럼 칼을 들고 놀거나, 심한 장난을 치는 법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과격한 행동을 하거나 거칠게 노는 아이들하고는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았다.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본 이후로 아들에게 군대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 두려움이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될 줄 짐작도 못했다.

친정, 시댁을 통틀어도 바다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바다는 휴가 때 놀러 가는 곳, 첫사랑이라는 말과 함께 아련한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곳이었다. 단지 풍경으로 머무는 곳이지 삶과 관련이 없는 낯선 곳이었다. 더구나 배를 탄다는 것은 해적에게 나포되는 상선들, 전복되는 어선의 이야기로 뉴스에서만 접했기 때문에 불안하기만 했다.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고 스스로 내린 결정을 내 불안으로 무조건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사고등학교는 마이스터교라서 우선 선발했다. 1.2차 시험과 면접을 거쳐 전국적으로 신입생을 뽑았다. 떨어지면 일반계 고등학교를 지원할 수 있어서 내심 떨어지기를 바랐다.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함께 원서를 쓰고 준비했으니, 불합격해도 개방적이고 세련된 엄마의 모습은 유지하면서 아들과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얄팍한 계산이 있었다.

언젠가는 곁에서 떨어져 나가 자기 삶을 살아가겠지만 열여섯 살이라는 나이는 너무 어렸다. 품에서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애달픈 내 마음과 무관하게 아들은 당당히 합격했다. 월계관을 쓴 듯이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불합격을 바랐던 어리석음에 낯이 붉어졌다. 인생의 첫 번째 문 앞에서 그 문이 열리지 않았다면 상처를 입고, 깊은 좌절의 늪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품고 있던 손난로를 빼앗긴 서늘함이 마음에 남았다.

아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입학했다. 학교는 전원 기숙사 생활이 원칙이었고, 일반 학교보다 엄격한 교칙을 자랑하고 있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운동장을 돌면서 아침을 열고, 당직 선배의 취침 점호로 하루를 마친다고 했다. 어린 아들을 멀리 떼어 놓고 허전함과 그리움에 눈물 바람을 하던 나와 달리 아들은 잘 적응하는 듯했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며 즐겁게 지내는 것 같았다.

2학년 봄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잘 적응하고 있으리라고 믿었던 우리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왔다. 교내에서 흡연하다가 걸려서 한 달간 기숙사 퇴소 조처가 내려졌다. 마이스터교답게 원스트라이크 아웃이었다. 남편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가는 사이 아들은 휴대폰을 끄고 잠적해버렸다. 룸메이트에게 더는 나 찾지 마라고 남긴 문자가 마지막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행여 나쁜 생각을 하면 어쩌지. 아들을 이대로 못 찾으면 어떡하나. 불안감에 머리가 뱅뱅 돌고 속이 울렁거렸다.

실종 신고를 하고 부산 바닥을 헤매고 다녔다. 부산에는 전혀 연고가 없고 아들도 기숙사 생활을 해서 갈 만한 곳이 없었다. 휴대폰이 켜지기만을 바라고 계속해서 문자를 남기고 음성을 남겼다. 눈앞이 아득하고 땅이 출렁거려 발을 떼기 어려웠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어릴 때 들었던 금달래가 생각났다.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머리에 꽃을 꽂고 베개를 안고 길거리를 헤매고 다녔다는 전설의 그 여자. 지금, 이 순간 금달래가 나였다. 그녀가 불렀다는 자장가가 환청으로 들리는 순간 기적처럼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미안해. 나 죽고 싶었어. 정말 미안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열일곱 살 어린 아들이 토해내는 울음은 전화기를 타고 벌렁거리는 내 심장을 갈기갈기 찢었다. 새끼를 빼앗긴 어미 원숭이의 끊어진 창자의 아픔을 알았다. 그게 뭐라고. 담배 좀 피울 수 있고, 기숙사에서 쫓겨날 수도 있지. 우리한테는 별일이 아니었지만, 아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돌덩이였을 것이다. 부모 속을 썩이기는커녕 반찬 투정 한번 없이 자란 아들이었다.

어둠 속에서 아들이 걸어왔다. 축 늘어뜨린 어깨가 떨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옮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 평생에 가장 길었던 두 시간을 보내고 찾은 아들은 작고 여렸다. 눈물범벅이 된 아들을 부둥켜안았다. “괜찮아. 괜찮아.”라는 말만 계속 되뇌었다. 거센 비바람을 우산도 없이 맨몸으로 맞은 우리는 흠뻑 젖었다.

짧았지만 어둡고 두려웠던 아들의 터널은 나와 함께 지낼 한 달짜리 하숙방을 얻는 것으로 끝이 났다. 덕분에 나도 하숙집 밥을 먹으며 태종대 앞 바닷가에서 한 달간 아들과 함께하는 호사를 누렸다. 첫 번째 터널치고는 꽤 괜찮은 마무리였다.

3학년 2학기에 아들은 실습생이 되어 배를 탔다. 실습비 30만 원을 받으면서 기관사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내 삶에 바다가 들어왔다. 아들이 떠 있는 바다는 더 이상 한 폭의 그림이 아니었다. 그리움과 걱정이 뒤섞인 바다는 고요하지 않았다. 무심코 흘려들었던 해상 날씨에 민감해졌고, 태풍 소식에 애를 태우는 시간이 잦아졌다. 밀물과 함께 그리움이 몰려왔고, 썰물과 함께 가슴이 텅 비었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 사진을 아들이 보내왔다. 한 점의 불빛도 없는 난바다에서 파도와 함께 출렁이는 아들의 밤하늘이 내 시간을 메꿨다.

10개월의 실습을 마치고 집에 온 아들의 가방에는 기름때에 찌든 스즈끼와 실습비를 모아서 산 내 선물이 들어있었다. 기름때는 빠지지도 않고 다음 배를 탈 때 새것을 주니 버리라는 아들의 말에도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망망대해에서 흔들린 열여덟의 흔적을 어미로서는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실습을 마치고 해운회사의 정직원이 된 아들은 두 해째 배를 타고 있다. 일 년에 겨우 두 달 정도의 휴가로 땅을 밟고 나머지는 배에서 인생 초보의 길을 겪고 있다. 일머리도 없으면서 게으른 실기사에게 분노하면서. 그동안 번 돈을 다 가지고 사라져버린 부인 때문에 다시 배를 탄 늙은 기관장을 안타까워하면서. 남의 나라에 와서 기름밥을 먹고 있는 미얀마 오일러를 측은해하면서. 인생의 바다가 잠잠할 리 없겠지마는 감당하기 힘든 해일이나 태풍과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미의 욕심일 것이다.

어느새 아빠보다 넓어진 아들의 듬직한 어깨를 바라보는 데 와촌터널을 지나고 눈부시게 밝은 도로가 다시 펼쳐졌다. 아들의 얼굴도 밝아졌다. 우리 앞에 잘 닦인 고속도로만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터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의 터널을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않고 핸들을 놓치지 않는다면 무사히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확 트인 고속도로처럼 밝은 미래가 아들 앞에 열리기를 빌어본다.

 

 

 

한국산문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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