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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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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박    
글쓴이 : 노정애    24-06-09 10:16    조회 : 3,021

                           수 박

 

                                                 노정애

 

 “전화번호가 그대로네. 잘 지내? 이사했다더니 어디야?”

 너무 오랜만에 듣는 다정한 목소리라 당황스럽다. 작은아이 첫돌 지나고 이사했는데 12살이 되었으니 10년도 넘었다. 주인집 S엄마다.

 “잘 지내시죠. 여기 월계동인데요. 다들 어떻게 지내세요?”

 근처라며 우리 집에 오겠다고 한다. 집주소를 알려주고 기다리며 왜 일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부산 출신의 내가 신접살림을 차린 곳은 서울 장충동이었다. 가까이 시댁이 있고 전셋집을 얻은 것도 시어머니였다. 큰 집들 사이에 끼어있는 기억자의 집은 두 가구만 거주하는 아담한 단독주택이었다. 주인집은 친정어머니와 건축업을 하는 가장, 안 주인과 아들 S가 사는 단란한 가족이었다. 낯선 환경에 서툴기만 했던 새댁인 내게 그들은 친절한 이웃이었다. 늘 밝고 활동적인 주인 아줌마는 친척 언니처럼 살갑게 대해줘서 더 가까이 지냈다.

 다음해 주인집에서 둘째 아들이 태어나고 몇 달 후 나도 딸을 낳았다. 같이 아이를 키우니 공유할 것도 많아져서 마치 한 집에 사는 것 같았다. S가 사립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주인 아줌마는 더 바빠졌고 곧잘 내게도 심부름을 시켰다. 서초동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 S의 보호자 노릇을 해달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백일 지난 딸아이를 업고 개구쟁이 S와 학원에 갔다. ‘수고했어고맙다는 말만 들으며 내 조카 같아 당연한 듯 그 일을 했다. 그렇게 계약 기간이 지나도 전세금을 올리지 않아서 좋은 이웃을 만난 것에 감사하기만 했다.  

 3년이 지났을 즈음에 주인 아줌마가 도장을 찍어 달라며 서류를 가져왔다. 은행에서 집을 담보로 융자를 받는데 세입자가 있으면 곤란하다고 했다. 우리가 전세로 입주한 것이 아니라는 확인서였다. 잠깐 어려워서 대출 받는 것이니 전세금은 염려 말라고 했다. 둘째가 백일을 넘겼을 때라 당장 이사할 형편도 아니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우리부부는 그 말만 믿고 도장을 찍었다. 가끔 걱정은 되었지만 그들을 믿었다.

 어느 날, S엄마가 내게 웃는 얼굴로 그릇 빌리듯 아무렇지 않게 신용카드를 빌려 달라고 했다. 아이의 바이올린을 바꿔야 하는데 당장 현금이 없다며 결제 일에 주겠단다. 사립초등학교라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했다. 겁 없이 내 카드를 줬다. 그렇게 가져간 카드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더 늘었다, 할부로 했으니 나눠서 갚겠다.”며 일주일이나 내 속을 태우고 돌려줬다. 카드 사용 명세서를 보고서야 고가의 악기와 인라인 스케이트등 200만원이 결제된 것을 알았다. 결혼하고서 처음 신용카드를 써본 무지한 나는 웬만해서는 잘 쓰지도 않았다. 은행원 남편의 월급보다 많은 결제금액에 놀라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을 때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돌아왔다. 결국 그 돈은 결제 일에도 주지 않았다.

 난 어쩔 수 없이 구멍 난 가계부의 진실을 남편에게 고백했다.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화를 내는 그에게 난 죄인이었다. 그는 어차피 이렇게 된 일이니 인생 수업료 지불했다고 생각하라며 적금을 깼다. 힘들다고 말하는 내 사정을 그녀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가볍게 묵살했다. 가끔 카드를 또 빌려 달라고 했지만 남편에게 카드를 몰수당했다는 변명으로 피해갔다. 그즈음부터 주인집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저씨는 집을 짓고 아줌마는 자금조달을 담당했는데 문제가 생겼는지 돈 문제로 다투는 큰 소리가 우리 집까지 자주 넘나들었다.  

 둘째 아이의 첫돌이 코앞일 때 남편이 이사를 가자고 했다. 아무래도 주인집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것 같으니 최대한 빨리 집을 내 놓으라고 서둘렀다. 그때서야 전세금을 올리지 않은 것이 담보대출이 많아서고 추가로 더 받기 위해 우리에게 도장 받은 것을 알았다. 갚지 않는 내 돈도 한 몫 했다. 다행히 새 입주자를 구해서 몇 달 후 이사를 할 수 있었다. 그 후 돈을 받을까 하는 기대로 몇 차례 찾아갔지만 S엄마는 보지도 못했다. 늘 집에 계시는 할머니를 통해 곧 준다는 말만 들었다. 나는 돈을 포기하면서 발걸음도 끊었다. 그렇게 10여년이 훌쩍 지나 전화를 받은 것이다.

 

 7월의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아파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멀리서 그녀가 커다란 수박을 들고 땀을 훔치며 오고 있다. 걱정은 잠깐 접어두고 오랜만의 만남에 반갑다. 여전히 밝고 씩씩한 S엄마다. 우린 마주보고 웃었다. 제일 크고 비싼 것이라며 내게 수박부터 넘겼다.  시원한 음료를 앞에 두고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도 여전하시고 아들 둘 다 사립초등학교를 졸업시켰으며 잘 크고 있단다. 내가 잘살고 있어서 좋다며 남편이 아직도 은행에 다니는지 묻는다. 이제는 은행에 다니지 않는다고 했더니 같이 다녔던 동료들이 있을 것 아니냐며 소개를 부탁했다. 이유를 묻자 집을 짓고 있는데 돈이 필요하단다. 그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담보대출이 좀 많아서 잘 해주지 않는다. 이번만 잘 넘기면 될 것 같다. 잘 되면 네 돈부터 갚겠다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꽤 오래전에 그만둬서 은행사람들과는 연락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꼭 물어봐달라며 전화번호를 남기고 서둘러 일어났다.

 그날 저녁 식구들이 모였을 때 수박을 잘랐다 . 남편에게 S엄마가 다녀간 이야기를 하면서 이게 200만 원짜리 수박이라고 했다. 살면서 이렇게 비싼 수박을 언제 먹어보겠냐면서. 남편은 더 큰돈을 손해 볼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끝난 것이 다행이라며 나를 흘겨봤다. 수박은 정말 크고 맛있었다. 몇 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에 판매되는 무등산 수박에 비할까.

 며칠 뒤 그녀의 전화가 걸려왔을 때 도움이 못되어 죄송하다고 했다. 12살 아이가 지금 26살이니 오래전 이야기다. 그 뒤 그녀의 전화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어차피 내 돈은 포기한지 오래니 미련은 없었다. 맛난 수박 한통이라도 먹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한국산문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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