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 찧는 소리
한여름 밤, 선풍기를 돌려가며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여름엔 더워서 흔히들 창문을 열고 잔다.
바람을 쐴 겸 옥상으로 올라갔다. 평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데 간간이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모기가 왱 하고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모기가 소리 없이 왔다 가면 모를 텐데, 더구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은 모를 테고!
“에라, 이놈 그럴 줄 알고 모기향을 가져왔지!”
모기향을 피우고 다시 누웠다.
옆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윽, 으으윽, 윽윽. 아, 아, 아”
금방 숨이 넘어갈 듯 젊은 여자의 신음 소리가 크게 들렸다. 밤중에 어디가 아픈가. 귀가 쫑긋 섰다. 동네가 대학가 근처라 집 주변이 원룸촌이다. 가만히 들어보니 자주 들었던 귀에 익은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이후로 누가 죽었다거나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은 아직 들은 적이 없다. 불안했던 마음은 안정이 되고 직감적으로 감이 왔다.
밤일?
우리 집도 원룸이 여러 개 있다. 몇몇은 여학생이 방을 얻으면 남자가 들락거리고, 남학생이 방을 얻으면 가끔 여자랑 손잡고 나가는 것을 보았다.
다음 날 아침 옥상에 올라갔다. 어젯밤 소리가 났던 옆집 창문이 열려있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어젯밤, 누가 아팠나? 우리 집에 사는 학생인가, 옆집에 사는 학생인가? 젊은 여자가 앓는 소리, 거친 숨소리가 한동안 들리던데. 병원에 가야 하나 싶어서 119에 신고할까 한참을 망설였는디.”
동네 사람 들으라고 텃밭에 물을 주며 큰소리로 혼잣말했다. 어젯밤 난리를 피웠던 집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고, 그 옆집에 학생 엄마가 창문을 열고 딸하고 나란히 서서 나를 보고 웃었다. 학생 엄마가 손가락으로 옆집을 가리켰다.
“하루가 멀다고 방아를 찧어요! 창문을 닫고 하든지. 조용히 하면 누가 뭐래요. 시끄러워 죽겠어요. 학교 다니는 딸을 보러 와서 며칠을 지내는데 딸 보기가 민망해서 원!”
학생 엄마의 방아 찧는다는 소리가 무슨 뜻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내가 작은 소리로 한마디 거들었다.
“오래전부터 옆집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칠 정도로 동네가 시끄러워도 누구 한 사람 나서는 사람이 없어요.”
맞장구를 치고 옥상 텃밭에 머물렀다. 아침 햇살에 토마토가 낯이 뜨거운지 빨갛게 물들고 복수박 몇 덩이가 줄에 매달려 있다. 참새 두 마리가 날아와서 줄에 앉았다. 새가 외줄을 타듯 움직일 때마다 줄이 흔들리고 수박이 춤을 춘다. 참새 두 놈이 엎치락뒤치락 해가며 짝짓기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뜬금없이 마광수 교수의〈가자, 장미여관으로> 시 일부가 떠올랐다.
만나서 이빨만 까기는 싫어/ 점잖은 척 뜸들이며 썰풀기는 더욱 싫어/ 러브 이즈 터치/ 러브 이즈 휠링/ 가자, 장미여관으로!/ 화사한 레스토랑에서 어색하게 쌍칼 놀리긴 싫어/ 없는 돈에 콜택시, 의젓한 드라이브는 싫어/ 사랑은 순간으로 와서 영원이 되는 것/ 난 말없는 보디 랭귀지가 제일 좋아/ 가자 장미여관으로!~.
청춘 남녀가 만나서 불꽃 튀는 사랑을 할 때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T.V 뉴스를 보면,
대한민국의 출생률은 바닥이다. 지난해 0.72명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쳐 연간 합계출생률은 올해는 0.6명대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아기 울음소리가 그치면서 젊은 세대인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22년 40.6명이 됐고, 2058년엔 100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좋은수필 202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