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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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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뿌리는 남자    
글쓴이 : 노정애    24-06-18 09:19    조회 : 2,439


                      술 뿌리는 남자

 

                                                    노정애

 

  자정도 훌쩍 지났는데 퇴근한다고 전화를 했던 남편이 감감무소식이었다. 보통이라면 30분전에 귀가해야 했다. 2주전 이사한 집은 여의도 직장과 너무 멀었다. 사고라도 생겼나 싶어 괜히 불안했다. ‘딩동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엘리베이터에 갇혔어. 사람 좀 불러줘

 무슨 말이지?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서둘러 나가보니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았다. 로비층에 내려가서 남편을 부르니 나 여기 있어, 빨리 누구라도 불러와.” 늦은 시간이라서인지 남편 혼자였다. 비상벨이 안 울렸는지 관리 아저씨도 모르고 계셨다. 119에 도움을 청하고 엘리베이터 회사에 AS기사도 불렀다.  

 119가 먼저 왔다. 한참을 살피더니 새 엘리베이터라 문을 열기가 힘들단다. 응급 상황이면 문을 부수고 열어야 하는데 큰 위험은 없어 보인다고, 남편만 괜찮으면 AS기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보잔다. 한밤의 소동에 주민들도 하나 둘 나왔다. 그가 밖의 상황을 듣더니 좀 더 기다리겠다고 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AS기사가 오자 문은 의외로 쉽게 열렸다. 엘리베이터는 지하층과 로비층의 중간쯤에 멈춰있었다. 119대원의 도움으로 빠져나온 남편은 다행히 괜찮아 보였다. 3층까지 올라가다가 추락했다는 그의 설명에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아서 충격이 덜했다고 했다. AS기사도 고장 원인을 알 수 없단다. 새 엘리베이터에 왜 이런 사고가 났는지? 비상벨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모두들 입을 모았다. 집에 와서도 쉽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1시간 이상을 갇혀있었던 그가 염려스러웠다. 정말 괜찮은지를 묻는 내게 여기 집터가 이상하다. 40년 만에 그들을 봤다. 그들이 화가 나서 한 짓이다.” 라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했다. 새로 이사한 집을 두고 이게 무슨 말인가.

 

 남편은 중학교 2학년 때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일상생활이 가능하기까지 6개월이 걸렸단다. 뼈만 남은 몰골로 퇴원했을 때 가끔 뿌연 형체의 혼령(魂靈)들이 보였지만 다른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놀란 할머니가 큰일이라며 절을 찾고 굿까지 했단다. 건강이 회복되면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는데 방금 또 그들을 봤다면서 며칠 전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저께 자정쯤 이었어. 주차를 시키고 지하주차장 문을 여는데 오른쪽 구석에 그들이 보였어. 남자와 여자 정도의 구분만 가능한 뿌연 형체의 영()인데 남자는 서있고 여자는 앉아있더라. 잘 못 봤나 싶어서 가만히 응시하자 우리가 보이나봐하며 되레 나를 빤히 보더라. 왜 그들이 보이지? 하고 올라왔는데 여자가 집까지 따라 왔나봐. 그날따라 모두들 자고 있더라. 옷을 갈아입는데 그때 윤이가 고함을 질렀어. 꿈에서 이상한 여자를 봤다는 거야. 놀란 윤이를 다독이는데 그 이상한 여자가 바로 내 곁에 있는 거야. ‘또 한 번 이런 식으로 산사람 집에 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더 무섭게 으름장을 놓자 사라졌어.” 그러면서 그날은 네가 무서워할 것 같아 말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금도 그들이 그곳에 있었어. 이틀 전 일도 있고 해서 잠이나 자지 왜 싸돌아 다니냐.’며 한 소리했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을 눌렀는데 문이 닫히기 직전에 그들이 쓰윽타더라. 못 본 척했는데 갑자기 소리가 나고 엘리베이터가 멈추더니 아래로 추락하는 거야. 잠시 아찔했는데 덜컹내려않고 불도 꺼졌지. 비상벨을 얼마나 눌렀는지 몰라. 겨우 네게 문자를 보내고 바닥에 앉아서 30분 이상을 기다렸어. 그들도 함께 라는 게 느껴지더라. 날씨가 으스스했거든. 내가 너무 심했었나봐. 그래도 이만하기 다행이지.”

 

 집터 운운하던 남편이 숲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며칠 후였다. 새 아파트를 분양 받아서 이사할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13층 베란다를 통해 보이는 울창한 숲이었다. 해발 100정도의 나지막한 구릉성 산지가 넓게 있어 마치 강원도 콘도에 놀러온 것 같았다. 5만평정도의 나지막한 야산 초안산(楚安山). 편안한 안식처를 정한다는 의미로 조선시대 내시, 궁녀, 사대부, 서민의 분묘가 1,000여기 모여 있는 분묘군(墳墓群)이다.      

  그날 남편과 둘이서 초안산에 갔었다. 숲과 산책로에는 쓰러진 비석들과 제멋대로 놓인 제단들이 방치되어있었다. 여기저기 상석과 문인석, 동자석도 보였다. 오랜 세월과 사람들의 발길에 흔적도 없어진 봉분위로는 커다란 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산 여기저기 넘어지고 나뒹구는 상석이나 제단, 비석만이 그들이 여기 잠들었다는 표시였다. 숲 전체가 그들의 집이였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집을 뺏었으니 갈 곳 없어서 그들이 그렇게 떠돌았나봐.” 남편이 내게 던진 말이다. 그리곤 서둘러 내려가더니, 남편은 소주 두병을 사왔다. 숲 한 바퀴를 천천히 돌며 쓰러진 상석과 제단 옆에 술을 뿌렸다. 편안히 잠들라는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미안하다며 무탈하게 집에 보내줘서 고맙다고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벌써 15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 뒤 엘리베이터 고장은 한 번도 없었다. 남편은 무섭다는 내게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가끔 집에서 키우는 개 두 마리가 허공을 향해 짖으면 손님이 오셨나? 좋은 곳으로 가세요.”라고 정중하게 말한다. 그리고도 명절이면 술 두어 병을 사들고 초안산에 오른다. 명절에 누군가 초안산을 산책하다가 술 뿌리는 남자를 만나면 그가 바로 남편이다.    

 

                                                                               한국산문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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