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사진관
노정애
그곳은 식당들이 즐비한 4차선 도로의 뒷길인 조용한 주택가 모퉁이에 있었다. 네모난 작은 간판. 간판보다 조금 큰 창문, 창문보다 큰 미닫이 출입문이 있다. 달랑거리는 종소리를 내는 문을 열고 들어서니 크지 않은 공간이 나왔다. 몇 개의 소품과 다양한 모양의 크고 작은 의자들이 오른쪽 벽면에 놓여있다. 그 곁에 책장과 컴퓨터가 있다. 꽂혀있는 책을 보니 우리 집에 있는 것이 많다. 독서취향이 같으면 처음 보는 사람도 가깝게 느껴진다. 선반 위와 책장에 놓여있는 작은 사진들과 벽에 붙은 흑백사진들이 가정집 거실 같아 편안함을 준다. 너무 아담한 공간이라 잘 찾아 왔나를 고민하는데 30대중반 혹은 40대 중반인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주인이 우리를 맞는다.
“2시에 예약하신 분들인가요?”
여름 휴가철이면 아버지 기일에 맞춰 친정집에 간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족이 함께 움직인다. 김해 시내에서 차로 20여분 들어가면 어머니가 사시는 시골집이 나온다.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하면 점심시간을 조금 넘겨 김해시내에 도착한다. 그즈음이면 장거리 운전에 지쳐있던 남편도 함께 간 우리도 긴장된 마음이 풀리면서 허기가 찾아온다. 그곳에는 단골 밀면집이 있다. 일 년에 몇 차례 친정에 들고나면서 먹다보니 단골이 되었다. 시원하고 맛있는 밀면으로 속이 든든해지면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 제사 준비로 바쁜 친정집에 전화를 한다. 잘 도착했음을 알리고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묻는다. 생필품은 대부분 시내에서 구입하기에 출발 전에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부탁하는 것은 그때그때 달랐는데 그날은 시원한 커피만 주문했다.
근처 카페로 갔다. 커피를 주문하고 매장 안을 둘러보는데 한쪽 벽에 장식처럼 붙여둔 몇 장의 흑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인물 사진이다. 헐렁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중년 여인이 작은 의자에 앉아 환희 웃고 있다. 무심한 듯 서있는 남자의 얼굴은 참 편안해 보인다.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의 사진도 있다. 흑백사진이 주는 정감 때문인지 푸근함이 그들에게 묻어났다. 사진 밑에는 ‘인생 한컷’ 이라는 문구와 전화번호, 사진관 이름이 적혀있다. 사진에 얼이 빠져 있는 내 곁으로 가족들이 모였다. 오랜만에 보는 흑백사진이 나 만큼 좋아보였는지 우리도 찍어보자고 의기투합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예약을 했다.
커다란 카메라가 중앙으로 나오고 배경이 되는 롤 스크린이 바닥까지 깔렸다. 큰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을 때 다양한 연출을 요구했던 기억들이 스친다. 증명사진을 찍을 때면 안면근육이 떨리던 긴장된 모습도 떠오른다. 한 장에 5,000원, 커피 한잔 값이다. 시골 사진관에서 작은 추억하나 만들고 싶었다. 잘 못 나와도 그 또한 재미있을 것이다. 흑백사진속의 내 모습이 궁금했다. 내가 먼저 독사진을 찍겠다고 나섰다. 쭈뼛쭈뼛 카메라 앞에 선다. 쑥스럽고 어색하다.
“그냥 편안하게 찍으시면 됩니다. 사진 보정은 없으니 알아서 포즈를 취하세요. 여러 장을 찍고 그중에 제일 마음에 드시는 것으로 고르면 됩니다.”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찍어도 된단다. 그중에서 고를 수 있다니 마음이 놓였다. 모델이라도 된 것처럼 다양한 자세를 취해본다. 어느새 경직되었던 얼굴근육이 풀리고 긴장했던 몸은 서서히 힘이 빠진다. 움츠렸던 어깨와 허리를 곧게 펴본다. 주변에 있던 의자도 가져와서 앉아본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져서인지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왔다. 사진사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쉬지 않고 셔터를 누른다. 찰칵 찰칵. 어떤 자세를 취해보라는 주문도 없다. 처음해보는 모델놀이에 숨어있던 끼를 마음껏 발산해본다. 재미난 구경꺼리에 가족들도 신나는지 자꾸 웃기만 한다.
남편과 아이도 처음에는 어색함과 긴장감으로 굳어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여유로운 몸짓에 표정은 자연스럽고 편안해졌다. 사람에 대한 애정 없이는 인물사진을 찍기 힘들다고 한다. 그분의 애정이 우리에게 녹아들었나보다. 내친김에 가족사진까지 여러장을 찍었다. 우리가 그만 찍자고 할 때까지 그분은 셔터를 눌렀다. 웃으며 작업에 임하는 사진사의 모습은 활기가 넘치고 아름다웠다. 덕분에 우리의 시간이 더 즐거웠으리라.
찍은 사진들을 컴퓨터의 모니터로 한 장 한 장 보여준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는 작업은 우리들 몫이다. 우리가 몰랐던 모습들이 너무나 많다.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는 사진들을 선택했다. 여러 번의 선별과정을 통해 독사진과 가족사진까지 9장을 골랐다. 카페에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사진들이 왜 좋아보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드디어 완성된 사진들을 받았다. 수수한 차림, 편안한 얼굴. 흑백이라서인지 얼굴에 있는 잡티도 꼭꼭 숨었다. 적당한 주름과 흰머리도 보기 좋다. 웃음은 자연스럽고 서로를 보고 있는 모습도 조화롭다. 사진이 따뜻하다. 살아온 날들이 나쁘지만은 않았나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정말 ‘인생 한 컷’ 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우리를 위해 수고하신 그분께 지불한 비용은 너무나 약소했다. 미안해하는 우리에게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재밌었다며 다음에 또 오면 더 잘해주겠다고 웃었다. 우리도 이곳에서의 시간이 멋진 여행처럼 느껴졌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나오면서 작은 간판을 봤다. ‘재미난 사진관’ 사진만큼이나 이름이 재미있다.
한국산문 2020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