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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아버지의 손전화기    
글쓴이 : 공인영    12-05-19 15:40    조회 : 4,075
  

                            
 시아버지의 손전화기


  여러 차례 여쭤도 필요 없다 하시더니 며칠 전부터 큰애에게 핸드폰에 대해 자꾸 물으셨단다. 전해 들었으니 어쩌랴. 근처 매장에서 얼른 하나 마련해 식구대로 번호를 저장해서 갖다드렸다. 은근히 아이 편에 운을 띄운 건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답이 오니 좀 미안하고 당황스러우신 모양이다. 이런 게 혹 며느리 심보는 아닐까. 그래도 이왕지사 빠른 게 좋겠지.  
  사실 그저 기쁘게 해 드리는 마음만은 아니다. 늘 미안해서 말 못한다지만 결국 놓치지 않고 만사 챙겨온 게 아버님의 방식이다.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긴 한숨을 타고 건너온 당신이란 존재는 늘 자신의 안위만이 중요한 분 같다. 가족에 대한 관심은 글쎄, 간섭 말고 살자며 미리 못 박던 분이니 그 무정함에 적잖이 놀라고 당황한 기억들은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러려니 하고 풀어져 살다가도 집안 대소사는 꼼꼼히 챙기는 분이, 어린 손녀딸 과자 한 봉지 사주는 법 없고 결혼한 지 20년이 넘는 며느리 생일 축하한다는 말씀 한번 없는 그 심사에 때로는 야속하고 재미도 없고 그러다 은근히 부아가 나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랴. 살아보니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을. 다만 변할 수 없는 건 나이 든 부모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자식 된 도리, 그 도리를 조금 더 생각할 뿐이다. 가슴 답답한 날엔 침묵으로 피하는 일도 왜 없을까마는, 도리란 때로 사랑과 정성이 아니어도 할 수 있기에 견뎌내는 것임을 세상의 남편들은 이해해 줄까. 
  많은 아내들이 그 도리에 묶여 마음 안에 삭이고 녹이는 기계 하나 세우고 사는 줄도 알까. 그러면 다행이고 몰라도 할 수 없다. 게다가 이제는, 아무래도 좋으니 그저 건강하게만 계셔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래도 살아온 시간만큼 모난 감정 깎아내고 두루뭉술하게 마음 굴리다 보니 좋은 날도 온다. 언제부턴지 우리 집 분리수거는 슬그머니 시아버님의 몫이 되었다. 세상에! 긴 시간 마음의 공을 들이면 그 끝엔 가끔 회복되는 것도 있고 되살아나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앞으로 십년쯤 뒤엔 고령의 노인 문제가 재앙에까지 이른단다. 그땐 남편과 함께 어쩔 수 없이 그 근처를 서성이게 될 텐데. 지금부터 준비해, 물질보다 인생에서 얻은 지혜를 자식들에게 선물하며 천천히 아름답고 고요하게 저물어 가고 싶다.
  햇살 좋은 날 공원에 가 보면, 종일 장기판에 머무는 노인들이 있다. 농 섞인 훈수라도 주고받으며 시간을 때우는 그들이 애틋하다가도 그보다는, 홀로 집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히거나 집조차 잃고 떠도는 수많은 노인들을 생각할 때 조금 더 답답하고 쓸쓸해진다.
그러면서 아버님의 하루를 새삼 떠올려 본다. 당신도 조금씩 더 외로워지고 있는 건 아닌지. 내 부모를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잘못할 수 없는 단순한 이치도 한 번 더 생각하면서.
  이 좋은 계절엔 금쪽같은 내 아이를 떠받들고 싶은 어린이날이 있는가 하면, 폐품처럼 구석으로 밀려나 무관심에 점점 더 구겨질 부모의 마른 등 한번 쓸어드릴 어버이날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확실한 건, 부모가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내 아이들도 없다는 것이다. 결코. / 

                                                          <월간Essay 2007.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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