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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김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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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평 반    
글쓴이 : 김미원    12-05-20 00:41    조회 : 4,425
한 평 반
김미원
지난 주에 장례식장을 두 군데 다녀왔다. 이른바 호상이라 불리운 모두 환절기를 못 넘긴 85세와 90세 노인들의 장례였다. 남편과 나는 상주부부와 육개장을 먹으며 겨울에 같이 떠날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건너 편 테이블에서 아예 여권을 꺼내놓고 50중반의 여자들이 돈을 걷고 있었다.
고 이청준 선생은 《축제》라는 소설에서 죽음을 한바탕 축제라 했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상주들이 슬픔을 내색하지 않는 게 영 불편했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해도 최소한 고이고 남아 내비치는 슬픔 정도는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두 장례식을 다녀오고 주변 사람들이 애도할 수 있도록 80세가 되기 전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여름 프랑스 파리의 페르 라쉐즈 묘지를 찾아갔다. 발자크, 쇼팽, 모딜리아니, 오스카 와일드, 에디트 피아프, 짐 모리슨 등 워낙 유명한 사람들의 묘지라 크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초라했다. 한 평 반쯤 돼 보이는 무덤 위에 화강암이나 대리석으로 덮여있을 뿐이었다. 해가 기울어 석양이 순해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라 그랬는지 감상적이 되었다. 살아생전 넓은 집을 소유했던들, 부귀영화를 누렸던들, 몸을 누일 곳은 결국 한 평 반의 공간인 것이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인간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지를 알려준다. 주인공 바흠은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온 종일 걸어 많은 땅을 확보했지만, 출발점에 도착하는 순간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죽었다. 어려서 나는 그렇게 좋은 기회를 놓쳐버린 바흠을 바보로 여기며 나라면 적당한 거리에서 돌아왔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게 그런 행운이 주어졌다면 나도 바흠처럼 되지 않았을까. 욕망은 커지고,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게 많아졌으니까. 바흠은 그 넓은 땅을 남겨두고 채 3아르신(아르신은 약 70센티미터)도 안 되는 자신이 쓰러진 곳에 묻혔다. 톨스토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에게는 2평도 안 되는 땅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가끔 식구들이 방 한 칸씩 차지하고 사는 내 집이 크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낄 때도 있다. 가수 조영남 씨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연예인 중 제일 비싼 집에 산다는 그는 187 평 빌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나는 이렇게 넓은 집에서 사는 게 죄책감이 들지 않느냐고 물었었다. 그는 ‘이렇게 넓은 집에 사는 게 벼락 맞아 죽어도 좋다는 양심적인 생각과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산다. 흔들리며 사는 게 인생이다’라고 답했다. 어쩌면 그에 비하면 택도 없이 작은 집이지만 그 질문은 내게 하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청빈하게 살며 자족하며 사는 사람을 보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고 인테리어가 멋지고 넓은 집을 보면 또 그게 부럽다.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이렇게 살지 못하는 나는 감상적이 되어 눈물이 난다.
I may not have mansion. I havn't any land.
(나에겐 좋은 집도 없어요. 땅도 한 조각 없구요.)no even a paper dollars to crinkle in my hands.
(손으로 구겨버릴 종이 돈 한 장조차 없답니다.)but I can show you morning on a thousand hills
(그러나 나는 당신께 산과 들을 깨우는 아침을 보여드리고)and kiss you and give you seven daffodils.(입맞춤과 함께 일곱 송이 수선화를 드릴 수 있답니다. )
연인에게 바치는 이 사랑의 송가는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거다. 그래서 슬프다. 내 자식들에게 방을 주고 싶은 나는 집 없는 남자에게 마음을 닫을 만큼 속물이다. 살아서 이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는 교회 동산에 묻히셨다. 자그마한 자갈위에 아버지 골분을 뿌리며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대리석 비석에 새겨진 그 말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다. 아버지는 땅으로, 강으로, 바다로, 다시 하늘로 올라가 나 있는 곳 어디에나 계실 것 같다. 기일과 명절 때면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수국과 국화를 가슴에 안고 그곳에 간다.
나 역시 언젠가 그 곳에서 산과 들을 깨우는 아침을 보며, 자식들이 일곱송이 수선화를 안고 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제 보니 한 평 반의 공간도 필요 없을지 모르겠다. 아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욕심일지 모르겠다.
 
월간에세이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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