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모 정유회사에서 선물로 준 고흐의 1월 달력 그림을 보고 있다. 별과 초승달, 사이프러스와 두 농부의 모습이 보인다. 별도 있고 달도 있고 나무도 있으니 따뜻한 그림이건만 난 슬픔을 느낀다.
37년 짧은 생애를 불행하고 고단하게 살다 간 고흐란 남자를 떠올린다. 그림을 업으로 삼은 10년 동안 2천여 점의 그림을 그렸으나 한 점의 작품만 팔렸다고 전해지는 사람, 빵과 버터 대신 물감을 샀던 사람, 흠모하던 연인의 사랑을 얻지 못해 창녀에게서 위안을 느꼈던 사람,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다 저녁이면 카페에서 독한 압상트 주를 마시며 외로움을 달랬던 사람, 고갱과 헤어진 후 정신발작으로 자신의 귀를 잘랐던 사람,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밀밭에서 권총으로 가슴을 쏘아 이틀 후 세상을 떠난 사람... 노랑, 빨강, 코발트 블루 등 화려한 물감을 많이 사용했지만 그의 그림엔 절망과 쓸쓸함의 냄새가 풍겨 나온다. 죽기 직전의 작품에 오히려 밝은 색이 많았던 걸로 보아 안간힘을 다해 살려고 했던 건 아닐까.
이 정유회사의 달력 말고 조금 더 근사한 고흐의 달력을 그가 세상을 떠난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es)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아니 사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게다. 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벽돌로 지은 교회가 있는 전형적인 프랑스 시골 동네 하숙집에서 그는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좁은 나선형 계단을 올라 복도라고 부를 수도 없는 옹색한 층계참을 지나 그가 그림을 그리고 잠을 잤던 방으로 들어가니 앙상한 철제 침대가 휑뎅그레 놓여져 있었다. 그의 궁핍함, 외로움이 훅 끼쳐왔다.
그가 살던 방을 보고 나온 후 나는 기념품점에서 그의 그림이 그려진 달력을 만지작 만지작 거렸지만 결국 내려놓고 말았다. 대신 유일하게 그를 이해하고 후원했던 4살 아래 동생 테오와 함께 나란히 묻혀있는 공동묘지를 찾아 사진 한 장을 박았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서쪽으로 70km만 가면 모네가 43년간이나 살았던 지베르니(Giverny)가 있어 내친 김에 오후 일정을 그곳으로 잡았다. 평생 가난과 고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하숙집에서 생을 마친 고흐와 달리 모네는 안정된 생활을 했음을 저택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물을 끌어들여 인공으로 만든 연못엔 수련을 띄웠고, 아기자기한 일본식 다리와 일본식 정원도 꾸며놓았다.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2층 집안 곳곳의 윤기나던 살림살이들은 생활의 여유를 나타내주었다. 모네는 빛을 받은 자연의 표정을 밝은 색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며 화단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활동하다 폐암으로 86세에 세상을 떠났다.
집과 별도로 지어진 기념품점에서는 모네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커피잔, 우산, 달력, 손수건 등 다양한 상품들을 팔고 있었다. 북적대는 인파들 틈에 끼어 아무 망설임도 없이 모네의 달력 5부를 샀다. 아름다운 여인이 허리가 잘록한 원피스를 입고 개양귀비가 흐들어지게 피어있는 들판에 서 있는 그림이 인쇄된 양산도 샀다. 그날 원피스에 모자를 차려입은 나는 그림 속 그녀처럼 양산을 들고 한들한들 모네의 정원을 거닐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몸은 모네의 저택에 있는데 마음은 계속 고흐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살아생전 영화를 누리지 못했지만 고흐는 그의 작품이 천억 원에 팔리는 것을 하늘나라에서 보고 있을까. 어쩜 그래서 세상이 공평한지 모르겠다.
모네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심정적으로 영화를 누린 모네보다는 외로움 속에 살다간 고흐편이다. 고흐의 그림을 보면 내 심장이 쿵쾅거리지만 모네의 그것들은 그냥 편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얄팍한 취향을 가진 나는 집에 걸 그림을 고르라면 고통스러운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 보다는 편하고 따뜻한 작품을 고르는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고흐의 그림을 보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있다. 감히 고통 속에서 태어난 위대한 작품의 예술성이 보인다고 할까.
이제 보니 두 농부의 얼굴 표정이 유쾌한 듯하다.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두 농부는 어깨를 맞대고 걸으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조그마한 농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남편을 기다리며 저녁을 짓고 있는 아내를 연상시킨다. 고흐는 자신이 사는 삶이 비참할수록 인생은 따뜻하고 살 만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제 비로소 내가 사지 않았던 고흐의 달력 대신 그 어떤 인연으로 우리집 거실에 걸린 달력을 보며 나는 따뜻함을 느끼고 위안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