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 나무
길가에 서있는 멋진 내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새싹이
돋아나는 내 몸은 둥글고 푸른 샘이 솟는 답니다. 그 물을 먹고 영양분을 만들어 내 아이들을 키워 냅니다. 마른 몸에서 어떻게 푸른 가족을 키우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입니다.
글 감으로 많이 쓰지요. 그럴 때는 정말 행복하답니다. 아무리
내가 힘이 들고 견디기 어려워도 꿋꿋하게 살아 가는 작은 이유입니다. 키가 자라고 가지가 뻗으면 남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지요. 사람들도 그렇지 않아요? 요즈음 돌아가는
세상이야기 바람이 전해주는 말로는 심각한가 봐요. 우리들 세계는 남을 비방하거나 몹쓸 짓은 절대로 하지
않아요.
내가 가족을 늘리고 잎을 무성하게 달고 쭉쭉 뻗어 나가면 외등에 불빛을 가린다고 불평을
하는데요. 내 생각에는 시원한 그늘도 만들어 주고 도심의 삭막함도 살려주는데 왜 그런 말을 할까요! 참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나 봐요. 그런데 말이죠. 날씨가 흐릴 때는 관절이 쑤시고 아픈 날도 있었지요. 바로 그런
날 우리들 몸을 예쁘게 다듬어 준다고 여기 저기 손을 대는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들은
고마운 사람들 같아요. 큰 트럭에 기계를 싣고 와서 우리 몸에 기대어 놓고, 건강에도 안 좋은 담배를 손가락에 끼워 물고, 빨간 꽃을 붙여서
툭 튀어 나온 입으로 빨아 당기는 거예요. 참 신기하고 재미있게 구경을 하고 있었지요. 아니 그런데 입에서 갑자기 안개 같은 것이 확 퍼져서 우리 앞으로 왔어요. 우리
아기들은 일년 내내 대기 오염에도 잘 견디어 왔으며, 기침과 재채기 콧물 한 번 흘린 적도 없어요. 안개 같은 것이 우리 얼굴을 덮쳤어요. 조용하던 가족들이 온 통
난리가 났지요. 내가 몇 십 년을 살아 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 겪었어요. 모두 콜록콜록 기침에 눈물까지, 장난치고는 너무 심했지요. 플라타너스나무 이름의 병원도 없는데 말이죠. 어쩌면 좋을지 몰라
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데, 그 때 이웃에 살고 있는 바람이 찾아 와 나쁜 안개를 다 거둬 주어서 살아
났답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답니다.
아니! 이런 일이 일어 날줄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어요. 살다 보면 놀랄
일도 생기지요. 가늘고 손잡이가 예쁜 톱 날을 가지고, 넓고
윤기 나는 우리 아이들 몸을 살살 조심스럽게 다루기도 합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안 된다고 말을 해도
잘 안 들리나 봐요. 여기 저기 베고 또 베고 하는 것을 보니 길가에 서있는 우리 모습도 볼 만 하겠지요. 저들도 일을 하면서 우리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고 있겠지요. 세상에는
남의 몸에 흉기를 대고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름답게 다듬어 주니 고맙지요. 그래도
한 편으로는 잘 자란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지요.
땅바닥으로 떨어진 자식들에게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살고 싶지 않아요. 이산 가족으로 뿔뿔이 흩어져 이젠 만날 수가 없지요. 성형외과, 정형외과도 없으니 다친 몸을 고치기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사람들을
위한 병원은 정말 많은 가봐요. 값도 꽤나 비쌀 텐데 매일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이 많이 변하여 알아
볼 수가 없어요. 출근을 하는 아가씨는 학교 선생인가 봐요. 초등학생들이
그녀만 보면 머리 숙여 인사 하데요. 여름 방학이 끝나고 내 옆을 지나가는데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많이 변했더군요. 날렵한 콧대와 반짝이는 피부, 예쁜 쌍꺼풀을
보니 아무래도 남자 친구가 생긴 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사계절에서 제일 신나는 여름이 있지요. 푸른
옷을 입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 다 보는 즐거움도 있어요. 아무리 사람들이 키가 크고 잘나도 우리 위에서
놀 수는 없는 거죠. 신나게 노래하고, 밤에는 푸른 달빛에
더 푸르게 얼굴을 다듬고, 낮에는 햇빛이 와서 따가운 예방 주사를 놓아 주지요. 모기와 벌레들에게 물려도 걱정 없어요. 내 단단한 몸은 할머니가
굽은 허리를 펴고 편안하게 쉬었다 가기도 하고, 예쁜 강아지 다리 들고 향기 품지요. 그늘을 만들어 땀을 식혀주고 때로는 부채가 되어 바람도 일으켜요.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는 이재무시인의 시처럼 나도 한 그루의 그늘이 되고 싶습니다. 이럴
때는 시인이 된 것 같아요. 정말 말이 엄청 많지요. 하
하
겨울 채비도 해야 하니 쑥스러워요. 의상도
갖추지 못하고 맨몸으로 겨울을 나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끔찍한 몸이지만 단련 된 몸 잘 견디어 낼 거예요. 털을
걸치고 걸어 가는 사람들 모습을 보면 참 불쌍해요. 그것도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아 만든 거니까요. 한 가지 부탁 드려요. 제 몸에 광고지 제발 붙이지 마세요. 테이프 땜에 자국이 생긴 곳이 겨울만 되면 엄청나게 시리고 아파요. 제
몸값은 아파트나 빌딩 보다 더 비싸답니다.
꿋꿋하게 자존심
키우면서 매운 바람도 잘 견디면 따듯한 봄을 맞이 하게 되겠지요. 지금 지나가는 아가씨가 멋진 남자와
팔짱을 끼고 웃으면서 가고 있네요. 애인 인가 봐요. 정말
좋겠어요. 소문은 내지 마세요. 나도 봄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겨우내 눈을 감고 실컷 잠이나 잘까 봐요. 그래야 봄에 예쁜 모습으로 태어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