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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봉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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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    
글쓴이 : 봉혜선    25-09-16 16:26    조회 : 2,147

그 이후

 

 그 이후로 눈높이가 급격히 달라졌어요. 아무 상황에도 호쾌한 웃음을 웃을 수 없게 되었지요. 치열하게 사는 모습은 죽음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드는 모습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여기게도 되고요. 삶과 죽음의 차이를 알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 뱀이 삼킨 코끼리가 삼키어진 상태 그대로 통째로 빠져나오리라는 걸 예상할 수 있다고나 할까요. 어쩌다 받은 생이니 이대로 이 자리에서 스러진다 해도 미련이라고는 없다고 해야 할지요.

 그러니 적당히, 울 듯 말 듯 웃거나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거나 혹은 물에 물 탄 듯 맨숭맨숭 살아도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어요. 어느 것에도 누구에게도 남는 미련이란 없고 죽어도 그만, 살아 있대도 그만이라는 데서 한 발짝도 움직여지지 않네요. 고마움도 없어져 버려요. 살아있는 것은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가요.

 세상을 등졌다, 버렸다. 숨을 놨다, 거뒀다. 사망했다. 별이 되었다. 돌아가셨다. 열반했다. 하늘로 가셨다. 라는 종교적인 해석까지. 나를 낳은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날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인정해야 하는가요. 엄마를 잃고서도 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살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만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어요. 만약 이어진다면 전혀 다른 생일 것이라는 자각은 일이 벌어진 한참 후에야 들었네요.

 삶의 질 또한 변화를 피할 수 없지요. 포기, 혹은 허망하게 사라질 생에 대해 급격히 급해지기도 하고 참고 지낸 세월이 억울하기도 해서 방치하듯 낭비, 혹은 얼마 되지 않은 통장 잔고를 털어 허비, 즉각적인 욕구에 부응하고도 싶어요. 한 치 앞을 모르잖아요. 미래란 없어요. 즉시로 사라질지 몰라요. 모른다는 것만이 우리를 추동하나요.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삶인가요. 시간에 기댄 우리, 그리워하고 그러면서도 잊어야 하는 필멸의 존재로서 살아있어야 하는 상태. 죽는 것과, 지금의 나, 숨 쉬고 움직이는 나를 구별할 수가 없어요. 지금의 내가 어때야 하는가요. 다음 순간 내 차례인 줄 모르는 앞이에요. 사람들은, 부모를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있는 걸까요.

 거울 속 나는 웃나요, 우나요? 웃음이 안 어울리는 얼굴이 되어버린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에요. 생을 모른다는 얼굴로 지낼 수 없게 되었어요. 동시에, 사라져 버린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으니 무력해진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닌 얼굴을 한 채 무엇을 안다고도 말할 수 없게 되었어요.

 부모를 잃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은 일변 평범해서 가슴에 와 닿지 않았지요. 주변에 흔한 사람들, 가깝게는 내 부모도 부모님을 여윈 고아인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왔고 그 막막함과 슬픔은 짐작하지 못했어요. 나를 향해 활짝 웃어주는 부모님이 당연했고 어쩌다 우울한 모습을 대할 때는 걱정보다는 언짢아했지요. 부모는 원래 그러거니 여겼어요.

 부모로서 지녀야 할 자질이나 소질, 혹은 경험 없이, 그 흔한 시험도 없이 부모가 된 사실은 젊은 나를 절망에 빠뜨리기에 부족함이 없었어요. 어려울 때마다 부모에게 손을 벌렸고 어느 상황에나 정답과 해답을 제시해 주던 부모는 철없이 부모가 된 우리 부부를 쓰러지지 않게 버텨주었어요. 엄마 없이는 나도 없을 것이란 사실만 다지고 또 다졌어요.

 엄마가 아파 누웠을 때 엄살 피우지 말고, 일어나라고 수없이 말한 것도, 볼 때마다 조금씩 더 힘들어하던 모습을 돌아서서 부정하던 내 마음도 진정 진심이었죠. 큰아들이 받아놓은 결혼 날짜를 2주 남겨놓은 토요일, 자다가 고요히 숨을 놓은 엄마가 내가 맞닥뜨려야 할 현실이었죠. 그러니 부모로서 엄마를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나의 생은 달라졌어요.

 차갑고도 매정한 세상. 차가워진 나의 마음, 세상에 대해 닫힌 문. 진심으로 웃을 일이라고는 없는, 사라진 생. 누구나 쓰고 있는 가면을 본 듯한 적나라함. 철없는 시절을 지나 이제야 겨우 알게 된 것 같은 이치. 아무 데서나 웃던 때는 지나갔어요.

 

 3년 상을 치르고 나선 세상이 많이 달라요. 더 이상 낭비는 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소풍 온 듯 가볍게 살거나 기왕 사는 것 열심히 살거나 하고 싶은 것 찾아 즐길래요. 옆 사람들에게 더 잘하고 싶어요. 모나리자의 희미한 미소를 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될까요. 빙그레 웃는 부처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삶의 종착점은 죽음이란 걸 알게 되었을 무렵은 삶에서는 멀어지고 죽음은 닥쳐있는 때라는 걸 애써 외면하거나 아둔해서 알아차리지 못했네요.그동안 해오던 일이나 사람들이나 현상들이 전혀 다르게 다가와요. 천연덕스러워 보이는 사람들도 실은 깊은 슬픔을 품고 다음 세대를 잇고 있는 것이겠지요. 어려서 부모를 잃은 사람들을 깊이 안아 볼래요. 따뜻해야지요. 그게 살아있는 것이고, 그것이 살아가는 거겠지요. 하나를 깨닫는 것이 이렇게 어려워요.

예상하지 못한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2주 만에 예정된 결혼식을 한 큰아들이 아빠가 되고 나는 할머니가 되겠지요. 그렇게 늙어가고 이어지는 것이겠지요. 늘 손주를 놀라워하시던 엄마를 닮을래요.


『수필 오디세이 2025 가을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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