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유시경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mamy386@hanmail.net
* 홈페이지 :
  소 죽은 귀신 밥 말아 먹기    
글쓴이 : 유시경    25-11-25 00:07    조회 : 268

소 죽은 귀신 밥 말아 먹기

 

 물밥은 맛있었다. 식당에 나와 일하면서 밥을 자주 물에 말아 먹곤 했다. 여름엔 찬물에 겨울엔 따듯한 물에 밥을 말아 먹었다. 누구보다도 나는 밥을 빨리 해치웠는데, 식사 준비를 시작해서 한 그릇 뚝딱 비우는 데까지 아마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밥을 씹는 게 아니라 흘려 넘긴다고 해야 할까. 밥알을 거의 깨물지도 않고 그냥 저세상으로 보내 버리는 신기를 펼쳤던 게다. 옆에서 식사하던 이양 언니가 참 보기와는 다른 구석이 있네요. 있지요, 밥을 물에 말아 먹으면 수명이 단축된대요. 근데 참 아금박스럽게도 잘 드시네요.”라며 나를 구제불능이라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세상 이치에 해박한 그녀의 말 한마디에 그만 사래 걸리나 싶었지만 이후로도 나의 물밥 사랑은 계속되었다.

 누구는 잠자는 시간이 가장 아깝다는데 나는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웠다. 밥 먹는 시간을 아껴서 책을 보거나 눈을 붙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밥 보다는 책, 책 보다는 잠이 먼저였다. 아니나 다를까. 물밥만 먹다가 위장에 탈이 나고 말았다. 속 쓰림은 기본이고 소화 장애에 역류현상까지 겹쳐 수년 간 애를 먹었다. 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가족 누구도 나처럼 물에 밥을 말아 먹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아이들도 제 어미처럼 십 분 안에 식사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외려 나를 제외한 식구 모두가 느리게 가는 만만디(manmandi)’의 삶이라고나 할까.

 어렸을 적 밥상 앞에서 혼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엄마와 오빠랑 셋이서 밥을 먹을 때마다 나는 늘 굼벵이 같았다. 밥상 앞에 앉으면 기본 한 시간은 걸렸다. 엄마는 내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밥 먹는다고 야단했다. 야단을 맞고 토라진 계집애는 한 손에 숟가락을 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또 그런 나를 보고 소 죽은 귀신같다고 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귀신이 바로 소 죽은 귀신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두 번이나 혼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똑똑 떨어뜨리고 있으면 이번엔 밥상 앞에서 고사 지내냐고 야단했다. 그러고 나서 엄마는 수저 등으로 조막만 한 내 손등을 톡 때리고는 이놈의 썩을 년 때문에 폭폭해 죽겠다며 가슴을 쳤다. 오빠는 곁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왕자님 같은 오빠 때문에 내가 더 혼나는 거라 여겼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난 참 답답하고 구렁이 같으며 게으르고 낙천적인 성격을 타고난 것 같다.

 화가 많은 엄마는 늘 아버지와 나를 두고 능구렁이 두 마리랑 살려니 화병火病 나 죽겠다고 말했다. 24년 띠 동갑인 뱀띠 부녀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런 엄마 말에 아버지는 매양 허허 웃음으로 들어 넘기곤 하셨다. 난 정말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세월아 네월아 하는 한량 기질에다 쇠고집, 외모는 또 왜 그렇게 판박이 붕어빵인지.

 아직 병들지 않은 엄마가 화를 내고 잔소리하던 그 찰나의 시절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엄마는 혹 성격이 급해서 그토록 빨리 하늘나라로 가버리신 건 아닐까. 가장 무섭고 듣기 싫었던 얘기. 소 죽은 귀신같다는 말은 훗날 고깃집이나 하리라는 예시豫示 같은 건 아니었을지. 구운 생선 배를 다 헤집어 놓은 오빠와의 밥상 앞에서, 소 죽은 귀신한테 고사지내던 여섯 살짜리 어린 계집애의 얼굴이 캔버스 풍경처럼 훅 그려진다. 진짜 소 죽은 귀신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여태 소 죽은 귀신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식당을 하는 동안 소 죽은 귀신과 돼지 죽은 귀신들에게 매일 감사하며 살고자 노력한 것 같긴 하다.

 나 홀로 물에 밥 말아 먹던 밥집을 정리하고 이제 천천히 사는 법을 다시 익히는 중이다. 세월아 네월아 하는 우리 아이들과도 될 수 있으면 함께 밥을 먹으려 한다. 소 죽은 귀신이 물밥을 먹으랴. 소 힘줄처럼 고집 세고 질긴 성격은 소 죽은 귀신 앞에나 묻어 두어야 할 일이다.

 급히 먹느라 찬밥에 물을 부을 때면 그렇게 먹다간 위장 깪여, 이년아!” 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말을 붙드는 습성도 버려야 할 터. 갈피 못 잡고 헤매던 기억들을 꼭꼭 씹어 삼키려 한다. 체하지 않게.


 -2025년한국산문11월호

 

 


 
   

유시경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38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103702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105764
38 소 죽은 귀신 밥 말아 먹기 유시경 11-25 268
37 冊佛 앞에 서서 유시경 06-19 14160
36 빛의 요람이고 싶었던 유시경 06-19 10191
35 내 코를 찾아줘 유시경 10-30 7025
34 어쩌다 나비춤 유시경 10-12 6779
33 목마른 시절 유시경 12-13 8767
32 전선 위의 달빛 유시경 11-07 12929
31 수유의 기억 유시경 07-08 6652
30 부끄럽지 않아요 유시경 12-17 6060
29 착한 발에 날개 달고 유시경 12-01 6712
28 손가락에 관한 고찰 유시경 11-14 10180
27 공사장 사람들 2 유시경 07-31 9957
26 공사장 사람들 1 유시경 07-20 11293
25 수경이 유시경 04-19 8415
24 ‘슬픈 소녀시대’를 걸으며 유시경 04-14 12542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