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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김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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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봄날의 노래    
글쓴이 : 김미원    12-05-23 19:03    조회 : 4,686
내 봄날의 노래
김 미원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밤에만 살짝살짝 다녀가던 비가 하루종일 제법 많은 양으로 내린다. 유난히 긴 지난 가을 덕에 11월에도 고운 단풍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린다했더니 겨울이 늦게까지 이어져 삼월까지 영하의 기온을 보이는 날도 몇 차례 있었다. 봄도 순연되어 개나리와 벚꽃도 4월이 되어야 피기 시작했다. 애타게 기다리던 꽃들이 아직 만개하지도 못한 채 내리는 봄비에 속절없이 꽃비로 내리고 있다. 이제 바닥은 분홍색 꽃길로 변할 것이다.
 이 비 그치면/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맑은 하늘에/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시내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처녀애들 짝하고 새로이 서고// (후략)
                                                           이수복 〈봄비〉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이 시와 함께 예쁘게 생긴 국어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녀는 이 시를 가르치면서 서러운 풀빛에 밑줄을 그으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서러운 풀빛’을 이해하지 못하겠느냐고. 나는 그 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에 짝하여 설 방년 16세로 왜 봄비가 서러운지 그 감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나이였지만 간절한 그녀의 눈빛으로 그 서러움이 전해지는 듯도 했다.
이제 내가 그 선생님과 같은 나이가 되고 보니 이 시의 맛이 새롭게 느껴진다. 특히 오늘같이 꽃비가 내리는 날에는 이 시가 서럽게 다가온다. 시의 맛을 느끼게 해준 선생님은 아름답게 살고 계실까.
창밖을 바라본다. 빗속에 경비가 거뭇거뭇해진 목련꽃을 나무에서 억지로 떨어뜨려 비로 쓸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냥 두어도 비에 떨어질 목련이건만 그는 만개해 추하게 변한 모습이 싫은가 보다. 땅에 떨어져도 아슴아슴한 아름다움이 있는 벚꽃과 달리 목련은 고아한 자태만큼이나 깊은 배신감을 준다.
 
 꿈 많은 대학 신입생은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운동장과 교사만 덩그러니 있던 고등학교 교정과는 달리 울울창창한 나무가 우거진 대학 캠퍼스는 불어오는 바람 냄새부터 달랐다. 꽃과 나무 냄새가 훈훈한 봄바람에 실려왔다. 발바닥에 힘이 주어지며 뭔가 다른, 희망찬 인생이 펼쳐질 것 같았다.
 캠퍼스 버드나무 가지에 초록 물이 오르고 벚꽃과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였다. 대학교지 편집위원 최종 면접을 보며 교수님들 앞에서 “모든 인간이 불쌍하다”며 눈물을 터뜨렸다. 나는 왜 그리 슬픈 감정이 복받쳤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꽃은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피고 질 것이지만 인간이란 꽃은 한번 지면 다시 피지 못한다는 사실을 흐드러진 목련을 보며 문득 깨달았기 때문일까.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나는 보기 좋게 교지 편집위원에서 떨어졌다. 한때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었던 송창식이란 가수는 가는 봄을 이렇게 노래했다.
 
그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한 방울 떨어져서 꽃이 되었나//
그 꽃이 자라서 예쁘게 피면/한 송이 꺾어다가 창가에 앉아//
새처럼 노래를 부르고 싶어/지는 봄 서러워 부르고 말아//
아 가누나 봄이 가누나//아 지누나 꽃이 지누나
 
 나는 이처럼 슬픈 봄 노래를 아직 모른다. 인생의 봄날 같았던 20대 초에 가는 봄을 노래한 이 노래가 왜 그리 좋았는지. 봄의 절정에서 가는 봄을 본, 인생의 기미를 아는 그 가수가 좋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래의 작사자는 소설가 최인호였다. 지금도 벚꽃이 만개해 난분분 날리는 날, 노래방 목록에도 없는 이 노래를 부른다.
 나는 왜 이렇게 절정 뒤에 숨은 뒷모습을 보는지, 만개한 봄에서 지는 봄이 보이는지 모르겠다. 나의 정서에 패배적인 그 무엇이 자리하고 있어 결국 인생의 패배자가 되지나 않을지 조금은 속물스런 걱정을 해본다.
이제 이 비 그치면 꽃은 지고 떨어진 꽃자리에는 연두색 싹이 아기 이빨처럼 솟아날 것이다. 그야말로 서러운 풀빛이 짙어갈 것이다. 신록단풍은 가을의 단풍보다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할 게다. 순한 초록 잎은 만개한 꽃보다도 아름답다. 인생의 고개를 넘은 나는 이제 꽃보다도 신록이 더 좋은 나이가 되었나보다.
 오늘처럼 봄비가 내리는 날, 약한 것, 순한 것, 가는 것, 지는 것을 생각한다.
 꽃이 지고 있다.
 봄날이 가고 있다. 봄날은 간다.
 
   수필문학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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